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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Dec 20. 2023

부부는 바나나껍질로도 싸운다

부부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고도 심오하다.

7년에 가까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동성의 룸메이트와는 다퉈본 적 없는 소재로 남편과 말싸움이 난다.


대체 왜 이런 걸까.


남편은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배가 고프다며 바나나 하나를 깠다.

나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는 이번 바나나가 맛있다며 하나를 순삭 했다.

나도 빨래가 잘 말랐다며 뽀송한 빨래를 개고 있었다.


남편은 바나나껍질을 집어 들고 빨래를 개고 있는 나에게 물어었다.


"바나나껍질 어디에 버려? 여기 둘까? 쓰레기통?"


그의 집게손은 일반쓰레기통 위에 바나나껍질을 간신히 들고 있었다.

갑자기 화가 솟구쳤다.


"여보, 우리 생각을 해보자. 바나나껍질이 일반쓰레기통에 들어가면 곰팡이가 피고 썩겠지?"

"아니, 그래서 어디에 버려? 왜 그렇게 가르치는 말투야?"

"나 지금 일 년째 말하고 있어."

"나 바나나 먹고 집에서 버리는 건 지금 처음인걸?"

"아니, 음식물로 처리되어야 하는 모든 걸 일 년째 물어보잖아."

"그냥 말해주면 되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여보, 일 년이면 심한 거 아닐까? 물기 있는 음식물은 당연히 일반쓰레기통에 버리면 썩고 냄새날 거라고 생각 안 해?"

"나는 여태 그냥 일반쓰레기통에 넣고 살았으니까 그렇지"

"냄새나는데, 우리 집안에 음식물이 썩고 있는 거잖아."

"나를 오히려 칭찬해 줘야 되는 것 아냐? 나는 자기 생각해서 바나나껍질 안 버리고 물어봤잖아. 나는 그렇게 안 살았다니까?"

"그만 말다툼하자."


그는 나에게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화가 당연히 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음식물 중에 바나나껍질은 처음이다.

나는 음식물을 따로 모아야 한다고 일 년을 말했다.


아... 부부란 이런 것인가.


바나나껍질의 논쟁 이후

남편이 토라져서 안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한참 후에 안방에 들어갔더니 그의 엉덩이가 빼쭉보였다.

너무 얄미워서 엉덩이를 걷어찰 생각으로 발을 올렸다.

 

나는 공중부양을 했다.

갑자기 온몸이 붕 뜨더니, 내 눈에는 천장이 보였다.

하... 이날 샤워 후에 오일을 발랐다. 오일이 너무 미끄러워서 바닥에서 넘어진 것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크게 넘어진 것은 처음이다.

정말 서럽게 울었다.

남편이 말했다.


"와... 뒤돌았는데 여보가 붕 떠있던걸?"

"이런 걸로 안 죽으니까 걱정 마, 그러길래 나를 왜 걷어차려고 해서는 아이고."


한 손에는 갤탭을 들고 있었는데, 어찌나 크게 넘어졌는지 갤탭으로 찍은 곳에 장판이 까졌다.

나는 그 뒤로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2주 넘도록 받고 있다.


아직도 한 번씩 남편은 피식 웃어댄다.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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