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은 금요일이다. 이게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지난주 금요일을 겪어본 직장인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모든 직장인이 그런 건 아니지만 25일은 월급날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기쁨이 차오르는 날이다. 통장 잔액이 차오르는 것처럼. 근데 23일이 어쨌냐고? 25일이 주말이기에 (또다시)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23일 금요일엔 월급이 일찍 지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6월 23일은 내 월급날이라는 소리다.
1년 2개월의 갭이어를 끝으로 6월 1일 (또다시) 건축 회사에 들어갔다. 그 과정은 나중에 책으로 엮을 예정이니 오늘은 ‘월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1년 2개월 동안 다달이 고정되어 들어오는 월급 대신 프리랜서 프로젝트 정산일이나 독립책방의 정산일에 맞춰 생활비를 벌었다. 프리랜서와 책방 정산일이 들쭉날쭉하기도 하지만 그 액수도 들쭉날쭉해서 통장이 확 차오르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다 새롭게 들어간 회사에서 첫 월급이 나오니 살짝 기대될 수밖에. 오랜만에 몇백만 원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날이니까.
금요일 월급날은 특별히 좋다. 이번 주 노동의 끝과 한 달 노동의 대가가 같이 일어나는 날. 설레는 마음 때문에 출근길 2호선 지하철 안 사람들 사이에 낑겨가도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미소 짓는 나를 다시 생각해 보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날 변태로 봤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아무렴. 변태 맞을지도 모르겠다. 돈 좋아하는 변태.
그렇게 도착한 회사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휴대폰 알림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잉.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월급이 들어왔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월급을 받은 직장인들은 다 미소 짓는 변태가 되었을 것이다. 아아-. 진짜 변태가 아니라 혼자 미소를 짓는 게 월급 변태 같다는 뜻이다. 월급 변태는 변태끼리 알아보니까 그 미소의 진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월급이 만드는 기쁨을 말이다.
보통 첫 취업 첫 월급은 남기지 말고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전 직장이 꼰꼰 건축의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이 말을 철저히 지켰지만 나는 예외였다.
엄마께 자취방 보증금을 내기 위해 빌린 천만 원과 취업과 동시에 들어버린 30만 원 적금 통장 그리고 공부하면서 10년 동안 넉넉하지 못했던 통장 상황이 나를 똑같은 구두만 신는 구두쇠로 만들어버렸다. 첫 월급의 대부분은 엄마께 진 빚을 갚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썼다. 흔히들 하는 쇼핑이라든지 오마카세라던지 부모님께 빨간 내복도 안 사드렸다. 난 저금에 대해 매우 철저했고 철옹성같이 단단한 구두쇠력을 발현했다.
이런 성향은 꼰꼰 건축에서 보너스를 받을 때도 똑같았다. 보너스를 받는 달은 월급이 1.5에서 2배는 되었는데 이날은 회사 잔칫날과 같았다. 건너편 허영심 많은 차장님은 그날 바로 백화점에 가서 평소 스타일에 어울리지도 않는 발렌시아가 신발을 사고, 동기 래는 넷플릭스를 보려 아이패드를 샀다. 용 대리님은 부업으로 하는 카메라를 업그레이드했고 후배 혜님은 남자친구와 파인 다이닝을 갔더랬다. 나는 저금을 했다.
나름 구두쇠력을 변명해 보자면,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싶었다. 통장에 두둑한 돈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비상금 오백만 원과 3개월 치 생활비를 항상 통장에 구비해 두었었다. 나름 연 금리가 높은 증권사 CMA 통장을 만들어서 매일 매일 몇천 원의 이자를 받는 쏠쏠함을 즐겼다.
또 다른 이유는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은 통장으로 생활한 결과 나의 물욕은 강제적으로 바닥을 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한 후 종종 물건이나 옷을 사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꼭 필요하고 활용성이 큰 물건만 골라 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구두쇠력을 옆에서 관찰해 오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용 대리님(지금은 과장님이 되셨다).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고 첫 회사 사수이자 친한 친구인 용 대리님을 얼마 전 한 막걸릿집에서 만났다.
“재민 씨는 돈 좀 써야 해. 나 봐봐. 이것저것 잘 사잖아.”
“나도 아는데, 대리님처럼 그렇게 못하겠어요.”
“그래도 재민 씨 자신한테 선물을 줘요.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사실 속으로는 나도 돈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금융치료’가 필요했지만, 선뜻 돈 쓸 마음이 안 간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나에게 돈을 쓰지 않아서 월급이 주는 행복이 없었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쉽게 월급을 포기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돈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돈을 너무 밝히면 추해 보인다고. 내가 추해 보이는 건 딱 질색이니까.
막걸리를 알딸딸하게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 살짝 짜증이 났다. 나는 왜 이렇게 아껴 쓰고 사는 걸까. 회사에 다니는 최고의 장점은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월급과 고용 안정성 아닌가! 늦은 밤, 집으로 가면서 스스로와 약속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나에게 무엇이든 선물하기로. 걱정하지 말고 펑펑 써보자고. 자본주의의 달콤한 맛을 나도 한번 맛보자고.
그래서 23일 월급이 들어온 알림을 보고 변태처럼 미소를 지었다. 오늘 나는 나에게 어떠한 선물을 할 거니까. 23일 금요일의 퇴근길 발걸음은 가벼웠다. 월급을 받아서 행복하다기보다는 내가 나에게 수고했고 잘했다는 의미로 선물을 주는 날이기 때문이 더 컸다.
금요일 밤. 나는 다양한 품목의 선물을 샀다. 제일 먼저 산 건 애플 펜슬이었다.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필요했지만, 쉽사리 지르지 못했던 애플 펜슬은 마치 나의 구두쇠력의 상징이었다. 있으면 좋고 가지고 싶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인 애플 펜슬을 샀다. 또 옷 한 벌을 샀다. 옷 가게에는 특히 사람이 많았다. 월급날에는 쇼핑을 하는구나 33년 생애 처음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소 사고 싶었던 냄비와 프라이팬을 샀다.
하루 동안 40만 원어치 쇼핑을 했다. 결제할 때마다 이거 진짜 괜찮을까? 나 미친 거 아닐까 했지만 다 쓰고 보니 별거 없었다. 돈을 써서 행복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깨달은 것은 있었다. 내가 고생한 것에 관해 내가 칭찬해 줘야 한다는 것.
구두쇠력은 스스로 절제하는 걸 기르는 특성이 있고 남을 뛰어넘어 자신에게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었었다. 그래서 <퇴사 사유서> 펀딩이 성공했을 때도, 프리랜서로 처음 생활비를 벌었을 때도, 퇴사했을 때도, 처음 취업했을 때도 나는 나에게 아무런 칭찬과 보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을 끝마쳤을 때 큰 기쁨이 따라오지 않았다.
이번에 나를 위한 선물을 사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물건을 갖는 기쁨이나 소비하는 기쁨이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선물을 한다는 의미가 나를 기쁘게 했다. 내가 나를 아껴주는 느낌이랄까? 앞으로도 나는 나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하든 못하든 마무리 지었으면 칭찬해 주고 완성과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끝을 낸다는 건 기쁜 일이라는 걸 내가 느낄 수 있게, 수고했으면 수고했고, 실패했으면 고생했다고 말이다.
당분간은 월급을 받으면 몇 푼은 나를 위해 꼭 사용할 예정이다. 나를 더 아껴주고 내 삶을 내가 응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