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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12. 2023

나의 첫해고,
“재민이는 이제 나오지 마”

때는 2010년 여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었던 나는 생애 첫 알바를 하게 되었다. 하루 8시간 정도 일하는 하루 일당 5만 원의 비정규직 노동이었다. 근무지는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 그때는 코엑스 리모델링 이전이라 별마당 도서관 자리엔 푸드 코트가 있었고, 아라비카 커피도, 테라로사도 없던 때였다. 그 당시에도 아쿠아리움과 메가박스는 인기가 좋았다.


나는 코엑스 지상층에 있는 큰 전시장에서 일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전시장 뒤편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곳 교통 정리와 전시장 입구 앞 표 검수를 맡았다. 첫 출근하는 날. 떨리는 마음으로 누나 집이 있던 의왕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 지하철 4호선으로 환승을 하고, 또 한 번 2호선으로 환승해 삼성역까지 갔다. 아침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출근하는지 처음 알았다. 삼성역에서 코엑스 지하상가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가면 전시장이 딱 보인다. 전시장 뒤편에는 하청업체 직원들이 일하는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쭈뼛쭈뼛 사무실로 들어가니 새로 온 알바인 나를 직원이 눈치껏 알아차렸다. 나를 보곤 빠르게 어떤 일을 하는지, 무전기는 어떻게 쓰는지, 점심은 언제 먹는지, 같이 일하는 사람은 누군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군대는 다녀왔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군대요? 저 아직 스무 살 인데요?’라고 표정으로 말해버렸다. 관리를 맡은 직원은 나를 귀여운 듯 보면서도 ‘이 쓸모없는 녀석’이라며 표정으로 대답했다. 처음 해보는 ‘일’과 낯선 환경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패기가 하늘을 찌를 때였기에 기죽지 않고 코엑스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가서 한 일은 교통 정리였다. 전시장 뒤편에 전시회 부스를 꾸미기 위해 수많은 트럭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주차장 교통이 꼬이지 않게 하는 게 내 일이었다.


한쪽 손에는 무전기를 들고 다른 한쪽 손은 열심히 트럭을 응대했지만 처음 해본 일을 척척 해낼 턱이 없었다. 먼저 일하고 있던 알바 선배 형들과 하청 업체 직원분이 일을 알려주셨다. 


“차량에 신호를 보낼 땐 손을 이렇게 앞뒤로 흔들거나 주먹을 쥐면서 신호를 보내는 거야. 다 군대 가면 배운다. 하하” 


이때 ‘세단’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다. 가끔 전시에 부스를 여는 회사에서 전시회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려고 오기도 하는데, 그런 분들은 세단을 타고 왔다. 일본에서 넘어온 단어라고 생각했던 세단은 알고 보니 영어 단어였다.


일을 하다 교대로 에어컨이 있는 휴게실에서 15씩 쉬기도 했고 차량이 많이 없으면 주차장에서 알바형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가끔은 막내인 나를 아껴주던 직원분과 알바형들이 간식으로 몰래 냉면을 먹으면 나를 불러 같이 먹자고 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에 일했기 때문에 시원한 물냉면 국물은 정말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3일 정도가 지났고 전시회 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코엑스 1층에 있는 그 큰 공간이 수백 개의 부스로 채워졌다는 게 신기했고 그 작업에 나도 참여한 게 대견했다. 그리고 공사가 끝난 금요일, 퇴근 직전 관리 직원분이 알바들을 불러 모았다.


“내일부터 전시니까 출근은 8시까지 하고 다들 검은 정장에 넥타이랑 구두 신고 출근하도록. 이상.”


구두?? 정장???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있을 리 없던 정장을 입고 오라는 관리 직원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떡하지. 구두도 정장도 넥타이도 없는데. 사려면 엄청 비쌀 텐데. 돈도 없는데. 이러다 잘리면 어떡하지. 망했다.’ 나는 걱정을 한 아름 안은 채 퇴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에 내리자마자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검정색 양복이랑 넥타이가 필요해!” 부랴부랴 엄마께 긴급구조를 부탁해 늦은 시간 할머니 댁에 있던 아빠의 양복과 넥타이를 가져오셨다. 그런데 나도 엄마도 구두는 깜빡하고 있었다. 나는 구두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구두를 새로 사자니 알바로 번 돈을 다 날릴 판이었고, 할머니 댁에 있는 구두를 가져오기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신발 중 제일 깔끔한 검정색 나이키를 신고 가기로 했다.



아침 8시. 코엑스에 도착하니 전시장에서 오픈 준비가 한창이었다. 알바 집결지에 모인 모든 알바생과 직원들은 하나같이 멀끔한 양복에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런. 나만 나이키네.


“아니 내가 구두 신고 오라고 했잖아. 왜 운동화를 신고 왔어. 군대 안 갔다 온 거 티 내냐?” 라며 관리 직원에게 한 소리 들었다. 나는 집에 구두가 없었고 나중에 쉬는 날에 사서 신고 오겠다며 연신 죄송함을 표했다. 하지만 관리 직원은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바로 코엑스 1층에 위치한 제일 넓은 전시장 곳곳에 알바와 직원이 짝을 지어 배치되었다. 나와 배치된 직원분은 혹시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살짝 위로해 주었다. 금세 주눅 들었던 기분은 풀렸고 덕분에 3일 동안 즐겁게 일했다. 하는 일은 전시장 입구에 서서 들어가는 관람객의 표를 확인하고 코엑스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안내해 주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이라서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중간중간 직원분이 몰래 쉬는 시간을 주기도 했다.


전시 마지막 날. 전시장에 있던 모든 관계자 및 관람객 퇴실 안내를 하고 문을 닫았다. 생각보다 재밌고 할만한 알바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이키를 신고 있어서 그나마 덜 힘들었을 수도. 기분 좋게 퇴근하려고 무전기를 반납하는데 관리 직원이 나와 다른 알바 한 명을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재민이는 이제 나오지 마.” 


왠지 모르게 관리 직원의 입이 뱀같이 느껴졌다. 혹시 나 잘린 건가? 나의 첫 비정규직이자 첫해고는 아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역시 구두 때문이었구나 생각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잘렸어!” 철없게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그게 무슨 대수냐며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쿨하게 위로하셨다. 덜컹거리며 누나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나는 딱히 슬프지 않았다. 물론 쏠쏠했던 알바비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있었지만. 이렇게 처음 해본 비정규직 노동은 해고당해 일주일 만에 끝이 났다.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알바가 처음이자 마지막 해고였다.


해고당하고 다음 날 오후, 30만 원 정도의 알바비가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짧게 일해서 번 돈치고는 꽤 두둑하게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 번 돈으로 나는 코엑스에 놀러 갔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맛있는 걸 사 먹고 알바 때 친해졌던 형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왔다.


끝.


PS. 13년이 지나 2023년 5월. 코엑스 전시장에서 알바하던 소년은 30대가 되어 코엑스로 돌아온다. <리틀프레스페어>라는 북페어에 나가려고 말이다. 이제 코엑스에는 푸드코트 대신 별마당 도서관이 생겼고, 아라비카 커피와 테라로사도 있다. 메가박스와 아쿠아리움은 아직도 여전하다. 나는 처음 나가보는 북페어에서는 또 어떤 코엑스와 관련된 추억이 쌓일지 기대하며 5월 26일-28일까지 열리는 <리틀프레스페어>를 준비해본다. 


저는 지하 2층 F-23에 '모여봐요 퇴사의 숲' 부스에서 북페어를 즐길 예정입니다! 리틀프레스페어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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