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은 Nov 13. 2024

느닷없이 잉글랜드

후다닥 짐 싸서 떠난 여행 2편

 

 영국은 기차의 왕국이다. 우리랑 다르게 기차 회사가 여러 곳이라 알고 보면 복잡한 구조라고는 하지만 그냥 영국철도앱을 통해 표를 사고 타고 내리는 우리는 어디든 기차로 갈 수 있으니 (갈아타기는 하지만) 참 든든했다. 둘이 계속 같이 다닐 여행객이니 Two together railcard를 사서 표를 살 때마다 30%씩 할인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랑 다르게 여긴 표를 사도 좌석이 지정되진 않는다. 요금을 좀 더 내야 좌석 지정이 되었는데 대부분 그냥 타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한 번도 서서 간 적은 없었다. 


 바스에서 체스터까지 한번 갈아타는 시간까지 쳐서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서 같으면 에구 길다 했을 텐데 낯선 바깥 풍경 보느라, 그리고 갈아타는 스릴을 기대하느라 지겨운 줄 몰랐다. 그런데 가다 보니 역무원의 역 안내 방송이 좀 이상했다. 틀림없이 영국인데 도무지 영어라고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나서 다음으로 영어 안내 방송을 했다. 이게 뭐람? 게다가 느릿느릿 가는 기차가 서는 역마다에서의  팻말에 이상한 글씨가 보였다.

 

저 글씨가 보이실까요?

 지금 나오는 방송이 어느 나라 말이야? 남편에게 물어보니 아마 여기서 오래전에 쓰던 말인 것 같은데 모르겠단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웨일스어라고. 웨일스 지방에서 쓰는 언어로 영어와 함께 공용어 대접을 받고 있긴 하나 실제 사용하는 인구는 평균 2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외국어처럼 가르치고 있고 공문서도 웨일스어본이 있다고. 기차 안내 방송이나 역 팻말에 저렇게 쓰고 있는 건 정부가 이 언어가 사멸되지 않게 노력하는 차원인 것 같다. 재미있었던 건 영어보다 웨일스어 안내 방송이 먼저라는 것. 오래전 요크 북부 지방에 사는 남편의 영국 친구집에 묵었을 때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쓰는 게일어를 레코드로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정말 영어와는 완전히 달라 그런 언어를 요즘도 쓰고 있다니 신기하다 했는데 남쪽 웨일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체스터, 튜더 시대 양식의 집인데 여전히 사람이 쓰고 있다

 

 체스터에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었다. 오후 2시쯤 역에 내려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숨 돌리고 이어져 있는 중심가로 나갔는데 이게 웬일! 메인 도로가 그야말로 쎈 언니들로 북새통이었다. 날이 쌀쌀해서 우린 혹시나 하고 들고 갔던 얇은 패딩까지 꺼내 입고 스카프도 동여맸는데 어깨 따윈 다 헐벗은, 아니면 초 미니스커트의 글래머러스한 언니들은 젊어 그런지 추운 기색도 없이 끼리끼리 모여 깔깔 웃고 떠들며 그야말로 새터데이 이브닝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는 것 같진 않았고 그냥 주말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라 하기엔 죄 여자들끼리에다가 하나같이 까만 드레스 차림이라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일부러 물어보기도 그래서 꾹 참았다. 

 

 식당마다 만석이라 겨우 찾아낸 곳에서 밥을 먹었는데 바로 옆에도 역시 까만 드레스 차림의 젊은 여자들의 모임. 

옆자리, 신나는 주말을 보내고 있는 언니들

 제대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남편 찍는 척하며 살짝 귀퉁이에 걸쳤다. 엄청 시끄러웠으나 젊은이의 주말을 같이 느끼는 것 같아 괜히 나도 신났는데 남편은 예전엔 안 이랬다고 계속 투덜투덜.


 이 식당에 들어가기 전, 남편이 인터넷에서 추천한 식당이 있다고 가보자고 했다. 특이하게 성당 1층을 리모델링한 힙한 곳이라고. 성당에서 식당을? 하고 신기해서 갑자기 뿌리는 빗속에 겨우 찾아간 그곳은 정말 성당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귀를 아프게 때리는 엄청난 음악 소리에 둘 다 기겁을 하고 되돌아 나왔다. 알고 보니 성당은 아예 없어지고 그 건물을 그대로 고쳐 식당으로 쓰고 있는 거라고. 신자가 줄고 성당 유지가 안 되니 그렇게 된 모양인데 체스터 곳곳에 이런 곳이 여러 군데였다.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는 참 안쓰러웠지만 어쩌랴. 세월이 그런 것을. 탓을 할 수 없는 것이 오래전엔 그 종교라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뺴앗기고 아팠나. 


여기도 겉은 성당이지만 속은 식당이다


 일요일 아침 체스터 시내는 어제와는 아주 딴판으로 조용하고 한가했다. 우리는 체스터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 성벽은 로마가 점령하던 시대 AD60-70 즈음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너무 높지도 않고 걷다가 지겨울만하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산책하기 좋았다. 

 

성벽 위에서 열렬히 걷는 중

 가다 보면

운하도 나오고


유명한 시계탑도 나오고
경마장도 나온다


 영국은 산 대신 평지가 많고 그 평지가 온통 풀밭이라 남편은 왜 나무를 안 심는지 모르겠다 하고 난 저 평지에서 먹고 살 게 나오는 게 신기하다 했다. 하여튼 무척 부러웠다. 난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부산의 모든 학교는 죄 산 중턱에 있다고 생각하면 맞다. (부산엔 산복도로가 도처에 있다) 그러니 학교 가는 게 등산 가는 거랑 맞먹었고 늦기라도 하면 숨이 넘어가도록 뛰면서 산중턱 학교를 저주했기 때문에 지금도 무조건 평지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성당에서 만난 같은 부산 출신 엄마가 자긴 대궐 같은 집이라도 높은 곳에 있음 절대 사양이라고 말한 걸로 봐도 나 혼자 생각이 아닌 건 맞다.

 그래서 초록 일색의 평원이 천지이고 높은 성벽이래야 계단 열두어 개 올라가면 그만인 영국 시골이 산책하기 그만이었고 여행하는 내내 정말 부러웠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체스터 대성당 

 체스터 대성당은 어마무시하게 크다. 바깥에서 보면 아름다운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과는 확연히 다르게 무뚝뚝하고 어디 그을린 듯 얼룩덜룩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보니 규모로는 손가락 꼽을만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뿐만 아니라 양 폭도 넓었다

  우리가 지나온 바스나 체스터는 보통 여행객들이 반나절 보고 정도로 충분하다고 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그런 관광이 아쉬워 다시 온 만큼 두 군데 다 이틀 묵으면서 어슬렁 걷다가 지치면 커피 마시고 또 걷다가 뒷골목으로 빠져 돌아다니기도 하고 부동산 가게 앞에선 이 동네 집은 얼마나 하나 계산해보기도 하면서 다녔다. 여행 떠나기 직전 건강검진 때문에 들렀던 병원 의사가 내 여행 이야기를 듣고는 '잘했다, 이젠 그렇게 여유 있게 스케줄을 잡을 나이다'라고 해서 웃었는데 정말 그랬다. 그렇지만 영 느릿한 여행은 아니었다. 저녁에 스마트 시계를 보면 매일 1만 5 천보 정도 걸었다고 나왔으니까.

체스터 성당 중정에 있는 조각


 대성당 중정의 조각상을 봤을 땐 그곳이 성당(이제는 성공회의)이라는 건 깜빡 잊고 참 로맨틱한 작품이라고 사진을 찍었는데 정리하면서 찾아보니 그게 아니다. Stephen Broadbent라는 현대 조각가의 <The water of Life>라는 작품.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를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사실 이 해설을 읽으면서 좀 헉! 했다. 

 

 사마리아 지방에 가신 예수님께서 그곳 우물가에서 여인에게 물을 청하자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다고 사마리아여인이 답한다. 이런저런 이야기 뒤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음~~ 내겐 그다지 닿지 않는 메시지의 형상이지만 (메시지는 이해가능, 조각과의 조화는 이해 어려움) 조각가는 나름의 뜻이 있었겠지. 


 

  우리가 여유 있게 걸어 다니던 이 날 여기 주민들 중 엄청나게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인데 저런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손에 지도를 들고 체스터 여기저기를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렇게 뛰다가 어느 곳에 가선 나무 밑에 있는 깃발 표시에서 뭔가를 꺼내 들고 있던 종이에 찍고 다시 다음 포인트로 가는 걸로 봐서, 체스터 명소를 돌면서 확인 도장을 찍고 기록을 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 참가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는데 (물론 청년도 있고 어린이도 있었지만)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최선을 다해 성벽 위로, 공원으로, 길을 가로지르며 참가하고 있었다. 계단에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도 평지에 가면 다시 또 뛰는 모습에 감탄보다는 저러다 뭔 일 나면 어째하는 걱정이 먼저였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과 혹은 사회와 계속 끈을 잡고 간다는 건 어쨌든 중요한 것 같다. 그게 나를 포기하지 않는 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럼 난 뭘 해야하나????? 물음표를 계속 달고 다녔다.

  

성벽을 걷다 만난 시계탑 아래에서

 저 시계탑은 체스터 중심거리를 가로질러 서 있어서 안 보려야 인 볼 수 없다.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으로 세운 거라고. 바로 이 아래 광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 윤도현이 버스킹을 했다. 그때 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가수를 뭐 하러 외국 길거리에 세워 노래를 부르게 하며 외국인의 반응에 눈치를 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 방송을 안 봤다. 그래도 내가 갔을 때 가수 윤도현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면, 그 빵빵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체스터에서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시 생각했다. ㅎㅎㅎ

작가의 이전글 느닷없이 잉글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