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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Sep 30. 2022

팀 스포츠의 매력: 재능과 노력 사이, 개인과 팀 사이

재능충과 노력충의 조화, 팀 스포츠의 매력

2022.9.18.(일) 미국프로야구(MLB) L.A. Angels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는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 완벽투로 시즌 13승을 기록했다. 동시에 결승타점도 올렸다. 2년 연속 MVP 수상이 유력한 그의 기록(2022.9.25.기준)을 한 번 들여다 보자. 한 시즌에 선발투수로 시즌 14승을 기록하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세부적인 기록 역시 153이닝동안 평균자책점 2.47 삼진 203개라는 리그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말도 안 되는 것은 그가 타자로서도 이번 시즌 34홈런과 93타점에 OPS .887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팀의 에이스 투수이자 동시에 팀 최고의 타자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야구가 투수와 타자를 완전히 분리하고, 지명타자 제도까지 도입하여 투수가 투수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지명타자 제도가 없던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마저 2022년 올시즌부터는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니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 투수와 타자 모두 MVP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 만화에서도 주인공이 이런 능력을 보여준다면 허무맹랑한 스토리에 '개연성이 없다'거나 '주인공 보정효과가 너무하다'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21세기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이다. 사람들은 스포츠 문화 속 오타니와 같은 선수를 ‘천재’ 또는 그와 비슷한 말들로 표현하며 그들의 경기를 즐기고 있음과 동시에 더욱더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스포츠 분야에서 이른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준다.


https://www.mlb.com/player/shohei-ohtani-660271


세계최고의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었던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팀 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No Player is bigger than the Club).’는 명언을 남겼다. 독일 축구는 팀으로 뭉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와 네이마르의 브라질을 격파하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프로농구(NBA) 샌 안토니오 스퍼스의 포포비치 감독은 재미없는 농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른바 ‘시스템농구’로 수퍼스타들의 재능에 의존한 팀들을 격파하고 수차례 정상에 올랐다.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루어 다른 팀과 하는 형태의 스포츠에서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팀으로 응집력을 발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팀 스포츠에서 각 팀의 운영 방향은 천재적인 선수 한 명 보다는 잘 준비된 팀으로 웬만해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팀이 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팬들은 독일 축구의 안정적이고 예상 가능한 강함보다는 예측할 수조차 없는 놀라운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브라질의 축구를 선호한다. 다소 불안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무엇인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보여주는 창의적인 재능을 보고싶어하는 듯 느껴진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우승하던 시즌의 NBA 파이널 시청률과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판 커리가 불꽃을 뿜던 시즌의 시청률만 봐도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경기가 무엇인지는 느낄 수 있다. 퍼거슨 감독의 말처럼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진짜로 없는 것일까? 스포츠 분야에서 재능으로 성취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재능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박태환, 김연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미국은 수영과 피겨스케이팅 강국이다. 선수의 수도 많고 훈련환경도 훌륭하며 지도자들의 노하우도 뛰어나다. 그래서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엄청난 수의 메달을 많은 선수들이 나누어 획득하는 모습을 익숙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메달은 커녕 결승전에 진출하는 선수도 없었다. 피겨스케이팅이야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느 날 말 그대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나타나 세계최고 수준에 도달하더니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역사 상 유래가 없는 재능을 갖춘 선수가 나타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교육과 관련된 시각에서 이 상황을 생각해보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선수가 스승의 선수 시절 전성기보다 훨씬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산술적인 관점에서 스승의 역량이 100이면 100을 넘는 제자는 나올 수 없겠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는 산수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학교 현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범한 교육과정을 거쳐 양성된 적절한 수준의 역량을 갖춘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 선수가 지니고 있는 재능 그 자체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토양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도전할 마음조차 없었던 분야에서,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 선수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재능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또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제2의 제3의 천재가 그 뒤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감은 이들이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가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교육계에 몸담고 있거나 해당 스포츠 분야와 관련된 사람들은 이 부분에 관심이 크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박태환, 김연아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재능이 만개하여 '월드 클래스'로 올라선 시점에 세계적인 지도자에게 찾아갔다는 점이다. 당시의 여론은 세계적인 재능을 '지도자의 욕심'으로 붙잡고 있지 말고,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놓아주라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선수가 세계적인 지도자에게 배워서 더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은 지도자의 지도력 이라기 보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함께하는 훈련과 더 많은 수준 높은 경기 참여 기회 등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재능을 꽃 피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재능있는 사람이 그 분야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메시가 탁구를 한다는 중국, 김태희가 농사를 짓고 있다는 동유럽 등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는 우스개소리들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다. 교사로 살아왔고 교육청에서 정책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는 입장에서,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 찾아서 즐기며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하지만, 지향해야 하는 목표이기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또 고민하게 된다. 일단, 학교체육과 스포츠문화라는 주제 속에서 정답은 '보다 많은 학생들이 보다 쉽게 스포츠에 참여하고 더 질 높은 스포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일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재능이 더 중요한가, 노력이 더 중요한가.


90년대 청소년들의 바이블 '슬램덩크'를 통해서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먼저,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방황의 시기를 거쳐 코트로 돌아온 정대만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멘탈마저 무너지는 상황에서, 이와는 대비되는 서사를 가지고 있는 상대팀의 슈터 신준섭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풀어졌다.


슈터는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엄청난 노력으로 만들어진 신준섭의 놀라운 슈팅 성공률.


그런데, 키만 크고 재능이 없다고 비난 받던 변덕규의 이야기는 신준섭과는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풀어내고 있다. 라이벌 채치수에게 밀리고 동료들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했던 자신의 역량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던 변덕규에게 감독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 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나는 이 장면이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더 실제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고 느꼈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시작점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키가 크다는 것은 어떤 스포츠에서는 장점이자 최고의 재능이지만, 어떤 스포츠에서는 불리한 조건에 불과할 수 있다. 감독은 변덕규에게 다른 것은 자신이 다 가르칠 수 있어도 키를 크게 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 그것이 바로 네가 가지고 있는 농구 선수로서의 재능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키가 작은 농구선수들의 팀이 키가 큰 농구선수들의 팀에게 패배한 후에, 키만 빼면 우리 실력이 더 좋았다고 주장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스포츠에서 기본적인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공감할 것이다. 스포츠에서 재능이란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연습과 훈련으로 가질 수 없는 재능도 있다. 이건 선수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면, 더 정확하고 더 세밀한 기술적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선수가 다른 선수와 동일한 수준의 기술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두 선수가 반드시 동일한 가치를 인정받지는 않는다. 경기력이라고 하는 것은 동료와의 호흡, 적절한 기술을 적절한 순간에 발휘할 수 있는 판단력, 본능적으로 발휘되는 신체적인 역량 등 다양한 요소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능은 함께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가장 인지하게 된다.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선수를 발견했을 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놀라움과 기대감 질투 등이 뒤섞이는 것 같다.


상대선수, 감독, 그를 보는 모두를 놀라게 하는 강백호의 재능


재능이 더 중요한지, 노력이 더 중요한지는 영원한 논란거리인 듯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내공으로 이 주제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일 것이다. 한때 휩쓸었던 '1만 시간의 법칙'과 같은 이야기는 성실과 노력이 가장 큰 가치로 인정받는 우리 사회에서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리거나 어떤 분야에서 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였으리라 생각한다. 능력주의를 좋아하는 학부모들, 더 범위를 좁히면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부모들 입장에서는 자녀를 채찍질하기에 이보다 좋은 더 좋은 논리는 없을 것이다. 최고 중의 최고, '온리 원(Only One)'이 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일지 몰라도 '최고 수준의 그룹'에 들어가는 것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재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반대급부로 나오고 있는 듯하며,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취하기는 어려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친 사람들의 관심이 재능론 쪽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르겠다.


https://www.ytn.co.kr/_ln/0104_201407271029471997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에게 일단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을 하며 성취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부모가 원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하는 아이들이 혹시나 있지는 않은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반적인 학생들이 생각할 것도 없이 모두 비슷한 전공의 비슷한 이름의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수험생 부모들이 학원을 많이 보내고 컨설팅을 받는 수준이라면, '스포츠 분야에서는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까지 자신의 모든 삶을 자녀에게 맞추고 올인하는 경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부 즉 '교과 학습'은 우리 사회 모두가 전문가를 자처하며 목소리를 내는 분야로, 부모들이 냉정한 평가가 가능하고 목표 자체도 온리원이 아닌 어떤 집단에 들어가는 것으로 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는 부모의 전문성이 해당 종목의 전문가(지도자 등)보다 많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녀가 해당 스포츠 종목에 재능이 있는지 여부의 판단을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의 입장에서 자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도 있고, 자녀와 관련하여 좋은 이야기에 주목하게 되는 부모의 특성 상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자녀가 스포츠에 참여하게하는 동기 자체가 선수로서의 성공보다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 느껴진다. 유소년 스포츠 클럽에서 즐겁게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일반적이다. 부담없이 즐겁게 스포츠를 시작하고 즐기며 매력을 느끼고 재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즐기는 인구가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재능있는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더 많이 나타나게 되었으면 한다. 더 많은 스포츠 분야의 재능을 만나고 싶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더 쉽게 시작하고 그만둘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에서 팀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스포츠 분야에서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재능,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해당 스포츠 종목에 적합한 능력이다. 잠재적 역량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역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호나우지뉴의 창의적인 기술이나 너무나도 쉽게 상대의 수비를 벗겨내며 질주하는 메시의 순간적인 볼 컨트롤은 누가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nMFlfRPnXI

메시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재능들이 발현된다고 해도, 반드시 팀의 승리와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NBA의 전설적인 패스마스터 제이슨 윌리암스는 팬들이 매우 사랑하는 선수였지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기 편도 예측할 수 없는 플레이'와 '기복 있는 모습'을 통해 팀의 안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었다(물론,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https://namu.wiki/w/%EC%A0%9C%EC%9D%B4%EC%8A%A8%20%EC%9C%8C%EB%A6%AC%EC%97%84%EC%8A%A4


르브론 제임스, 지금은 모든 것을 증명하고 더 이상 논란도 필요없는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는 선수다. 이제는 모든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도 불리는 마이클 조던과의 비교도 심심치 않게 이야기가 들릴 정도의 선수다. 하지만, 그도 선수 생활 초기에는 참 욕을 많이 먹었다.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우승을 하고 싶다며, 고향 팀을 버리고(?) 이미 슈퍼스타들이 있던 팀 마이애미로 이적한 것이었다. 그는 소원대로 이적한 팀에서 그토록 원하던 우승을 거두었다. 물론, 이후에 고향 팀으로 돌아와 자신의 능력을 모두 보여주며 이른바 '멱살잡고 하드 캐리'하여 우승을 하였지만, 이적 후 첫 우승 당시에는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수들 덕에 우승을 했다며 그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였다(이른바 '그는 버스 운전사인가 승객인가'의 논쟁). 물론, 당시 마이애미 멤버들도 다양한 논리의 항변을 하기는 했었다. 실제로 MVP 급 선수들이 모였다고 해서 무조건 우승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98&aid=0000059729


영국프로축구리그(EPL)의 중위권 팀이었던 '레스터시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15-2016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르브론 제임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팀 스포츠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개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팀으로 뭉쳐서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혼자의 힘으로 팀을 승리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레스터시티가 우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은골로 캉테, 제이미 바디, 리야드 마레즈, 슈마이켈 골키퍼 등의 탄탄한 스쿼드였을 것이다. 하지만, 레스터시티의 스쿼드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첼시 등의 팀보다 더 좋아보인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경쟁팀들의 부진이라는 천운 덕분이라며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라니에리 감독의 지도력(그것이 전술적인 측면인지 아니면 인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과 팀으로 기능한 선수들의 노력은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 역시 저비용 고효율의 스쿼드로도 우승을 차지했던 것 같아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NBA에서 포포비치 감독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도 비슷한 느낌이었고, 1990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 축구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팀스포츠에서 만큼은 팀이 개인보다 중요한 것이 진리인 듯 느껴진다.


우리가 교육 현장에서 팀 스포츠를 통해 학생들이 배우기를 기대하는 측면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재능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발휘해서 팀을 이끌어가고, 팀에 필요한 부분은 각자 적절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부여하고 서로 협력하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워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작전을 세울 때, 몇 몇 전투에서는 패배하더라도 전체적인 전쟁 차원에서는 승리하기 위해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슬램덩크에서도 바로 이러한 이야기가 몇 차례 나온다. 변덕규와 채치수의 경기 중 깨달음을 통해서 개인의 역량으로 지엽적인 상황에서는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함으로써 팀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농구 천재 윤대협, 득점왕 황태산 등의 동료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변덕규의 모습. 이런 선수가 많은 팀의 지도자는 정말 행복할 것이다.


나는 져도, 우리 팀은 지지 않는다. 팀 스포츠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신현철이라는 넘사벽 선수를 만나 멘탈이 붕괴된 끝에 얻은 채치수의 깨달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이야기는 교육자로서 팀스포츠의 아름다운 측면을 강조하는 바람을 담은 기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장 내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돌아봐도, 완벽한 팀의 압도적인 승리보다는 무엇인가는 부족하고 허술하지만 이것을 개인의 역량으로 뛰어넘어버리는 천재적인 선수들의 즐거움과 기대감을 주는 경기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가끔은 무리해보이고, 가끔은 억지스러운 모습이더라도 마침내 그 것을 해내는 모습을 통해 더욱더 큰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슬램덩크에서도 이런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시간을 쪼개어 점수 차이를 따라잡겠다는 절대자 윤대협에게, '바스켓은 산수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무리해 보이는 플레이를 연속해서 성공해내는 서태웅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스포츠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바스켓은 산수가 아니라는 서태웅. 스포츠에서 과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팀의 에이스에게 마지막 기대를 하며 응원을 한다. 국제경기 때마다 약속의 8회가 되면 기적같은 한 방으로 온 국민에게 짜릿한 감격을 선사했던 영원한 국민타자 이승엽은 이러한 바람이 헛된 희망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물론, 좋은 선수들의 지원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개인의 역량으로 팀을 이끌어 아르헨티나를 결승전까지 데려갔던 리오넬 메시의 모습 역시 그랬다. 전설의 'The Shot'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마이클 조던 역시 팀을 구하는 선수가 있다는 기대를 현실에서 보여주었다. 스포츠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며, 사람들 역시 팀을 구해내는 에이스의 모습을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3-mzR_r1fko

약속의 8회가 되면 어김없이 한 방으로 경기를 결정지어주던 '국민타자' 이승엽.


90년대 청소년의 인생 교과서, 슬램덩크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도전자 윤대협의 능남고는 최강 해남대 부속고를 상대하여 경기 운영을 잘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반칙과 항의로 이른 시간 센터 변덕규가 퇴장을 당하며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팀의 득점원 황태산은 수비의 약점을 노출하며 상대의 집중 공략을 받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불리해지고 분위기마저 완전히 넘어간 상황. 모두가 능남고가 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윤대협이 있기에 일말의 기대를 놓지 않는다. 그리고, 윤대협은 그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현실에 윤대협 같은 선수가 있다면, 아마도 모두가 그렇게 믿고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꼴지 팀에 최고의 선수가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과 우리나라의 프로스포츠는 전년도 순위의 역순으로 다음 연도 신인 선수를 지명하는 드래프트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지금은 순위가 낮더라도 다음 시즌에는 상대적으로 더 좋은 선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우선 제공함으로써, 각 팀간의 전력 불균형을 해소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을 통해서 실제로 많은 팀들이 미래의 재능을 확보하고 그 선수가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KBO 말년에 한화이글스에서 보여준 류현진의 모습을 통해서 꼴지팀에 최고의 재능이 있을 때 어떤 광경이 펼쳐지는지 현실에서 확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야구 커뮤니티에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류현진이 나오는 날만 이기고 나머지 경기는 모두 지는 것 같다고 글이 올라오자, 그것이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다양한 기록들이 순식간에 공유되었었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은 TV 중계방송에서도 반영되었으며, 한화 팬들의 자조섞인 밈으로 놀이처럼 번지기도 했었다. 정작 류현진은 팀원들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부족했다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류현진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한화 팬들은 물론 나와 같이 다른 팀을 응원하는 야구 팬들 역시 너무나도 즐거웠다. 이런 선수의 경기를 라이브로 봤다는 것만해도 자랑거리가 되겠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전설의 '류현진(승)-다른투수(패)-다른투수(패)-다른투수(패)-다른투수(패)-류현진(승)' 시절


반면에, 류현진이 이만큼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한화 이글스의 동료 선수들을 믿을 수가 없어 압도적인 피칭을 해야만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웃픈 말들도 있었다. 이 때의 분위기는 팀이 선수를 품기에 미안할 지경이니,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어서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있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그렇게 온 국민의 바람을 담아 진행되었고, 그렇게 그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레전드가 되었다.


(물론 웃자고 한 인터뷰 편집이겠지만) 투수는 야수를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류현진의 모습에 한화 이글스 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팬들은 이렇게 팀 스포츠 속에서도 재능있는 선수들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며, 그들의 모습을 통해 더 많은 감동을 느끼기를 기대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팀스포츠 역시 개인기록을 중심으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고 업적에 따라 시상을 하고 있다. 스포츠 팀 역시 경제적 가치를 특정 선수에게 지불하며 그들을 붙잡기 위하여 노력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팀스포츠란 단순히 경기에서 더 많이 승리하는 것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재능있는 선수들을 확보하는 경쟁이 점점더 치열해지고 있다. 팀이 우선인가 개인이 우선인가는 가위바위보처럼 끝나지 않는 논쟁거리인 듯하다.




직업적 선수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곧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TV에서 스포츠 중계방송을 볼 때면, 특정 선수들의 특정 장면을 보며 '내가 해도 저 것보다는 잘 하겠다'는 말을 쉽게 하기도 한다. 한 때 농구 팬들의 패러디를 이끌었던 전설의 '신명호는 놔두라고'의 주인공 신명호 선수의 이야기는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선수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모두가 스테판 커리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궈달라의 역할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신명호의 역할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농구 스포츠클럽 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가장 즐겨쓰던 수비 전술이 있다. 바로, '박스원' 또는 '트라이앵글투' 였다.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면 누군가는 드라이브인에 장점이 있고, 누군가는 패스에 장점이 있고, 누군가는 리바운드를 잘 하고, 누군가는 미들슛이 좋고...아이들은 모두 각각 다양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 득점 능력이나 볼 핸들링 스킬은 다소 부족할지라도, 누구보다 끈기가 있고 체력이 좋은 아이들이 있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상대의 에이스와 함께 경기에서 사라져라!!', '상대 에이스의 꿈에 네 얼굴이 나오게 쫒아다녀라!!'라고 임무를 주는 방식인데, 의외로 아마츄어 수준에서는 이런 승부수가 잘 먹혀들어갔었다. 팀이 이렇게 승리하였을 때, 상대 에이스를 막아낸 선수가 바로 팀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어떤 관점에서는 그 경기에서 20점을 넣은 아이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56NsL9CUUA

신명호는 정말 놔두면 되는 것일까. 그 역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프로에 자리잡은 선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명호는 프로선수다. 농구를 하는 것이 직업이며, 농구를 잘 했기 때문에 농구만 해도 돈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수 많은 선수들이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희망하지만 정말 소수의 학생들만이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프로 선수로 십년 넘게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의 크기는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다만, 다른 선수에 비해서 공격적인 기술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적극적인 수비를 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신명호 역시 단순히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선수로 보기에는 그가 가진 기본적인 재능의 크기 역시 일반적인 수준은 넘어섰음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 수 있다.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된 종목에서 최고 수준의 팀에 정착한 선수들의 재능은 존중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직업적 선수의 길에 접어드는 것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겠지만 그 꿈을 이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가장 파이가 큰 종목인 야구와 축구도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주전 선수로 정착하는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선수를 꿈꾸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를 통해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다른 직업에서도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이들이 해당 스포츠를 계속 사랑하고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학생선수 관련한 정책들의 초점도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올시즌 오타니의 말도 안되는 기록들을 뉴스에서 보고 갑자기 스포츠에서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럽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노력형 선수로 여기는 박지성도 사실은 어려서부터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선수이며, 트레이닝으로 만들어진 완성형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어려서부터 특출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선수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분야이든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성공을 위한 길을 제시하며 틀에 맞추기보다는 그들의 재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여유있는 마음과 격려로 기대하며 지켜보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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