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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n 18. 2023

겜을 다시 만났다.

이건 2주밖에 안된 파릇한 초여름 이야기다.


시작을 어디서부터 할까 고민하다 내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려 한다. 나는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가 품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불현듯 태국으로 이민 갔다. 불현듯 간만큼 태국은 뜨거운 나라였으나 사람들은 항상 미소 짓고 있고 나는 종종 그러지 못할 때가 있던 추위도 있던 나라였다.


그곳에서 기울어가는 아버지의 사업처럼 떨어지는 가정형편에도 국제학교를 다니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말도 많고 사람에게서 힘을 얻는 외향형 인간이었지만. 아니, 그때도 외향형 인간이었지만 말이 많이 없었다. 집에서는 까불거리는 막내아들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소심하고 조용한 한국에서 온 아이였다. 그런 아이로나마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며 지내게 된 이유는 순수하고 착한 친구들에게 있을 것이다. 제목에 적은 겜은 내 친구의 이름이다. Game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태국식 닉네임을 쓰던 친구다. 겜은 내가 반 친구들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해 얼굴을 헷갈려할 때 먼저 말을 걸어주고 자연스럽게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사실 처음에 겜 얼굴도 잘 익히지 못해 그때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이 겜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줄곳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같이 중국어 수업도 듣고 수학 시간에 옆자리에 앉으며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겜은 외국 대입을 선택하는 대신 태국 대학에 들어가며 11학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10년도 더 흐른 어느 날. 태국시절 또 다른 친구인 중국계 말레이 어머니와 노르웨이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태국에서 자란 스티안에게서 디엠이 왔다. “친구. GIS 출신 겜이 조만간 한국 간다는데 겜한테 넘겨줄 연락처 있어?” “인스타그램이나 와츠앱으로 전달해 주면 될 것 같은데? 내 한국 번호는 +82 10XXXXXXXX니까 언제든지 연락 주면 된다고 전해줘” 그리고 며칠 후 인스타그램도 와츠앱도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언제 한국에 오길래 아직도 연락을 안 하나 하던 나는 와츠앱을 켜보니 이미 몇 번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몇 줄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겜과 잠깐잠깐씩 통화를 하고 한국에 언제 오는지, 무슨 일로 오는지, 어떻게 사는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통화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겜은 비즈니스차 상하이에 볼일을 보고 3일 정도 서울에 여자친구와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말하지 않다 일정이 확정된 후 나에게 자신이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할 예정이라며 한국 사정을 묻기도 했다. 겜은 학교 다닐 때 CC로 유명했던 펀이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설마 지금까지 사귀고 이제 결혼하는 건가? 하지만 현재 여자친구가 펀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궁금증만 남긴 채 묻지 않았다. 아직까지 펀과 겜이 커플이라면 그것도 정말 세기의 사랑일지 어라.



또다시 몇 주 가지나 내가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고 맞이하는 첫 주말. 약속시간에 맞춰 겜과 그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잠실 롯데 월드타워로 향했다. 나와 만나기 직전 롯데 월드에 들려 여자친구에게 반지를 전달해 주겠다 했는데. 녀석 잘했으려나. 혹시 프러포즈가 늦어졌으면 어쩌나 하고 넉넉히 시간을 두고 겜에게 전화를 걸었다. “겜. 나 여기 왔어. 어디야?” “우리 롯데 월드몰에 전자기기 파는 곳에 있어. 너도 도착했어?” “나 거기 바로 앞인데? 하이마트 아니야?” 통화를 하던 도중 변한 것은 수염밖에 없는 오랜 친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잉. 옆에 여자는 펀이 아니네. 반갑게 겜과 포옹하고 여자친구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와 겜은 둘 다 나누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보였기 때문에 얼른 석촌호수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겜이 졸업을 하고 근처 대학을 간 건 알았지만 그 후에 어떻게 지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길래 상하이까지 비즈니스 트립을 왔다 서울을 들리는지. 여자친구는 어디서 만났는지. (펀이랑은 왜 헤어졌는지.) 프러포즈는 로맨틱하게 잘했는지. 겜도 마찬가지로 졸업 후 나의 인생은 어땠는지. 사귀는 사람은 있는지.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새로운 회사는 어떤지까지. 만나자마자 어색할 시간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좋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내가 태국을 떠난 후에도 겜은 아주 잘 살고 있었다. 비록 인생에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많은 무게의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어찌어찌 또 살아가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겜은 그 사이 나처럼 말수가 많아졌다. 하지만 그의 말수가 늘어난 것보다 내 말수가 더 늘어났기 때문에 겜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색하거나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못 본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아직 우리는 가까웠다.


“나는 한국에 오면 널 꼭 만나고 싶었어. 넌 진짜 좋은 친구니까.” 겜은 여러 번 나에게 좋은 친구라는 말을 했다. 오글거리고 웃기지만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좋은 친구다. 대화 중간에 아주 잠깐 겜 앞에서 울었고 겜이 나를 달래주던 게 생각났다.



아빠가 사업을 접으시면서 몇 개월 동안 무직으로 지내셨다. 태국에서. 나는 무서웠다. 우리 집이 해외에 살고 있는데 수입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다. 매일 크게 우울한 얼굴을 하고 학교에 갔었는데 그걸 눈치챈 겜과 스티안이 수학시간에 나에게 물었다. “재민쓰. 요즘 얼굴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말하면 훨씬 덜 아플 거야.” 나는 아빠가 사업을 끝내셨다는 이야기를 했고 조금 지나지 않아 울먹거렸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겜은 “야. 걱정하지 마. 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그때 겜은 내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로는 되었다. 나의,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지만 그의 말은 좋은 친구의 위로였다.



한국의 필수 코스 설빙까지 먹고 석촌호수 한 바퀴를 크게 돌았다. 중간에 사진도 찍고 겜이 불현듯 다른 친구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인사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었다. 다들 잘 살고 있군. 다행이다. 

나와 겜은 너무 이야기를 많이 한 나머지 겜의 여자친구가 조용해졌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 아쉽지만 둘의 시간을 너무 오래 방해하고 싶지 않다며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너무 아쉬웠지만 또 아쉽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좋은 친구니까. 또 앞으로 10년을 못 볼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은 친구로 남을 거니까.


2호선 잠실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가벼웠다. 무거운 짐을 내려두어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오늘 겜을 보았기에 너무 행복해서 마음이 가벼웠다. 마치 태국에서 보던 끝없는 지평선에 올라탄 하얗고 아름다운 뜨거운 뭉게구름에 올라간 것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겜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나는 얼른 내 사진첩에 둘이 찍은 사진을 저장했다. 두고두고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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