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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다 Aug 14. 2024

저녁 수영, 옆 레인에 전 남자 친구가 나타났다.

하필 같은 요일 같은 시간, 혼란의 시작




'내가 괜히 옆을 돌아봤나.'




4번 레인 상급자 반. 수업 시작 3분 전 미리 물에 들어와 팔을 돌리며 가벼운 몸풀기를 하다 무심코 옆을 보았다. 3번 레인 시작 지점에 나에게 너무도 익숙한 실루엣이 존재했다. 안 보고 산 지 오래라 잊고 있던 그 뒷모습. 물속에 있으니 팔과 어깨, 수모를 쓴 머리와 귀 그리고 피부색만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영락없이 그 남자였다. 비슷한 외모로 헷갈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내 눈에 박혀 있었기에 구태여 생각하진 않았어도 잊은 적은 없던 그 모습이었다. 저 사람은 나를 발견 했을까.


심장이 쿵 떨어지는 울림이 귀로 들리는 것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는 호각이 들렸다. 시작 전 체조를 위해 모든 반 수강생이 물속에서 널찍널찍 퍼져나갔다. 나는 이 모든 사람의 가장 뒷자리로 왔다. 내가 본 그 사람이 전 남자 친구가 맞는지 몰래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늘 나를 앞에 두고 내 바로 뒤에서 준비 운동을 하던 신랑이 오늘은 고맙게도 앞에 서 있었다. 불편한 그것을 확인하는 나의 굳은 표정을 신랑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왜 여기까지 수영을 온 거지?'


전 남자 친구와 같이 수영을 다니던 센터는 여기서 거리가 꽤 있었다. 같은 구 이긴 했으나 내 집에서 차로 20분 넘게 갔던, 버스로는 30분을 가야 했던 거리였다. 주에 2~3번 운동을 다니기엔 사실상 멀었다. 여기 시설이 좋아서 그 먼 거리를 와서 강습을 듣는 것인가. 지금 이곳은 두 달 전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호텔리조트급의 시설을 갖춘 New 수영장이었다. 멀리서도 와봄 직한 시설이기에 이해는 되지만 굳이 내가 있는 이 동네로 선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도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건 나다. 집에서 5분 거리인 센터를 이제 막 다니기 시작했고, 심지어 나 혼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신랑과 같이 다니는 건데. 죄지은 것도 없으니 내가 숨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나는 당당히 내 신랑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니는 것이 영 편하진 않을 것 같았다. 불편해서 한 명이 그만두게 된다면 그건 저 사람이어야 맞지. 내가 왜 나가. 하지만 저 사람도 굳이 신경 안 쓰고 다니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관찰 중인 그 남자는 이 스포츠센터에서 나누어준 수모를 쓰고 있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라면 이런 단체 수모는 쓰지 않았을 텐데. 상체를 구부려 스트레칭하는 타이밍에 맞춰 물 아래로 잠시 내려갔다. 몸은 맞는데 무릎까지 오는 5부 수영복이 낯설었다. 물속에서 저항이 생긴다며 최대한 짧은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던 그였기에 저 긴바지는 아무래도 어색했다. 하긴 그런 실력이 저 3레인에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원래 수영은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물 공포자였다. 배꼽 수위의 물에만 들어가도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껴 몸이 굳어지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큰 결심을 해서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살면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기에, 혹시 모를 재난의 상황에 대비해서 죽기 전 수영은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이때의 패기는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된 이유가 더 컸다.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남자가 같이 다니자고 제안한 저녁 수영. 사랑이 공포감보다 위에 있던 나는 그 손을 덥석 잡았고, 남자 친구가 된 그에게 많은 훈련(?)을 받았다. 본인이 워낙 능숙하고 잘하는 운동이라 어필의 장소로 끌고 온 것이었고 수린이인 내게는 그게 통했던 거지. 덕분에 열심히 했고, 욕심도 냈었고, 수영 좀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 오늘날까지도 수영은 내 인생 운동이자 활력이다. 그 제안의 주인은 이미 전 남자 친구로 지나갔지만.


본격적인 워밍업에 들어섰다. 킥판을 잡고 자유형 킥으로 왕복 3바퀴 돌고 오기. 이 순간 평소와 다르게 괜히 긴장되었다. 저 사람이 그 남자 친구가 맞다는 전제하에, 내 수영 실력이 그때보다 늘었는가 의식이 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성의 있게, 인어의 다리 마냥 물살을 느끼며 킥을 차기 시작했다. 호흡도 매번 쉬던 걸 3번에 한 번만 쉬었다. "그렇지~" 라고 외치는 강사님의 목소리. 다른 때도 이렇게만 했다면 매번 칭찬받았을 것을, 이런 자극이 주어져야만 열심히 하는 꼴이라니.  


팔은 뻗고 발은 차면서 눈알은 열심히 옆으로 굴렸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미러 수경을 착용하고 있다는 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숨이 차는지도 모르게 오가며 열심히 살폈다. 고개를 돌리는 모습도 그와 동일했고, 코와 입매도 똑같았다. 무표정한 모습까지 너무나도 그 사람이 맞는데, 킥판에 의존 중인 저 수영 실력이 의아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쓰고 있는 수경을 내리는 시점을 포착하자. 완전히 보기 전엔 나는 오늘 수업에 제대로 집중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닮은 사람이 세상에 존재있단 말인가?'




수경을 내리자마자 드러난 그 사람의 눈이 빠른 속도로 내 긴장을 잠재웠다. 눈이 완전히 달랐다. 발견 하자마자 놀라서 숨도 못 쉬던, 꼬리까지도 모든 게 닮았던 저 사람은 전 남자 친구가 아니었다. 강습에 집중할 수 없던 그 불편함은 말끔히 사라졌지만 이내 다른 이유로 소름이 돋았다.


혹시 무언가를 크게 잘못해서, 하늘에서 내게 벌을 준 건가.

정신 한번 혼미해 보라고 미운 감정을 담아서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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