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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n 11. 2023

벗어나는 것에 관하여

(회사) (실패) (관계)

(회사)

내 연봉이 20%가 올랐다는 것을 동기들에게 알렸을 때였다. 내가 자랑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동기들의 궁금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그다음 날 동기 래가 나에게 개인 톡을 보냈다. 나름 형인 나에게 상담받고 싶단 말이었다. 당시 래는 연결 연결되어 미국의 한 건축사사무소에 이력서를 내볼 기회가 있었다. 분명 내가 크게 도움이 될 일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일과시간 중 래와 함께 맞은편 스타벅스에 가서 바닐라 크림 콜드브루를 마시며 따뜻한 히터 아래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아직은 대리 나부랭이였기 때문에 1층 라운지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들어보니 래의 고민은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고민이라기보다 걱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자신이 미국에 갈 수 있다는 선택권과 꼰꼰 건축에 남아 최대 20% 연봉상승을 기대하며 사는 것. 그리고 이런 자신의 연봉을 다른 직군의 친구들과 비교하고, 그래서 건축은 돈이 안 되는 구나를 알면서 회사에 다니는 것 등등. “돈이 중요하면 애초에 건축을 하면 안 됐고, 한국이 싫으면 미국 회사로 이직해도 되지만 해외도 별반 다르지 않아. 사람 사는 곳, 사람 사는 거 그거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름 형으로써 그럴싸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도움이 전혀 안 되는 말만 했다.


래와 4분의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고 더 자리를 비우면 혼나겠다며 서둘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화면을 응시하며 머리로 여러 가지 생각을 굴렸다. ‘래는 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할까? 어쨌든 모든 선택을 자신이 했을 텐데. 연봉 몇백 몇천 비교하면 끝도 없을 텐데.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을 것도 아니고. 건축설계에서는 어림도 없지. 역시 나랑 생각이 많이 다르군’ 그 당시 나는 빠른 진급으로 동기 중 유일하게 연봉 4천을 넘어 월 세후 300만 원을 벌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연봉을 비교하며 쫓기는 회사 생활도 싫고 별다른 선택이 없는 안정적인 미래도 싫증이 났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후 300만 원 월급을 3번 받고 나서 나는  퇴사 했다.


벗어났다. 월급으로부터.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줄 세우기로부터. 친구들의 회사 네임밸류와 대략 짐작해 본 그들의 연봉으로 나 자신에게 점수를 매기고 비교적 잘살고 있다는 좁은 생각으로부터. 그리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실패)

백수의 장점은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사 직후 본가로 내려가 가족들을 만났다. 그리고 여행이나 몇 년의 회사생활에 대한 보상을 주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퇴사 이야기를 쓰고 싶어 <퇴사 사유서>를 제작했다. 처음 써보는 에세이 책에 나는 태재 작가님의 클래스도 듣고 퇴고는 6번, 디자인은 4번, 가제본을 3번 만들어 본 후 에라 모르겠다 노래를 부르며 텀블벅에 올렸다. 다행히 펀딩이 성공해 첫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재고가 방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지만.


퇴사하고 글만 쓴 게 아니다. 초반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해오던 온라인 중고 서적 대여점을 운영했다. 카드 뉴스도 만들고 인스타그램도 키워보려 했지만, 실패로 끝이났다.


그리고 요리를 좋아하니 요리 컨텐츠로 숏폼 영상도 제작했다. 내가 요리하는 걸 보여주며 인사이트를 담은 나레이션을 담은 3분짜리 숏폼을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에 올렸다. 아직도 아주 가끔 틱톡에 들어가 보면 좋아요가 눌리는 신기한 일이 있다. 크리에이터 생활은 2달 정도 하다 떡상이 되지 않아 흐지부지 사라졌다.

돈이 떨어져 가던 찰나에 프리랜서를 시도했다. 편집 디자이너로서 일하며 포스터, 전단지, 브로슈어, 단행본을 만들며 수익을 냈다. 제일 싫었던 건 나를 망가뜨릴 방법을 많이 안다며 협박한 진상 사이비 종교 XX와 나를 아래 직원 대하듯 갑질하는 체OOO카라는 기업의 XXX이었다.


결국 1년 동안 작가,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실험을 해보던 나는 취업 준비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글의 흐름을 알았겠지만 내가 시도한 분야에서 적당한 수익을 창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실패가 지긋지긋했다.

실패는 끝이 없었다. 취업 준비는 수월할 줄 알았는데 이것도 실패투성이였다. 서류에서 떨어지고, 인·적성 보고 떨어지고, 면접 보고 떨어지고. 아니면 그냥 연락도 발표도 없었다. 화가 제일 치솟았던 그날은 종일 지원서를 넣다 스스로 기분을 풀어주려 치킨을 포장해 가던 날이었다.


왠지 모르게 찌들어 버린 패배감과 지지리도 없는 운이 나의 명이라는 게 화가 났다.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치킨이 담긴 봉투를 힘껏 하늘 위로 올렸다 온 힘을 다해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물론 내 머릿속에서. 치킨은 잘못이 없으니 내동댕이치고 싶은 화를 참으며 치킨을 고이 모셔 집으로 돌아갔다. 치킨을 내동댕이치지 않은 대신 차분히 모두 조사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에서 벗어났다. 엄청 휘황찬란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생각 외로 손쉽게 취업에 성공했다. 다시 월급과 연봉과 회사의 품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벗어났다 또 벗어났다.



(관계)

취업에 성공하고 또 벗어난 게 있었다. 5-6년 정도 알던 친구 휘와의 관계에서 벗어났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에 적을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나는 휘에게 서운한 행동을 했다. 내 기준에서 납득할 수 없는. 


평소 휘와의 관계는 그리 완만하진 않았다. 휘는 종종 귀찮은 일들을 만들었고 나는 거부하는 일들이 많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모난 뿔이 자라고 있었다. 지금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앞에 앉아있는 휘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나는 끝까지 착한 척했다. 살짝 내가 가증스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것 또한 싫으니. 글로나마 고백해야겠다.


며칠 전 휘와 나누었던 대화 카톡 내용을 지웠다. 너무 꼴 보기가 싫어서. 우리가 몇 년 동안 나누었던 모든 대화가 지워졌다. 홧김에 그러기는 했다. 샤워하고 있었는데 샴푸로 머리에 거품을 내기 시작할 때쯤 내가 서운하게 했던 일에 휘가 불만을 표현한 게 생각났다. ‘아니 도대체 그걸 왜 자기가 화내지? 참나’. 그리고 줄줄이 생각나는 휘의 무례한 부탁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은 시원했지만, 머리는 불이 났다. 샤워를 끝내고 바로 핸드폰을 손에 쥐고 대화를 지웠다. 그 당시에는 다시 휘와 대화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대화 내용을 지우니 그동안 쌓여있던 휘와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걸 느꼈다. 지긋지긋했던 친구 관계. 친해지면서 무례해지는 부탁들. 또 서로에게 서운했던 일들. 건강하지 못했던 관계였지만 겉으로는 하하호호 웃었던 그 관계를 지웠다.


휘에게서 벗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면 이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오랜 친구였던 용에게서 벗어났던 것,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였던 은에게서 벗어났던 것 등 내가 버리면서 벗어난 관계들이 수두룩했다.


이상하게 관계에서 벗어나면 묘한 시원함과 후련함이 있었다. 아무래도 벗어난 관계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먹고 잘살고 있어서가 아닐지 스스로 말해본다. 그리고 그들도 나 없이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 같기에 죄책감도 없다. 헤헷. 벗어났고  또 벗어났고 또또 벗어났다.



(벗어나기)

벗어나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퇴사도, 실패도, 친구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그 끝판왕은 역시나 가족을 벗어나거나,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그렇게 용기 있는 위인은 아닌 것 같다. 석사를 할 때 꼭 교수님들이 하시던 말이 있다. “Get out of your comfort zone” 아니 이불 밖은 위험한데 어떻게 나가냐고요. 하지만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떻게든 나가게 되어있다. 한 예로 나는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이불 밖을 나선다. 아침에 이불 밖을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불에서 잠자는 것보다 출근해서 돈 버는 게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니까. 물론 가끔 지각하는 것은 직장인의 미덕이다.


비록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계속해서 하나씩 벗어나려 한다. 또 길이 생긴다면 언젠가 회사에서도, 지긋지긋한 관계에서도, 실패와 좌절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가끔은 이불 안에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어디서 벗어날지 모르나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게 벗어나야 하는 일이라면 기어코 하고 말겠다 다짐해 본다. 어쩌면 남은 인생은 지금까지 발 담근 것들에서 벗어나기 바쁜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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