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영화 보러 가?”
“드라마가 그렇게 재미있니?”
“아무래도 조금 있으면 책 위에서 자야 할 것 같아”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하는 장난스러운 잔소리들이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아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영화관 VIP를 놓치지 않을 만큼 한 주에 한편 씩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볼 때는 인물의 대사 토씨 하나 빼놓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고, 방안에 책을 놓을 공간이 없어도 계속해서 책을 사고 있으니. 그렇다고 내가 영화, 드라마, 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 비용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인생을 배우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채집한다.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멘토들이다.
나는 피곤하리만치 참 예민한 감성을 지녔다. 그런데 그런 감성을 지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내면의 목소리가 아우성치는 소리를 제대로 듣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소리를 섬세하게 찾아낸 내 마음의 일등공신이 바로 영화, 드라마, 책이었다.
어른들이 가득한 집안 분위기 탓에 겉으로 보면 나는 참 모범생이었고, 어른들의 말을 참 잘 듣는 착한 아이였고, 말을 내뱉고 내 의견을 표현하기보다는 잘 듣고 경청하고,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새겨두었다가 꼭 해야 할 말만 내뱉는 생각이 많은 아이였고 그렇게 성장했다. 그게 올바르다고 생각했고, 나는 제대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꾹꾹 눌러 담은 내면에서 조금씩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고, 공부를 할 때도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느 날은 열정적으로 공부에 임하다가도 하루 만에 한없이 축 처진 기분에 공부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아예 손을 놓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은 즐겁게 있다가도 어떤 날은 또 한 없이 가라앉는 기분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표현을 잘 안 해왔던 탓에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였지만, 나는 예민하게 요동치는 감정들 때문에 마음대로 공부가 되지 않았고, 마음먹은 대로 일을 해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런 기분의 영향은 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타인의 감정을 예민하게 헤아리는 탓에 조심스러운 면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원하는 만큼 타인에게 피드백을 받지 못했을 때,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가 흘러가지 않을 때 쉽게 상처를 받았고,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피곤해졌고,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쉽게 내면의 말을 꺼내지 않고 겉으로만 사람을 대하는 표면적인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에게는 표현하지 않고 꽁꽁 싸매었다가 지인들에게 감정의 민낯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졌고, 예민한 감정의 동요로 인해 삶을 대하는 마음은 멍투성이가 되어갔다.
만사 피곤해지다 보니 해결책이 필요했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내 마음은 나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가지씩 스스로 노력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에게 집중하며 찾아낸 방법이 영화와 드라마와 독서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었다. 다양한 작품을 찾아 읽고, 듣고, 보고, 느끼며 마음의 평정심을 찾기 쉬워졌다. 들쑥날쑥 널뛰던 감정들이 차분해졌고, 나는 예민한 사람이구나. 여러 가지 감정을 잘 흡수하는 사람이구나. 섬세한 마음의 소리를 그동안 외면해왔구나. 내 마음의 소리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마음을 느끼고 탐구하면서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었고,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알 수 있게 되었고, 타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이전보다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삶을 보는 시야도 조금씩 넓어졌다.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일들을 만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예민한 감성으로 상처를 쉽게 받기도 하고, 여러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 힘든 날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가 갖고 있는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나의 멘토들을 활용해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지 해결책을 찾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섬세한 마음을 스스로 자책하기보다는, 이 마음이 따뜻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의 공부가 필요한 날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이 멘토들을 언제든 찾을 것이다. 나의 멘토들은 항상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고, 다양한 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고, 많은 지혜를 축적하고,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는 풍성한 감성을 지닌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마음의 달란트는 영화, 드라마, 책과 함께 할 때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나의 멘토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단순한 낭비로 바라보지 말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