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오해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방법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 사실(팩트)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
책의 첫 페이지, 작가 소개보다도 먼저 나오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이다. 작가가 만든 말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잘 못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는 듯했다. 작가는 의사다. 전문 분야는 공중보건이며 국경없는의사회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덕분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경험적으로 알게된 사람이다. 작가의 소개부터 책의 내용이 예상되고,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사실들은 무엇인지 알려줄 것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작가는 총 13개의 문제를 통해 명확한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증명한다. 제시한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정답률은 침팬지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왜 이런 오해가 벌어지는지, 왜 사람들은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데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작가는 권위있는 공중보건의로서 세계보건기구나 유니세프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강연 등을 통하여 '우리는 사실에 기반하여 조금 더 나은 판단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독자들이 '사실충실성'에 근거한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오해하게 만드는 10가지 본능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이야기하였다.
인간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두 집단으로 나누려는 본능인데, 두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실체 없는 간극뿐이다. 우리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영웅과 악인,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 세상을 뚜렷이 구별되는 양측으로 나누는 것은 간단하고 직관적일 뿐 아니라, 충돌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극적이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항상 그런 구분을 한다. (중략) 현실은 그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간극이 존재한다고 믿는 그 곳에 사실은 인구 대다수가 존재한다.
간극 본능을 억제하려면 다수를 보아야 한다. 첫째, 평균 비교를 조심하라. 분산을 살펴보면 두 집단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극단 비교를 조심하라. 사람들이 흔희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중간층에 사실은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 셋째, 위에서 내려다 보면 시야가 왜곡됨을 명심하라. 모든게 다 똑같이 작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 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부정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나쁜 소식을 예상하면 된다. 첫째, 나아지지만 나쁘다. 상황은 나아지는 동시에 나쁠 수도 있다. 둘째, 좋은 소식은 뉴스가 안 된다. 나쁜 소식을 볼 때면, 같은 정도의 긍정적 소식이었다면 뉴스에 나왔을지 생각해보라. 셋째, 점진적 개선은 뉴스가 안 된다.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중에 작은 문제가 나타난다면, 전반적 개선보다 그 문제를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뉴스에 많이 나온다고 해서 고통이 더 큰 것은 아니다. 세상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 다섯째, 장밋빛 과거를 조심하라. 사람들은 유년의 경험을, 국가는 자국 역사를 곧 잘 미화한다.
직선 그래프에서 일정한 추세를 따라가던 선이 어느 지점에서 끝났을 때, 그 끝을 진행방향 그대로 연장해 상상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직선 본능을 억제하려면 세상에는 다양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직선이라고 단정하지 마라. 많은 추세가 직선보다는 S자 곡선이나 미끄럼틀 곡선, 낙타 혹 곡선, 혹은 2배 곡선으로 진행된다. 생후 6개월까지의 성장 속도를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는 아이는 없다.
두려움은 우리 뇌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진화와 관련한 명백한 이유가 있어서, 우리 조상은 신체 손상, 감금, 독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생존율이 높아졌다. 이런 위험 감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공포 본능을 일깨우고, 뉴스에서도 그런 본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날마다 볼 수 있다. (중략) 공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
공포 본능을 억제하려면 위험성을 계산해야 한다. 첫째, 세계는 실제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 우리는 주목 필터나 언론에 걸러진 무서운 것을 보고 듣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대상의 위험성은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 위험과 그것에 노출되는 정도를 합쳐 결정한다. 셋째, 실행하기 전에 진정하라.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가급적이면 결정을 유보해야 한다.
사람들은 비율을 왜곡해 사실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비율을 왜곡하는 것은, 다시 말해 크기를 오판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숫자 하나만 보고 그 중요성을 오판하는 성향도 본능이다. (중략) 그 수가 인상적으로 보이지만 달랑 하나뿐이라는 걸 알아보아야 한다. 그 수를 관련 있는 다른 수와 비교하거나 다른 수로 나눴을 때 정반대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크기 본능을 억제하려면 비율을 고려하면 된다. 첫째, 비교하라. 수치가 달랑 하나만 있으면 오판하기 쉬우니, 어떤 수로 나눠보면 더없이 좋다. 둘째, 80/20을 기억하라. 가장 큰 항목 몇 개를 찾아 그것부터 처리하라. 그 몇 개가 나머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나눠라. 총량과 비율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비율이 의미가 더 크다. 크기가 다른 집단을 비교할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성향이 있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성향이지, 편견이 있다거나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는 필수다. 범주화는 생각의 틀을 잡는 작업이다. 우리가 모든 주제, 모든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정말로 유일하다고 본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무슨 말로 묘사하겠는가. 일반화 본능은 이 책에서 언급한 다른 모든 본능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할 수 있다.
일반화 본능을 억제하려면 내 범주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첫째, 내부의 차이점과 집단 간 유사점을 찾아 보아야 한다. 집단이 클 때는 더 작은 집단으로, 더 정확한 범주로 나누어야 한다. 둘째, 다수에 주의해야 한다. 다수가 51%인지 99%인지 아니면 그 중간 쯤인지 질문하라. 셋째, 예외 사례에 주의해야 한다. 생생한 사례는 쉽게 떠오르지만,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다. 넷째, 나는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이상해 보이면 그것이 어떻게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겸손하게 생각하라. 다섯째, 하나의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일반화할 때 주의해야 한다.
운명 본능은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무언가가 지금의 그 상태인 것은 피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이유 때문이며, 그래서 그것은 늘 그 상태로 존재했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중략) 사회와 문화는 변하지도 않고, 변할 수도 없는 바위가 아니다. 사회와 문화는 계속 움직인다. 서양의 사회와 문화는 움직이고, 비서양의 사회와 문화는…… 역시 움직인다. 어쩌면 훨씬 빠르게. 다만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처럼 빠르게 확산하는 문화가 아니면 눈에 띄거나 뉴스에 나올 정도로 빠르게 변하지 않을 뿐이다.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도 변화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점진적 개선을 추적하라. 작은 변화가 축적되면 거대한 변화가 될 수 있다. 둘째, 지식을 업데이트하라. 어떤 지식은 유통기한이 짧다. 셋째,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라. 조부모의 가치를 생각해보고, 그것이 내 가치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라. 넷째, 문화가 변한 사례를 수집하라.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의 순간을 즐기고, 무언가를 정말로 이해한다거나 안다는 느낌을 즐긴다. 주의를 사로잡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다른 많은 것을 훌륭하게 설명한다거나, 다른 많은 것의 훌륭한 해결책이 된다는 느낌까지 매끄럽게 쭉 이어지기 쉽다. 세계가 단순해지고,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 항상 그것만 반대하면 그만이다. 또 모든 문제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어 항상 그것만 지지하면 그만이다. 모든 것이 단순하며, 사소한 문제 하나만 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세계를 완벽하게 오해한다. 나는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이런 성향을 ‘단일 관점 본능’이라 부른다. (중략) 훌륭한 지식은 해결책을 찾는 전문가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 여러 해법이 모두 그 나름대로 특정 문제를 훌륭히 해결할 수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은 없다. 따라서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일 관점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첫째, 생각을 점검하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점검하게 하고, 내 생각의 단점을 찾게 해야 한다. 둘째, 내 분야를 넘어서는 전문성을 주장하지 마라. 내가 모르는 것에 겸손해야 하며, 타인의 전문성에도 그 한계를 주의해야 한다. 셋째, 모든 것에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는 없음을 명심해라.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망치라면, 드라이버나 스패너 또는 줄자를 가진 동료를 찾아보라. 넷째, 수치를 보되 수치만 봐서는 안 된다. 진짜 삶을 말해주는 수치를 사랑하라. 다섯째, 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해결책을 조심하라. 복잡함을 끌어안고, 여러 생각을 섞고 절충해야 한다. 문제는 하나씩 사안별로 해결해야 한다.
비난 본능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중략) 뭔가 잘못되면 나쁜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랬으려니 생각하는 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가 그걸 원해서 그리되었다고 믿고 싶고, 개인에게 그런 힘과 행위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고, 무서울 테니까. 비난 본능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잘못한 쪽을 찾아내려는 이 본능은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비난 본능을 억제하려면 희생양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첫째,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아라. 나쁜 일은 의도한 사람이 없어도 일어날 수 있다. 그 상황을 초래한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선하는데 힘을 쏟아라. 둘째, 영웅을 찾지 말고 시스템을 찾아라. 어떤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도 그런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시스템에도 어느 정도 공을 돌려라.
두렵고, 시간에 쫓기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생각날 때면 인간은 정말로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 빨리 결정하고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쫓기다 보면 분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다급함 본능을 억제하려면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해야 한다. 첫째, 심호흡을 하라.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이것 또는 저것인 경우도 거의 없다. 둘째, 데이터를 고집하라. 관련은 있지만 부정확한 데이터, 정확하지만 관련 없는 데이터를 조심해야 한다. 관련 있고 정확한 데이터만 쓸모있다. 셋째, 점쟁이를 조심하라. 미래예측은 늘 불확실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예측을 경계해야 한다. 넷째, 극적 조치를 경계하라.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개선과 그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대개 극적이지 않지만 효과가 더 크다.
저자는 사실충실성에 집중하여 적절한 순간에 정확하고 용기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실천력의 사례를 언급하며 책을 마무리하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지난 몇 년간 하고 있는 장학사의 일이라는 것이 바로 사실충실성이 가장 필요한 분야였다. 이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수 년 동안 업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했던 현안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사실충실성을 실천하는 것이었던 듯 하다.
예를 들면, 학교운동부의 명과 암이 바로 그렇다. 대한민국 운동선수 육성 체계의 역사는 하나의 이론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전문체육 분야의 좋지 않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관계자들은 사회적 흐름에 맞추어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점진적인 개선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대처를 요구하기 마련이고 언론과 정치권의 상호작용을 통해 여러가지 이슈들을 만들어내기를 반복하였다.
학교운동부 업무를 수 년 동안 하면서, 절대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배웠다. 목소리가 큰 소수가 많들어내는 이슈들이 조용한 다수의 의견과 다른 경우도 많이 접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판단과 의사결정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로운 일이 무엇인지 교육적으로 무엇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보다 정의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경험하며 깨달았다. 비록 이 과정이 너무나도 점진적인 변화라서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개념이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최근, 학교 현장은 너무나도 이분법적인 사고와 갈등으로 피폐해지고 있는 느낌이 짙어진다. 교사들 중 일부는 관리자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혁파해야 하는 구시대의 꼰대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학부모들 역시 자신들이 경험했던 20~30년 전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기억하는 학교 문화의 범주에서 자녀의 학교생활을 규정하며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장 교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아쉬움이 있다. 미디어에서 지금의 학교문화가 어떤지 교사들이 얼마나 역량을 가지고 헌신하고 있는지를 다루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디어가 자신들의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본능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교육 당국이 이를 멈춰 세울 수는 없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조금씩 점진적으로라도 사람들의 생각을 개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이 교육청 관계자로 보도되는 생활이 몇 달 남지 않았다.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