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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

by 김의진

세대론 관련 언론 보도에 달린 댓글에 '영 포티'라는 단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40대 중반의 나이,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어 연결되는 여러가지 글들을 타고들어가면서 살펴봤다. 대체적인 용법은 20대를 중심으로 40대 중반의 아재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들어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들었던 단어였던 느낌인데, 이렇게 안 좋은 용법으로 사용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최근 몇 년 간 세대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세대에 대한 비판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26133?sid=102


이 책은 코로나19를 극복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던 2021년 5월 쯤 나왔다. 작가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X세대라기에는 다소 어리고 밀레니얼이라기엔 머쓱한 1983년생. 청소년기에는 음악을, 대학에서는 법학을, 대학원에서는 광고를 공부했다. 세상 돌아가는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이 많고, 사회현상 뒤에 숨은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한 오지랖 넓은 마케터이다." 마케팅적 관점에서 X세대를 분석하는 내용이 가득 담겨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른바 '낀 세대'의 고충은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작가보다 몇 살 더 많기는 하지만, 'X세대라기에는 다소 어리고 밀레니얼이라기엔 머쓱한'으로 나이를 소개하는 표현은 내가 느끼고 있던 바로 그 애매함이었다. 이 책은 우리보다는 몇 살 더 많은 진짜 X세대에 대한 분석이겠지만, X세대의 문화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의 작가에게 공감대가 저절로 형성되는 문장 덕분에 마음을 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최샛별 교수의 《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세대 연대기》의 구분에 따라 1970~1979년생을 X세대로 정의했다. 다만, 1960년대 후반이나 1980년대 초반 출생자도 상황에 따라 X세대로 넓게 볼 수 있다. 이 세대와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면 말이다. X세대는 19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의 ‘문화적 특성’에 초점이 맞춰진 정의이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정치적 이슈보다 ‘나’의 개성에 집중하며 문화적으로 1990년대를 풍미했던 세대다.




X세대는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느끼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토로할 만큼의 자신감은 없다. 이는 X세대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X세대의 선배 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집단적으로 연대했던 경험이 있다. 후배 MZ세대는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와 연대하는 데 익숙하다. X세대의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모두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내고 그것을 관철시켜본 경험이 있다. 반면 X세대는 그들을 대표하는 슬로건이 ‘난 나야’인 만큼 개인주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똘똘 뭉쳐 자신들의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내본 경험이 없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9년은 우리 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나는 운동권이 아님'을 내세운 학생이 선출된 기억이 있다. 아크로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자고 후배들에게 제안하던 선배들을 대부분의 동기들이 피했던 기억도 난다. 그냥 관심 있는 일에 집중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한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선배도 많지 않았다. 이렇다 할 이슈나 사건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시위를 할 만한 일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라는 집단적 연대감을 느꼈던 경험은 2002년 월드컵 때 외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X세대 본인들도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되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소외되어 억울한 ‘낀 세대’로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소비자로서 기업에 나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유권자로서 나를 위한 정책을 요구해도 될 만큼 파워풀한 집단임을 자각해야 한다. (중략) X세대는 이제 우리 사회를 바꿀 힘을 가지게 됐다. 가진 힘을 제대로 알아야 그 힘을 쓸 수 있다. 이들은 이제 곧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차지하는 세대가 된다. 역사상 후배 세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선배 세대이기도 하다. X세대가 대한민국의 헤게모니를 쥐기 시작한 지금부터가 IMF 이후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된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다. 이를 통해 곧 닥칠 초고령화 사회에서 윗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후배 세대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이는 곧 사회의 어른이 되는 세대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냥 마케팅 서적인가 했는데, 조금은 정치적인 시각의 이야기까지 하는 책이었다.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면서 영포티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른바 MZ세대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 세대 역시 사회에서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일 것이다. 우리 세대가 386 운동권 세대 정치인을 보면서 했던 자로 그 지점의 비판이, 우리 세대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내가 속한 조직에서 관료로서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기대받고 있으며 그런 맥락의 의사결정을 점점 더 많이 하는 과정에 있다. 내 판단, 내 결정에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X세대는 자신들이 기성세대로부터 받았던 비난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책을 열심히 읽는다. ‘빠바(파리바게트)’, ‘김천(김밥천국)’과 같은 생활 밀착형 줄임말은 외워서라도 사용하려고 한다. 카카오톡 메신저로 대화할 땐 이모티콘도 간간이 넣어준다. 딸과 함께 BTS ‘덕질’에도 열심이다. 선사시대 동굴벽화에서도 ‘요즘 젊은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내용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젊은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본능인 것이다. 그러나 X세대는 그 본능을 이겨내고 아랫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첫 어른 세대로 자랐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아재력 체크리스트'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나도 해 봤고, 일터의 아저씨들 대부분이 해 보면서 우리의 아재력을 점검해봤다. '꼰대 체크리스트'도 비슷한 맥락에서 유행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일상이 우리 세대의 실제 모습이다. 교육청에 있다 보니, 젊은 신규 교사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선배 교사, 교감님, 교장님 등의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된다. 세대간 갈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학교 안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하고 변화한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교육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선배 교원들의 모습을 응원한다.




X세대는 1990년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을 듯 했던 그들은 IMF 외환위기로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사회 초년생이던 그들은 생존을 위해 빠르게 현실에 순응한다. 조직 내에선 죽어라 일하는 쪽을 택했다. “내 멋대로 산다”를 외치던 그들이 ‘회식 사역’, ‘등산 사역’을 자처하며 부장님 비위도 잘 맞추게 됐다.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해 내 몸값을 올리는 게 최대 목표가 됐다. X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이 1990년대를 휩쓸었던 X세대 열풍은 조용히 사라져갔다.


X세대는 20대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었지만, 어려운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생존을 위해 적응하고 변화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세대는 불편한 마음을 다스려가면서 자신이 속한 조직이 원하는 규범에도 충실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생활을 통해서 이러한 능력을 습득한 채 살아가기에 새삼스러운 능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MZ세대 군생활 문화는 또 다르다고 하니 이 세대들의 특징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작가는 X세대가 캐릭터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하는 측면에서 이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놀라운 생존력과 때와 장소에 맞는 역량을 발휘하는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맥락에서 언급한 것이다.



삐삐에서부터 시작해 PCS와 시티폰, 스마트폰까지 숨 가쁜 모든 변화를 무리 없이 따라잡은 그들이다. 아날로그의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과도기를 수없이 겪었다. 기술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했다. 배움이 일상이 된 세대다. 어떤 새로운 것이 나와도 겁먹지 않는다. 이들의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젊은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기에 나이를 먹어도 진보적이다. X세대가 한국 사회의 중심에서 계속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성향 때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논할 때 X세대는 등장하지 않는다. Z세대의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성장 환경을 X세대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랬다. 국민학교 때 MSX, XT, 286AT PC를 MS-DOS 환경에서 사용했다. 중학교 때는 386 PC로 모뎀을 활용하여 하이텔, 나우누리 통신망을 사용했고, 고등학교 때는 삐삐라는 개인용 이동통신기기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 때는 전국적인 유선 인터넷망이 깔리고 집집마다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해서 무선 환경의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인용 휴대폰을 사용한 첫 세대이기도 했고, 스마트폰에 열광하며 관련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낸 소비자였다. 새로운 기술과 환경, 문화에 수용적이었고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바로 이 부분에서 X세대의 상대적 강점을 주장했다.


아마도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무선 통신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지국이 왜 필요하고 공유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우리 세대는 당연히 어느 지점까지는 유선 통신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무선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통신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와이파이 공유기 등을 우선적으로 살펴본다. 반면에, 요즘 아이들은 그냥 그 상황 자체에 화를 내거나 자신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성능을 의심한다. 작은 스마트폰 역시 컴퓨터이기에 두뇌 역할을 하는 CPU, 임시로 데이터를 기억하여 연산을 처리하는 RAM 등의 부품에 따라 성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세부적인 사양을 살펴보지만, 요즘 세대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보다는 어떤 앱이 얼마나 잘 구동되는지에 더 관심이 많을 뿐이다. 우리 세대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며 습득한 지식의 가치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 덕분에 우리 세대가 가진 강점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X세대는 선배 세대보다 오히려 후배들의 자기주장에 심정적으로 더 동조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티를 내지는 않는다. 신세대의 내면을 유지하면서도 직장에서는 선배들의 조직논리를 충실히 따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의 기성세대와 거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선배와도 후배와도 다른 X세대의 독특함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X세대가 조직에서 겪는 고충 역시 선후배 세대와 같으면서도 다른 X세대만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하라면 하던’ 자신들과 달리 후배들은 개인의 권리를 따지고 납득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말이 안 통하면 밀어붙이기라도 하겠지만, X세대는 이러한 후배의 주장이 일견 맞는 말이라고 느낀다. 문제는 X세대가 후배들을 이끌고 성과를 내야 하는 당사자라는 점이다. X세대가 선배에게 배운 리더십은 이제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선배에게 배운 대로 후배에게 했다가는 난리가 나는 세상으로 변했다.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는데, X세대는 그것을 배운 적이 없다.


장학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을 자주 상대하게 된다. 젊은 교사들은 나름의 논리와 합리에 따라 답답해 보이는 학교의 현실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흔히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본다.'며 젊은 세대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심 일정 부분은 맞는 말을 시원하게 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고마울 때도 있다. 사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자신을 '교육 전문가'로만 인식하는 사람들과 '공무원으로서의 책무성'을 일깨워주는 관리자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법령이 규정하는 교원의 신분과 학교와 교사에게 대한 사회적 기대의 특수성에서 기안하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 전체에 일반화하여 이해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다만, 젊은 교사들 덕분에 학교도 빠르게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유연해진 학교문화 덕분에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은 더욱 빠르게 정착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성공요인’을 묻는 질문에 X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학력”을 많이 꼽고 “부유한 집안”을 적게 선택했다. “부유한 집안”을 선택한 비율이 가장 높은 1990년대생과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금수저’, ‘흙수저’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1990년대생은 집안의 재력에 의해 출발선이 달라지는 세상에서 자랐다. 반면, X세대는 IMF로 인해 사회 초년생 시절에 고생을 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냈다. X세대는 집안의 도움 없이 학력과 같은 자신의 실력으로 생존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중략)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투자하며 쌓은 실력이다.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주의 1세대인 만큼 ‘나’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몰두했다. 실력을 바탕으로 험난한 경쟁을 뚫고 두 차례에 걸친 경제위기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래서 X세대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이 강하다. 다른 세대에 비해 ‘나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자기효능감이 강하다. X세대가 일하는 데 있어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X세대의 자기효능감은 생각보다 크다. 공감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렇다. 사실 온전히 혼자서 이룬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성취한 것이 많다는 착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가치있는 경험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판단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표현도 딱 나의 모습이었다. 작가의 통찰력에 공감하는 문장이었다. 내 주변의 형님들 누님들 역시 비슷한 성향으로 느껴지는 걸 보면,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대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진입시켰다는 자부심을 은연 중에 느끼고 있는는 세대인 것도 분명하다.




X세대는 심한 경쟁 속에서 자랐지만 협력에도 익숙하다. 그들은 내부경쟁보다는 외부경쟁에 더 열을 냈다. 학창시절에는 반 단위로 경쟁했다. 좀 더 규모가 커지면 학교 대항전 같은 것이 있었다. (중략) 직장에서는 팀원들끼리 힘을 합쳐 다른 팀과 경쟁했다. 회사가 똘똘 뭉쳐 다른 회사와 경쟁했다. 회사 내에서도 동료들끼리 경쟁하고 협력하며 성장했다. 어제의 적이라도 오늘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힘을 합친다. 그래서 X세대는 경쟁을 즐기면서도 큰 틀에서는 협력할 줄 안다.


작가가 교육 분야 전문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개인화되고 있는 학생들이지만, 학교는 어떻게든 협력을 가르치고 경험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늘 그래왔다. 다만, 마을이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기에 작가의 시각에 일정부분 공감도 되었다. '우리'를 느낄 수 있는 단위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세상이기에,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학교에서 우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X세대가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 안의 꼰대스러움을 발견할 때다. 이들은 겉으로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선배들처럼 근태에 목숨 걸지는 않지만, 후배가 지각하면 신경이 쓰인다. 지각했다고 야단치면 꼰대로 보일까 봐 말은 못 한다. 쿨하게 넘길 수도, 시원하게 말할 수도 없어 마음이 불편하다. 후배들에게 “편안하게 이야기해”라고 말해놓곤 진짜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서운함을 느낀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는 후배들을 부러워한다. 좋은 제도이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출산 전날까지 출근해서 일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일견 씁쓸함을 느낀다. (중략) X세대의 고충은 후배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너무 많이 이해하다 보니 후배의 반응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다. 후배들의 반발이 걱정돼 오히려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인다. 꼰대 소리 듣기 싫어서 아예 입을 닫는다. 후배 눈치 보여서 일을 못 시킨다고 하소연하는 X세대가 부지기수다. 일은 많은데 후배에게 많은 업무를 부여할 수 없으니 남은 일을 붙들고 야근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후배로부터는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한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선배들은 이런 X세대를 향해 너무 물러 터져서 아랫사람 다룰 줄을 모른다며 못마땅해한다.


후배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 오묘한 순간과 애매한 마음은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못했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져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이런 공감대가 있기에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이 되면 과감하게 변화를 결정할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한 것 같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나 역시 더 많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때마다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주려고 의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X세대 소비자에겐 20~30대를 위한 제품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2020년 7월 영등포점을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으로 리뉴얼했다. MZ세대가 많은 상권 특성을 고려해 이들이 선호하는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와 해외 유명 브랜드로 채웠다. 푸드코트엔 인기 맛집을 대거 입점시켰다. 그 결과 30대 고객 매출이 10% 증가한 것은 물론, 40대 고객도 20%에서 26%로 늘어났다. 트렌디하고 힙한 것을 좋아하는 X세대가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변화에 반응한 결과다.


마케팅과 영업은 잘 모르는 분야다. 다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영포티의 표면적인 모습에 대한 밈은 바로 이러한 특징을 짚어준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 마음껏 사지 못했던 옷과 신발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아재들의 모습은 로망의 실현일 뿐인데, 이 모습을 왜 비꼬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야속하기도 하다. 작가가 이야기하듯이 40~50대를 타겟으로 하는 광고보다는, 20~30대의 문화적 감성에 호소하는 메시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X세대의 모습에 큰 공감이 된다. 사실 우리 세대가 이른바 '힙한 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절대 아닌 듯하다. 소중한 시간과 자원을 보다 좋은 것에 쓰고 싶을 뿐이다. 20~30대가 열광하는 지금의 문화와 소비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X세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X세대 보다 더 끼인 세대가 바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출생한 우리 세대인 것 같다. 우리 세대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용어도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연구마다 필요에 따라 우리 세대를 X세대로 정의하기도 하고 MZ세대로 정의하기도 한다. 난 99학번이다. 99학번은 학번은 90년대 학번이지만, 출생연도는 1980년이다. 젊어보이고 싶을 때는 80년대 출생자에 붙고, 늙어보이고 싶을 때는 90년대 학번에 붙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이 책이 고마운 점은 어렴풋이 느끼던 부분을 이 책 덕분에 더욱 분명하게 자각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끼였다고 어렵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내가 속한 조직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그룹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청 생활의 끝이 다가온다. 학교로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커져간다.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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