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느낄 최소한의 면적에 대하여.
휴가 1주일을 포함해 재택근무기간까지 합하면 4주 이상을 집에서 보냈다.
근무, 식사, 여가, 휴식 등.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해결하다 보니, 7평(약 24.22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이 갑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까지는 이 정도면 쾌적한 환경이라 생각했었다. 버스정류장까지 3분 거리인 오피스텔에는 경비아저씨가 상주하며, 1층에는 편의점과 무인택배보관함이 있고, 지하주차장도 넉넉하다. 입주민 전용 헬스장도 있고, 근처에는 작은 근린공원도 여러 개 있다. 업무시간의 불규칙함 때문에 휴식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가지고자, 회사와의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한 탓에 직장도 멀지 않다. 늦은 시간에 퇴근한 후, 휴식하는 것 이외에는 이 공간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은 삶을 지낼만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면적은 어느 정도일까?
근 한 달 가까이를 집에만 머무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온종일 집에 있어보니 생각보다 해가 드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근무공간과 생활공간이 구분되지 않으니, 재택근무 초기에는 영 집중이 안 되었다. 쉬면서도 일하는 공간이 보이고, 일 하면서도 침대가 보이니까. 직접 집에서 요리를 할 일이 늘어나자 주방이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피스텔 내의 공용공간이 잠정 폐쇄되자 체력단련을 할 공간도 없다. 집 안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려면 테이블을 치워두고 수납장을 요모조모 옮겨야 겨우 공간이 나온다. 실평수 15평(46.28제곱미터) 정도만 되어도 혼자 행복하게 살 공간 정도는 되지 않을까?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1인 청년 가구의 37%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열악한 환경에 거주한다고 했다. 청년 주거빈곤층의 비율이 점차 늘어난다고 했으니, 아마 2020년 현재는 더 높은 수치가 아닐까. 일명 '지옥고'라 불리는 환경을 생각해보면 이 공간이 쾌적한 환경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답게 살만한 공간이냐 하면, 행복한 인간으로 살 공간은 못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집'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동안에 나에게 집은 잠시 쉬는 공간이었다. (조금의 변동은 있지만) 대체로 오전에 출근해 새벽 1-2시, 늦으면 아침에도 퇴근하는 근무 스케줄을 생각하면 평일에 이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을 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집에 있을 시간이 길어지니 공간의 정의가 새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52시간 근무의 확대, 코로나 19로 인한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공간에는 여러 의미가 부여된다. 근무공간, 휴식공간, 생활공간, 취미와 여가공간 등.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지, 청년 주거의 대안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서울 근교로 이사하는 것도 생각은 했었다. 넓어지는 공간의 쾌적함과 출퇴근의 고단함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다 보면, 그동안은 서울에 남는 선택을 하게 됐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의 혼잡한 대중교통, 불규칙한 근무시간을 고려했을 때 서울 근교로의 이사는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계속 고민이 된다. 운전면허를 따고 자차로 출퇴근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이참에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하려 했는데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그마저도 셀프 차단했다. (어디 나다니지 말라는 말을 참 잘 듣는 사람...)
직장과 가까운 곳, 서울 내에서 답을 찾을 순 없을까. 청년 주거 해결책을 위한 각종 제도도 물론 있다. 청년 주택 공급이나 중소기업청년 전세대출, 청년버팀목 대출 등. 하지만 이를 활용하더라도 원룸 형태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중소기업청년 전세대출은 최대 대출한도가 1억 원, 청년버팀목 대출은 최대 7천만 원이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에 넉넉한 금액이 결코 아니다.
결국 '방'을 벗어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제도를 활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 신혼부부 대출 등. (물론 이 제도를 활용한다더라도 수도권에서 신축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긴 하다.) 결국 '행복을 누릴 최소한의 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라'라고, 국가에서도 장려하는 셈이다. 형제자매 또는 친구가 함께 산다고 위와 같은 혜택이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결혼을 매개체로 두 사람의 자본을 합치고 제도적 지원을 활용해야 '그나마' 행복을 느낄 정도의 공간을 얻을 수 있다니. 비혼 주의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럼에도 (방이 아니라) 집이 있어야 행복할 것 같은 이 마음.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나날이 커지는 이유 같기도 하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국가 제도, 사회적 인식, 기업의 운영, 자영업의 양태 등. 다양하게 바뀌고 있는 만큼 청년 주거에 대한 인식도 바뀌면 좋겠다. 무엇보다 청년 주거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라본다. 제도적 지원의 상한선은 곧 인식의 한계치로 작동된다. 1억 원까지 지원을 하는 것은 그 금액에 맞는 곳에 살라는 것이 된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그리고 원룸. 사회초년생, 청년들이 살 공간은 여기까지라는 인식이나 다름없다. 공간의 제약은 상상의 자유를 앗아간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무언가를 상상하고 펼칠 최소한의 공간은 곧 행복하게 살 공간이다.
곧 전세 계약 만기일이 돌아온다. 방 구하는 어플들을 열심히 뒤적여보지만, 직주근접에 행복한 인간으로 살 수 있을 집은 어디에 있을까. 마땅히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지 못하면 이러다가 어영부영 전세 기간을 연장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방'이 아니라 '집' 살고 싶은 것이 큰 욕심인가? 음, 욕심이라도 크게 가져본다. 대한민국 청년 주거에 대한 인식이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공간에서, 이제는 행복하게 살 최소한의 공간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