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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Feb 03. 2023

가식적인 웃음과
과도하게 친절한 상담

살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일

안녕하세요. 전시회 포스터 및 리플렛 제작 관련 문의 드립니다. 여쭤보고 싶은 것은 아래 내용과 같습니다!

1. 포스터/리플렛 최종본 완성 일자(제작이 급한 상황이라 언제까지 제작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2. 리플렛 추가 제작 가격


핸드폰 알림에 뜬 프리랜서 플랫폼 크몽을 통해 온 메시지다. 요즘 나는 꿈은 작가로 생계는 프리랜서 편집 디자이너로 살고 있다. 상담을 요청한 의뢰자는 내가 크몽에 올린 저렴한 가격의 서비스를 메시지를 보냈을 거다. 길지만 별 내용 없는 메시지는 전시회 포스터를 만들고 싶다는 의뢰였다. 가식적인 웃음 이모티콘과 과도하게 친절한 말투로 나는 상담을 이어 갔다. 의뢰자의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말투와 섣부르게 작업을 요청하는 것 보니 마음이 급하디급해 보였다.


의뢰자님 :) 혹시 언제까지 최종 결과물을 받아보시길 원하시나요^^?


2월 5일까지는 시안 한번 보고 싶습니다! 너무 조급하긴 한데 가능할까요?


의뢰자는 무슨 뜻이었을까? 오늘은 2월 2일 목요일이고 2월 5일은 3일 뒤 일요일이다. 지금 나에게 기획안도 디자인 방향도 없는 포스터를 주말 동안 만들어 내길 바라는 건가? 양심도 없지. 하지만 1월에 원하는 수익을 내지 못한 나는 생계를 위해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본다.


5일까지 시안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일정 조정은 불가능하실까요^^?


6일까지요.


네? 설마 6일 아침에 받아보길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 의뢰자님 도대체 10만 원짜리 포스터 서비스에 무엇을 원하시는 건가요!


프리랜서를 석 달 동안 하면서 혼자 깨달은 것들이 있었다. 첫 달에는 기획안과 디자인 방향이 없는 클라이언트는 결과물도 좋지 않았다. 둘째 달에는 생계와 꿈의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 달엔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내가 오래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기간 동안 깨달은 것들을 토대로 나만의 프리랜서 규칙을 잡았다. 창작을 제일의 우선순위로 두고, 금, 토, 일은 프리랜서 일을 하지 않고, 기획이 있는 디자인 의뢰를 받아 스트레스를 최소화한다. 하지만 이러다가 의뢰받지 못해 당장 수익을 못 낼까 봐 두려웠다.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 나를 위해 정한 규칙을 깨고 싶진 않았다.


포스터 기획 및 시안 제작까지는 적어도 평일 2-3일이 걸립니다 :-) 적어도 7일 화요일까지는 기한이 있어야 작업이 가능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최대한  가식적인 웃음과 과도한 친절로 답장했다. 역시나 결과는 읽씹이었고 하루가 지나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전시회 포스터 디자인에 10만 원도 안 되는 견적과 주말 작업이 가능한 디자이너를 찾아 떠났으리라. 제발 부디 그런 디자이너가 없게 해주세요. 의뢰를 놓쳐 살짝 아쉬운 기분에 이렇게 빌어본다.


의뢰 상담이 읽씹으로 끝난 후 역시나 새로운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까 불안하다. 하지만 내 목표는 창작으로 수입 만들기지 프리랜서로 이전 직장 연봉 뛰어넘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직하지, 퇴사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늘도 작년 3월, 퇴사하면서 스스로 했던 말을 생각한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자. 살아갈 길은 또 어떻게든 생기겠지.


당신은 어떠십니까? 오늘도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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