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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Feb 01. 2023

노래를 들으면서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는 편 입니다.

결국 원하는 건 개성이 인정되는 것.

핸드폰으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낼 땐 유튜브에서 쇼츠를 본다. 신이 정해주는 운명처럼 알고리즘을 통해 내 화면에 자주 뜨는 콘텐츠는 <엠지 오피스>다. 아래에서 위로 콘텐츠를 넘기다 <엠지 오피스>가 나오면 이미 봤던 내용들이지만 멈추게 된다. 오늘도 ‘맑은 눈의 광인’은 “저는 노래를 들으면서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는 편 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젊은 꼰대는 “그럼 한 쪽만 끼고 일해요”라고 말한다. 그들은 웃음을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 당당히 양쪽 귀에 이어폰을 못 끼던 나를 생각나게 한다.


노래를 들어야 능률이 올라가는 게 어디 맑은 눈의 광인뿐일까. 아니면 나도 맑은 눈을 가진 광인인 건가. 집중을 해야 할 땐 꼭 노래를 백그라운드 노이즈처럼 틀어놓는다. 잔잔한 지브리 오에스티부터 다리를 저절로 떨게 되는 엘모가 그려진 노동요까지. 노래는 능률이고 집중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노래를 듣는 건 회사적 통념상 금지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팀장님이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 선배들과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누가 부르면 대답을 못 할 수 있기 때문에. 상급자가 부르면 발이 보이지 않게 후다닥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배에게 질문했다.


“대리님. 노래 들으면서 일해도 돼요?”

“재민 씨. 팀장님이 부를 수 있으니까 한쪽만 끼고 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는 일단 그렇게 해요.”

“한쪽만요? 대리님, 그럼 귀 안 아파요?”

“귀 아프긴 한데 번갈아 끼면 괜찮아요. 하하.”

“하하. 알겠습니다.”


이어폰 한쪽만 끼는 방법을 거리낌 없이 수긍했고 계속해서 그렇게 한쪽의 노래만 들었다. 팀장님의 “재민아”소리는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지만 낮은 호출 빈도와 별개로 나는 언제든지 팀장님 자리로 뛰어갈 대비를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쪽으로 노래를 들으면 그 한쪽 귀가 아파온다. 이따금 오른쪽 귀가 아프면 이어폰을 왼쪽에다 끼고 또 바꿔 끼고 바꿔 끼었다. 귀가 세 개였으면 덜 아플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양쪽에 끼고 있으면 덜 아플 텐데. 이제 와 보니 맑은 눈의 광인이자 동시에 젊은 꼰대였던 나의 내적 갈등이 <엠지 오피스>를 보면 웃게 만드는 것 같다. 하!


노래를 들으면서 일하고 싶었던 나를 돌이켜 보면 나에게 맞는 일 환경을 찾는 방법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노래를 들으면서 일하고 싶어’는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라는 질문의 한 가지 대답과 같은 것 아닐까. 결국 원했던 건 내 개성이 인정되는 것이었으니까. 회사가 좀 더 높은 자율성으로 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기를 바랐다.


퇴사하고 작가 겸 프리랜서가 된 이후엔 카페에 가거나 집에서 노래를 잔잔하게 틀어놓고 일한다. 오늘도 카페에 와서 사람들의 소리와 제목 모를 배경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 나에게 맞는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게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준다는 믿음이 생겼다. 오늘은 이 환경을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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