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대접 : 12월, 가족 그리고 함께 식사
두 번째 식사 대접을 하고 열흘이 지났다. 첫 대접과 다르게 이번 대접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돌아보니 불안한 점도 있었으나 가뿐히 이겨내었고 성공할 것 같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요리도 있었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따듯한 식사가 있었다. 가족이 모여 같은 음식을 같은 시간에 먹은 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연말 식사였고 기분 좋은 대접이었다.
맨체스터 유학 시절,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항상 외로움의 시간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그 거리가 얼마나 멀든 간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맨체스터에 남은 소수의 유학생 친구들과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고는 했다.
크리스마스 날의 맨체스터 길거리에는 사람 한 명이 없고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마치 한국의 설날처럼.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전날 미리 먹을 음식이나 재료를 사 놓아야 하고 은행이나 우체국 업무도 미리 마쳐야 한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어 외로웠지만 그렇다고 기숙사에서 \<나 홀로 집에\>를 찍은 것은 아니었다. 맨체스터에 남은, 몇몇은 어색하기도 한 친구들과 함께 로스트 치킨을 해 먹거나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며 따듯한 연말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는 나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지 못하는 것이 시리기도 했다. 유학생의 구슬픈 운명이랄까.
2022년 3월 말, 퇴사를 하며 제일 중요한 목표로 삼은 것이 있었다. 근본적으로 내가 느껴온 욕구와도 맞먹는 선언이자 목표인 ‘홀로서기’. 이 선언의 뜻이 단순히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고 관계없이 자립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나의 두 발로 온전히 서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2022년 연말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비슷하게 우리 가족에게도 조금은 다른 연말이다.
엄마는 내가 두 번째 식사를 대접하고 서울로 돌아갔을 때 할머니를 챙기시느라 바쁘셨다. 할먼네 외부 창고의 낡은 지붕이 바람에 날아가 수리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있던 이모들과의 경주 여행이 갑작스럽게 취소되면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셨다.
누나는 매형과 서로 24일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날이 돼서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누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쭉 보니 브런치 가게에서 누나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낸 기록이 남아있었다.
아빠는 일 때문에 해외로 출국하신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아빠의 크리스마스는 영화와 낮잠으로 이루어졌다고 가족 카톡방에 메시지를 남기셨다. 나는 아빠도 연말 식사 때 같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빠는 익숙하신 듯 덤덤하게 해외에서 가족과 떨어져 연말을 보내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나는 크리스마스를 서울에서 보냈다. 남은 며칠도 엄마 집에 내려가지 않을 예정이다. 엄마, 아빠는 각자의 집에서, 누나는 새로 생긴 가족들과, 나는 서울에서. 각각 떨어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하지만 영국에 있었을 때와같이 외롭고 시리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올해는 가족과 한데 모여 연말을 보내지 않더라도 충분히 따듯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12월. 두 번째 식사 대접을 통해 이미 나의 연말은 따듯하게 예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다 같이 식사하며 시간을 보낸 것뿐인데 그 여운이 연말 끝까지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친구와 사람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함께하는 삶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오랫동안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작은 기둥이 되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이번 대접은 그런 대접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대접.
홀로서기를 하고 싶지만 혼자 서있고 싶지는 않다고 느낀다. 같이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힘이 되는 일인지 알기에. 비록 우리 가족은 오늘도 각자 다른 장소에 있지만 혼자 서있지 않다.
2022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