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7일 (토) - 3

둘 대접 : 12월, 가족 그리고 함께 식사

by 재민

요리를 시작하고 3시간 후,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가 식탁 가운데로 올려졌다. 다 차려진 한 상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엄마 집 식탁은 꽤 튼튼했다) 내가 3시간 동안 노력해 만든 식사이니 말이다. 가족들은 ‘이건 뭐고 저건 뭐야’를 외치며 요리에 관해 질문했다. 음식을 코 앞에 두고 루꼴라 페스토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로스트 베지터블은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는지, 스테이크를 잘 굽기 위해서 내가 어떤 레시피 영상을 찾아보고 연구했는지 자랑스럽게 마구 떠들어댔다. 다행히 가족들은 말 많은 나의 이야기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들어주었다.


식구들은 각자 접시에 샐러드, 로스트 베지터블, 스테이크를 옮겨 담아 먹었다. 엄마를 위한 식사 대접이지만 엄마는 가장 늦게 식사를 시작하셨다. 아기 조카를 챙기신 후 제일 마지막으로 스테이크와 야채를 집어 가셨다. 아들이 식사를 차려주는 오늘도 엄마는 가족을 챙기는 걸 제일 우선으로 하신다. 덕분에 아기 조카는 자신을 위해 따로 차려진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었다.


스테이크가 담겨 있던 접시는 금세 비워졌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또 스테이크를 굽기 위해 주방으로 돌아갔다.


“조금 더 웰던으로 구울 수 있을까?”


누나가 말했다. 알고 보니 매형은 핏기가 있는 고기를 잘 못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고 이번엔 속까지 익힌 웰던으로 부탁했다. 그렇게 웰던으로 구운 고기는 내 생각과 다르게 질기지 않았고(아마도 나의 고정관념이 아닐까) 소고기 풍미도 좋아서 모두가 즐기며 먹을 수 있었다. 스테이크는 다시 한 번 더 구워졌고 모든 식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오늘 준비한 음식은 우리 가족의 뱃속으로 그 존재를 감추었다.


메인 식사가 끝나고 상을 한번 정리했다. 그리고 디저트인 멀드 와인을 준비했다. 미리 오렌지, 라임, 레몬, 설탕을 넣어 조린 와인 시럽에 남은 레드와인 한 병과 시나몬 스틱을 넣어 팔팔 끓였다. 몇 분 후 와인 향이 주방에 잘 퍼졌고 달콤하고 향긋한 맛을 기대하며 반 숟가락 맛을 보았다.


“웩!”


맛을 본 내 혀는 찌릿찌릿했다. 첫맛은 달콤한 시트러스 과일 향이 났고, 중간 맛은 풍미 있는 포도 향이 났는데 끝맛은 떫고 쓴게 아닌가. 내가 먹었던 멀드 와인과 확연하게 다른 맛이었다. 어쩐지 오늘 식사 대접이 잘 진행된다 싶었다.


급하게 불을 끄고 엄마께 조언을 구했다. 엄마는 와인의 떫은맛이 올라왔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세히 보시면서 같이 넣어 끓이던 과일을 꺼내 맛보시고 말했다.


“이거네, 이거.”


와인과 과일을 너무 오래 그리고 팔팔 끓여서 떫게 되었다는 엄마의 진단이 나왔다. 당황한 나는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더니 멀드 와인이나 뱅쇼를 만들 때 너무 오래 끓이면 와인이나 과일 껍질에서 타닌이라는 성분이 나와서 떫어질 수 있다고 한다. 미처 레시피를 배울 때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다음에 만들 때는 끊이는 대신 뭉근하게 데워주고 과일의 껍질은 벗겨 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대접의 마무리인 디저트를 실패한 게 아쉽지만, 무엇인가 하나 배웠다고 생각했다.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꿀을 넣어 응급조치한 멀드 와인은 나와 엄마만 한 컵씩 먹기로 했다. 대신 다른 디저트로 낮에 누나와 매형이 사 온 딸기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딸기가 듬뿍 올라가 있었고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리는 케이크였다. 케이크를 꺼내 박스 위에 올려놓고 엄마 집 식탁 위 조명만 켜둔 채 크리스마스 캐롤 음악을 틀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풍겼다. 분위기를 즐기며 실패한 멀드 와인과 달콤한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케이크를 자르기 직전, 아기 조카는 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를 맨손으로 집어 먹으려 유아용 의자에서 기어나와 식탁에 올라가는 바람에 누나에게 혼이 났다. 혼이 난 아기는 삐쳐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그리고 귀여운 얼굴로 삐친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이 모습을 본 누나는 곧장 핸드폰 카메라를 켜 아가의 삐친 모습을 기록했다. 혼났다고 삐친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우스웠는지 식구가 모두 아기 조카를 보며 웃었다. 나의 두 번째 대접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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