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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Jun 08. 2020

엄마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

유효기간이 지난 오래된 필름 속 내가 소중하게 기록한 '지금'의 순간들

집에서 엄마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와 유효기간이 2006년까지인 필름을 3통 발견했다. 카메라는 오랫동안 작동시켜보지 않아서 건전지를 넣어도 제대로 작동을 할지 의문이었고, 필름은 유효기간이 지나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에서 발견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작동시키기 위해 먼저 필름 카메라에 들어가는 건전지를 구해야 했다. 필름 카메라에 들어가는 건전지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전지 크기와 달랐다. 건전지가 들어가는 부분에 손가락을 넣어보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전지 크기보다 짧고 뚱뚱한 건전지가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인터넷에 열심히 검색해보니 필름 카메라에 들어가는 건전지는 ‘CR123’인데 많이 사용하는 모델이 아니라서 큰 마트에 가서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저녁에 집 근처 롯데마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건전지를 구하긴 구했는데, 카메라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기에 실제로 건전지를 넣었을 때 작동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건전지를 넣었더니 회색 화면에 불이 들어오며 지잉-하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그때의 기쁨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의 오래된 편지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실제로 그 친구의 ‘여보세요?’라는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뭉클한 기분이었다.


유효기간이 2006년까지인 필름은 사용할지 말지 살짝 고민을 했다. 사진을 찍더라도 바로 필름 사진의 상태를 확인해볼 수도 없는 데다가 36장을 다 찍고 사진관에 직접 가서 현상을 하고, 결과물을 받아보고 나서야 그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수고와 비용을 다 치르면서 할 만큼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불리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필름을 사용한 몇몇 사람들의 블로그 글을 읽어 보았고, 필름이 오래되면 노란 끼가 많이 돌거나 색이 변질돼서 나올 수는 있지만 사진이 나오기는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필름 사진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고. 필름은 빛에 약하기 때문에 어디에 오랫동안 보관했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잘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백수 상태이고,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이것저것 쓸데없는 짓을 많이 벌이는 중이었기 때문에 일단 시험 삼아 한 통을 먼저 써보기로 했다.


친구와 자전거를 타면서 본 갈대밭 풍경.


나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필름을 넣는 방법조차도 몰랐다. 내게 카메라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아주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나의 작은 손을 잡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찍을 때마다 찰칵 소리가 크게 나던, 검은색의 투박하게 생긴 물건이다. 필름을 넣는 방법 또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냈다. 필름을 카메라 안에 넣고 덮개를 닫으니 지잉-하며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회색 화면에 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나는 옛날에 엄마, 아빠가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나의 어린 시절을 렌즈 속에 담아 주었던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하나둘씩 내가 담고 싶은 모습을 필름 위에 새겼고 0이었던 숫자는 하나씩 커져갔다. 우리 집 앞 가로등 불빛 아래 금계국 풍경,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며 보았던 장면들, 통영 소매물도에 다이빙을 하러 가서 등대섬 트레킹을 하며 보았던 바닷가 풍경, 그리고 우리 엄마를 찍었다.


전화하고 있는 우리 엄마. 이 사진을 올렸다고 하면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질 것 같다. 다음에는 더 예쁜 모습을 찍어 드릴게요.


36장의 사진을 모두 찍으니까 자동으로 카메라에서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카메라 덮개를 열어서 다 사용한 필름을 필름 통에 담았다. 그것을 들고 필름을 사진관에 갔다. 요즘에는 모든 사진관에서 해주는 게 아니라서 필름 현상이 가능한 사진관을 찾아야 했다. 필름 현상이 가능한 사진관이 별로 없었다. 나는 한 롤에 6000원에 현상과 스캔을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5일 후에 이메일로 필름 사진의 JPG파일을 받았다.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교 합격 결과 통지 메일을 열어볼 때처럼 두근거리면서 카메라의 파일을 열어 보았다. 사진을 한장씩 내가 찍은 것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다.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항상 보았던 가로등 밑 금계국 풍경. 밤에 보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노랗게 빛나던 금계국 풍경이 참 예뻐서 사실 밤에 찍고 싶었다.


나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고심하며 찍었다. 내가 평소에 친구들과 어딘가를 놀러 갈 때마다 인생 사진을 남기기 위해 100장 정도를 아무렇지 않게 마구 찍고, 그중에서 1장 만을 남기고 99장을 삭제하는 짓을 필름 카메라로는 할 수 없었다. 내가 쉽게 셔터를 누르며 나도 모르는 사이 5000장이나 보관되어있는 내 휴대폰 앨범 속 순간의 모습들도,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면 그렇게 쉽게 기록될 수가 없는 모습들이다. 필름 위에서는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사진으로 남길 ‘만큼이나’ 대단하고 위대한 순간이 된다.


나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사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는 ‘남는 건 사진뿐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잃어버린다. 머릿속에서 우리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조금씩 바래져가고 잊혀간다. 우리는 지금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미래에는 지금의 모습, 지금의 느낌, 지금의 생각들을 내가 그랬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심하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정말 우리에게 남는 건 ‘사진뿐’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울창한 숲을 걷고 있을 때,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좋다.
구름 한 점 없고 정말 화창한 날이었는데, 필름 사진 속에서는 아주 흐리게 보인다.
바다 위에 햇볕이 비추면 끊임없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모습이 좋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눈에도 반짝반짝거리는 것이 담긴다.
하늘, 산, 바다, 꽃, 적막함.
정말 화창한 날이었는데, 1950년대 풍경을 담은 역사책 속 어떤 사진처럼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
마지막 필름이라서 사진의 중간에 갈색 줄이 생겼다.  '등대'라는 단어가 주는 희망적인 느낌이 좋다. 등대를 보면 무슨 어려운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유효기간이 지난 오래된 필름 위에 담은  36장의 사진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습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렵게 셔터를 누르기 전에 오랫동안 머릿 속에 떠올랐던 생각들이 사진마다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2006년의 필름에 2020년의 모습을 담으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사진을 찍는 ‘짓’은 사실은, 지금의 모습을 미래의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록하는 대단한 ‘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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