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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Dec 25. 2023

20여 년 만에 엄마와 백화점을 갔다

엄마는 밖을 나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체력이 약하기도 하고, 어딜 가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를 억지로 끌고 여행을 다녔다.

타 지역으로 놀러 가 맛집도 가고 관광명소도 찾아가 사진도 찍는다.

부러 지역의 카페를 가거나 외식을 하기도 한다.

특이점은 막상 나가면 굉장히 즐거워하신다.

물론 나가기까지 마음먹는 것이 한세월이다.


한날은 남편과 친정을 갔다. 엄마와 남편, 나 셋이 모여 차를 마시며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맘때쯤 남편과 나는 백화점을 자주 갔었다. 꼭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예쁜 옷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에는 참 좋은 옷들이 많구나.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는구나.

남편과 둘이서 언젠가는 돈을 열심히 벌어 저런 멋진 옷을 사 입어보자고 다짐한다.

나름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면서 당당하게 매장에서 옷을 입어만 보고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고 있자니

엄마가 나지막이

'엄마도 백화점 한번 가보고 싶다.'

한마디 던졌다.

나는 놀라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백화점 안 가봤어?"

"백화점이야, 너희 어릴 적에 많이 갔지. 크고 나서는 간 적이 없는데?"

"아니, 엄마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 안 가봤어? 집 근처에 저렇게 큰 백화점이 있는데?"

"친구들이랑 백화점 갈 일이 뭐 있니, 만나면 카페 가고 밥 먹는 게 최고지."



집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위치에 신세계백화점이 있다.

그래서 당연히 가본 줄 알았다. 적어도 몇 번은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엄마는 백화점에 안 간 지 언 20여 년이 넘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당장 옷을 입으라고 했다. 남편에게 백화점에 가자고 말했다.

엄마는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남편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남편은 나를 방으로 부르더니 장모님 옷이라도 사드리고 싶다며, 돈을 좀 쓰겠다고 언질을 주었다.

나는 당장 엄마에게 나가자고 외쳤다. 둘은 나의 고집에 손발을 들고 길을 나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해. 남편.

엄마가 백화점을 안 가봤다고 하니 울컥 올라오는 마음에 즉흥적으로 행동했다.


백화점에 들어서니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난 규모에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처음 본 것이 명품매장이었다. 샤넬, 프라다, 불가리, 구찌 등등

엄마는 너무 놀란 기색을 하고는 내게 말했다.



"아니, 명품매장이 이렇게 한 군데에 전부 모여있어? 원래 그런 거야? 개별 매장으로 있는 게 아니고 백화점에 이렇게 있는 거야?

"장모님 백화점에 모인 지 꽤나 되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오셨군요?"


"엄마 입어보고 싶은 브랜드 있어? 꼭 안 사도 돼, 백화점은 입어보라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잖아!"

"음... 막스마라? 유튜브에서 잘 나가는 언니들이 입는 걸 봤어."



세상에 엄마가 막스마라를 알다니. 옷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여성들의 가장 워너비 브랜드인 막스마라를 말했다.

나도 예전에 남편과 백화점을 갔을 때 막스마라를 입어보고 역시 좋은 옷은 다르구나 생각했던 그 브랜드다.

신세계의 층별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막스마라.


엄마를 데려가서 막스마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캐시미어 마담 코트를 입혀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담이 아니라 낙타털로 만든 마누엘라 한 점을 보여줬다. 가격은 500만 원 정도였다.

캐시미어보다 부드럽지 않은데, 낙타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결과 색감이 있어 독특했다.

나는 그 와중에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캐시미어 100% 마담라인 코트는 없나요?"

"고객님 그 모델은 이미 여름에 다 나가요. 한국매장에는 6월이면 들어와서 지금은 없어요."

"세상에 겨울코트를 여름도 시작 전에 다 사간다고요?"

"저희 막스마라는 그게 기본인데, 모르셨군요."



그렇다.

그놈의 저희 막스마라는 무슨 쪄 죽을 것 같은 여름에 캐시미어코트를 구하러 백화점에 가야 되는구나.

그것도 한두 푼 하는 코트도 아닌데, 이미 다 품절이라는 소리에 대체 대한민국에는 얼마나 많은 부자들이 사는 걸까 새삼스레 명치가 아파왔다.

엄마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낙타털 코트를 조용히 벗어놓고 나왔다.



"무슨 코트하나에 500만 원은 너무 심하지 않니? 캐시미어 코트도 그 정도 하는 거야?"

"응, 내 기억에는 좀 더 높았던 것 같아."



남편은 엄마에게 옷을 사드리기 위해 여러 옷을 권유했다.

그리고 다른 매장에 들러 비슷한 카멜색 코트를 여러 개 입어보았으나 엄마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울 쩍 해 보였다.

엄마는 몇 번 코트를 입어보다가 나에게 코트를 계속 넘겨주었다.


엄마는 사위의 옷을 하나 사주고 싶었는지, 남편에게 옷을 몇 번 골라줬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비싼 옷들이 지금 입고 있는 옷보다 더 못나 보이게 만들었다.

엄마와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본의 아니게 남편의 재롱에 엄청 웃었다.

사실 남편은 옷을 고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사람이다. 패턴, 짜임, 두께, 소재, 색감 등이 무난하면 어울리지가 않는다.

남성복 브랜드에서 나오는 깔끔한 디자인을 입혀놓으면 사람이 그렇게 빈해질 수 없다.



결국 엄마는 사위의 옷사주기에 실패했다.

사위도 장모의 옷사주기에 실패했다.



그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길래 나는 먼저 잠자리에 일어나 나갔다.

엄마는 차 한잔을 홀짝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앉아서 아침인사와 함께 어제의 쇼핑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어제 정말 큰 경험을 했다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브랜드가 있는 줄 몰랐어. 예전 너희 어릴 때 갔던 백화점 하고는 정말 비교가 안되더라고.

그사이에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아. 명품 매장이 한 층에 전부 모여있지를 않나. 그냥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기가 벌써 마감된 곳도 있고.

아예 구경도 못해보는 것 아냐."


그렇다. 그날 조금 늦게 백화점에 도착한 탓에 샤넬, 디올 같은 명품브랜드는 당일 대기가 마감되어 있었다.

엄마가 궁금했던 샤넬은 근처도 못 가봤다.


"백화점 규모도 놀라운데, 그 막스마라 말이지. 걔는 분명히 내가 유튜브에서 본 건 백만 원 대였어. 그 잘 나가는 언니가 150만 원 정도라고 했는데

가서 입은 것들은 왜 500만 원 대야? 나는 그래도 백만 원 대면 한벌 사보고 싶었는데, 디자인도 많이 없고 왜 그런다니?"


그렇다. 엄마가 본 유튜브 영상의 막스마라코트는 막스마라 하위 라인인 S막스마라, 위켄드 라인이었을 가능이 높겠다.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제작되고 재질도 울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도 차도 캐시미어 마담코트는 6월에 사야 되는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엄마가 제일 슬펐던 건, 엄마가 이제는 뭘 입어도 안 어울리더라. 얼굴도 쪼글거리고. 얼굴색도 노랗게 떴어. 검은 머리라 그런가 카멜색도 안 받더라.

엄마 예전에는 너처럼 얼굴도 하얗고 머리가 길어서 그런가 무슨 색이든 다 잘 받았거든? 옷을 고를 때 색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어. 근데 이제는 색도 신중하게 골라야겠더라.

요즘 카멜색이 그렇게 입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안 어울리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머리 색 때문인 것 같지?"


그렇다. 엄마는 백화점에서 엄마의 나이 듦을 발견해 버렸다. 그동안 회사에 나갈 때는 아무 옷이나 걸치고 나갔던 터라 몰랐던 것이다.

백화점의 큰 매장 안에서 번쩍이는 조명 아래 월만큼 주름진 피부가 쳐진 몸매가 유독 지독하게도 두드러져 보였던 것이다.


사실 나도 알았다. 예전 같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늘 30~40대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곧 환갑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과거의 찬란했던 커리우먼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과거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롱 기장의 알파카 코트를 펄럭이며 다녔다.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던 엄마는 늘 긴 기장의 코트를 입고 다녔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지고 화려한지. 어딜 가나 눈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 세월에 익숙해져야 하고 받아들임의 미학을 실천해야 하는 나이에 들어섰다.


엄마의 머리색을 바꿔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엄마에게 염색약을 사러 올리브영에 가자고 했다. 어쩐지 이날만큼은 엄마가 선뜻 가자고 말을 했다.

자신의 머리색으로 기분전환이라도 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자고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우리는 올리브영에서 도착했다.

그리고 가장 밝은 염색약을 사들고 와서 당장 염색을 시작했다.


염색을 하는 내내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놀랍게도 엄마는 염색이 정말 먹지 않는 자연모로 염색을 했음에도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행복해했다.


그걸로 그럼 된 것이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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