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큼 빠르게 적응하기 / 홈스테이
잠자리에 많이 예민한 편이라, 잠자리가 갑자기 변하게 되면 잠을 잘 못잔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도 깊은 숙면은 어렵고 새벽 일찍 깨는 편인데 이 곳에서의 첫날밤은 노곤했던 탓인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스르륵 잠들어버렸다.
둘째날 아침이 밝아오고, 일어나서 1층으로 내려가니 홈스테이 엄마 ('나는 그녀를 영국 엄마라고 불렀다.) Sue 를 만나 나를 격하게 반겨주셨다. 그녀는 농담식으로 어제 나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들어버렸다며 가볍게 허그를 했다. 1층부터 시작된 집 소개 그리고 집에서 지켜야하는 규칙을 소개해주었다.
[규칙]
1.아침은 혼자서 먹으며, 직접 먹어야 한다. (간단한 시리얼이랑 빵 위주)
2.저녁은 온 가족이 모두 함께 해야하며, 저녁을 먹고 들어 올 시에는 꼭 미리 연락해주어야 한다.
(식탁에서는 모바일 폰 들고오지 말기 / 저녁 식사는 꼭 가족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갖기 위함이다.)
3.영국은 화장실이 건식이라, 목욕을 할 때에는 바닥에 물이 튀지 않도록 커튼을 꼭 치고 목욕을 해야 한다.
4.빨랫감은 방에 있는 바구니에 넣어 놓으며, 매일 아침에 걷어갈 것이다.
5.절대 어려워하지 말고 편하게 지내렴!
어학원에서 출국 전에 몇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해주었는데, 웬만하면 호스트 집에 있는 스토브는 손에 대지 말라고 해서 Sue 가 굳이 말을 해주지 않아도 뭔가 지켜야할 것 만 같았다. 보통 냉장고도 티가 있는 찬장에만 손을 댔었다. Sue는 이번 아침은 직접 챙겨주고 싶다며, 연어 샌드위치와 티를 챙겨주었다. 익히 듣기는 했었는데 영국에서는 티를 마시는 건 하나의 문화이다. 영국에서는 식사 시 뿐만 아니라 매 식사가 끝나고 난 뒤 마신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영국인들은 각자 티를 마시는 취향이 다르다. 설탕을 한 스푼, 두 스푼 넣느냐 아님 우유를 넣을지 말지.. 그래서 꼭 티를 타기 전에 티를 어떻게 먹는지 물어봐주신다. 나는 한국에 있을때 차를 좋아했어서, 또 영국처럼 흐린 날씨에 목을 녹이기에는 티 한잔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티 마시는 문화가 좋았다.
그녀는 또 나에게 내일 새로운 룸메이트가 온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설마 한국인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같은 동양권도 아닌 스위스에서 온다고 한다. 쉽게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집에 혼자가 아니라 의지할 친구가 있다는 점이었고 그것도 처음 보는 스위스 사람이라니 설레였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자라고 배운 학생으로서 듣기와 문법은 가능하지만 말하기는 자신감도 없고 완전 잼병이었다. 늘 완벽한 문법을 구사하면서 문장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상적인 대화도 그녀와 대화하기 어려울 정도 였다. 그래도 그녀의 친절한 배려심으로 천천히 말해주고 못 알아들으며 쉽게 표현해주고 다시 한번 말을 해줘서 고마웠다. 전에는 한국 여학생이 지냈다는 말을 하며 어느 정도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많이 알고 계셨다.
계속 얘기하다보니 Sue 는 말을 하는 걸 좋아하고 성품이 따뜻하셨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자기 자식은 국룰인 것 같다. 나한테 자식 자랑을 하며, 이 집은 총 3명의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은 성인이 되어 대학을 가면 보통 독립을 하는 편이라, 막내 딸만 지금 남아있고 큰딸은 취직을 해서 런던에 거주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맨체스터 대학을 다녀서, 현재는 맨체스터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한테 큰 딸은 뮤지컬 쪽에서 일을 하며 둘째 아들은 좋은 성적을 가지고 그 유명하다던 맨체스터 비즈니스 스쿨을 다닌다는 말을 해주었다.
열심히 대화를 하고 나니 그녀는 나와 함께 동네 구경과 학원 가는길을 설명해주겠다며 옷 갈아입고 내려오라고 하셨다. 집에 나오자마자 학교까지 가는법을 설명해주었는데, 구글맵보다 이 길로 가는게 지름길이라며 빨리 학교를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마트가 있어 내가 필요한 생필품과 Sue는 저녁거리를 사러 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큰 공원이 있어 같이 동네 산책도 하며 이런저런 일상 대화를 나누었다. 포츠머스라는 도시는 런던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여유가 넘쳐보였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때 런던에서의 사람들은 굉장히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었는데 이 곳은 달랐다. 또 한국에서의 빨리빨리 문화권에서 살아온 나는 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자 큰 충격이자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집에 와서 이제 방 정리를 좀 하고, 낮잠을 자고 나니 그녀는 디너타임이라며 나를 불렀다. 이 집에 와서 처음 먹는 영국의 가정식! (큰 차이는 없지만, 쌀이 아닌 빵이 주식이고 매 식사 시 마다 감자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요일 저녁마다 먹는 선데이 로스트 (Sunday Roast) 를 좋아했다. 영국 가정에서는 일요일 점심 혹은 저녁마다 오븐에다가 치킨, 비프, 감자 등 채소들을 넣어서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큰 식탁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고기들을 찍어먹는 그레이브 소스를 처음 먹어봤는데 내 취향이었다. 거기에 요크셔 푸딩이라고, 밀가루 반죽으로 된 빵이 있는데 아무것도 안들어간 공갈빵 같지만 정말로 맛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요크셔 푸딩을 찾아보려했지만, 마트에는 팔지 않았다.)
그렇게 영국에서 온 첫 하루 일상은 끝이 났으며 처음으로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내일 학교를 가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은 영국 학교에서의 첫 일상을 연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