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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 Nov 09. 2021

나 홀로 볼링 읽고 변화의 물꼬 틔우기  

Chap. 1 나 홀로 볼링 읽기 

  로버트 퍼트넘이 쓴 <나 홀로 볼링>에서는 60-70년대 활발했던 미국 시민의 사회참여가 90년대 들어 급감하게 된 이유를 분석한다. 그 이유를 탐정처럼 분석하는 저자 퍼트넘은 용의자로 여러 요인을 떠올린다.


긴 노동 시간과 바쁜 생활, 경제적 곤란, 여성취업, 이사, 도시화, 교외 지역으로의 이주, 장거리 출퇴근, 정보, 뉴스, 오락, TV시청, 세대 변화, 오랜 시민활동 세대의 퇴장, 심리적 불안, 성장 경험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전통적 가족 구조의 해체, 인종, 복지국가와 거대 정부, 거대기업 


퍼트넘은 각 요인들을 통계까지 찾아가며 살펴본 결과, 어느 하나를 용의자로 꼬집을 수는 없었다. 급감한 시민참여를 설명하기에 요인 하나하나가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자세히 살펴보면 각 요인의 발생이 시민참여 급감으로만 귀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반작용으로서 다른 형태의 시민참여를 북돋는 이유가 됐다. 

  예를 들어, 여성의 취업으로 인한 사회참여 감소를 보면 아이의 학교, 교회,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참여는 줄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통해 늘어난 사회참여도 존재한다. 

로버트 퍼트넘, <나 홀로 볼링 - 사회적 커뮤니티의 붕괴와 소생>

  이 책은 20세기말부터 21세기 초 미국 시민사회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그 이후 20년 안팎의 시간동안 인류는 연결과 소통에 있어 스마트폰과 SNS라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쥐었다. 그 도구들로 인해 퍼트넘이 말한 사회적 커뮤니티의 붕괴와 소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특히 흥미로운 건 ‘세대변화’였다. 퍼트넘은 시민참여에 적극적이었던, 제2차세계대전을 경험한 20세기 초반 출생자들이 사회활동에서 퇴장하면서 시민참여가 급감했다고 분석한다. 상대적으로 시민참여에 관심이 덜한 베이비붐세대와 X세대가 20세기 초반 출생자들을 대체하면서 그와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사회변화를 이끌어 가는 주체들을 보면 MZ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진다.특히, 기후위기, 페미니즘 이슈에 있어 MZ세대는 참여 정도가 아니라 주도적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주체다. 시민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과거 세대가 퇴장한 빈 공간을 베이비붐세대도, X세대도 아닌 MX세대가 꿰찬 것이다. 


  반 세기도 안되는 시차 속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면 <나홀로 볼링>은 사회적자본과 사회 참여에 관련한 논의들에 단골로 인용되지만,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이후 많은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인다. 유통기한이 지난 <나홀로 볼링>은 아쉽게도 앞으로 변하게 될 참여와 연대의 얼굴을 그리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이전 글에서는 나는 참여와 연대의 얼굴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21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의 미국 사회 변화에 대한 이해와 한국의 사회변화를 비춰보는 데 비교값이 되어 주기에는 충분했다. 퍼트넘이 꼬집은 미국 시민의 사회참여 급락의 이유가 한국 사회에서도 동일했는지, 혹은 달랐는지를 비교하며 읽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다. 


  세대, 도시화, 경제적 곤란, 전통적 가족 구조의 해체가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사회참여를 이끌어 낸 동력이 아니었을까?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전통적 가족 구조의 해체는 자발적 사회 참여 증가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 깊숙이 자리한 유교적 가치가 전통적 가족 구조의 해체와 함께 여성, 청년 세대 등에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마련하면서 목소리 내기 힘들었던 이들의 사회 참여 기회가 활발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도시화도 생각해 보자. 도시화 이전 사회에서는 지역 중심의 가치(지연, 학연, 혈연 그리고 지역사회 내 이목)들로 인해 다양성이 설 자리가 없었다. 반면, 도시화 이후 익명의 도시 공간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개인의 가치와 개성이 분출되고 또 충돌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 조직 등 다양한 수준에서 활발한 사회 참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세대 또한 한국적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퍼트넘이 시민참여의 적극적인 세대라 말한 1920년대생은 한국에서는 전쟁 등을 거치면서 순응적 태도로 현실을 산 세대라고 본다. 폐허가 된 나라에서 이들 세대에게는 사회 참여보다는 가족을 부양하고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더 컸을테다. 반대로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과 같은 밀도 높은 사회참여를 이끌어 낸 첫 세대다. 이들은 기성세대로 진입한 이후에도 가장 활발한 사회 참여 세대로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퍼트넘이 말한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세대가 한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부터 그 이후 세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적 맥락에서의 상상(!)은 퍼트넘의 것과 달리 정확한 수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또 <나 홀로 볼링>과 같이 앞서 말한 요인들이 반작용으로 시민들의 사회참여를 줄어들게 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사회참여를 줄어들게 하는 주범이 한국의 맥락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하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맥락에서 두루두루 살펴보고, 자주 업데이트하며 시민의 사회참여를 감소시키는 요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 시민참여는 앞으로 어떤 얼굴을 하게 될 것인가?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더 읽어보기 : 주성수.(2017).한국 시민사회 30년(1987-2017)의 시민참여와 민주주의.시민사회와 NGO,15(1),5-38.



Chap 2. 변화의 물꼬 틔우기 

  워크보트가 처음 출항하는 시점에 코로나19 시민사회 지원과 관련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시민사회가 마주하게 될 새로운 현실에 대해 무언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창한 마음과 걱정에서 시작됐지만, 우리의 역량과 자원을 생각했을 때 대단한 솔루션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에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장기적 관점에서 차근차근 다져나갈 수 있는 기틀 마련으로,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냈다. 


  그 결과 두 개의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하나는 코로나19 시대 시민사회 현황에 대한 연구고,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 새로운 주체 및 의제 발굴을 위한 지원사업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전문 연구자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로 코로나 전후  시민사회 현황을 현장의 목소리로 확인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시민사회 지원의 방향을 어떻게 삼을 것인지 알아보는 연구다. 코로나 이전부터 등장한 시민사회 새로운 주체들의 경향과 이들이 코로나19 시대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지,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알아볼 참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기존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해 본 적 없는, 그러나 뭔가 경험해 보고 싶은, 하지만 같이 할 동료는 없고 뭐부터 해야할지 모르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이다. 참가자들은 각자가 관심있는 사회 이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탐색하고, 동료와 자원들을 찾기 위해 사람, 조직, 단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 된다. 이 과정에 필요한 활동비, 교육, 네트워킹을 제공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는 시민사회에 다양한 주체와 의제들이 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새롭고 다양한 주체와 의제의 등장이 지속가능한 시민사회 확장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깃들어 일상적 재난이나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근육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양한 주체와 의제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민참여 지원사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원의 전환을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 시민참여 지원사업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들에 도전했다. 예를 들어 기존 시민참여 지원사업들이 단체로만 지원할 수 있다거나 혹은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을 목표로 지원사업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 프로젝트는 개인으로도 지원가능하며 해결책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람을 찾아 만나 대화하는 것으로 미션을 설정했다. 또 지원금 사용에 있어서도 활동 방식의 자율성에 맡겨 어떤 형태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물론 이러한 틀거리가 획기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 속에 꿈틀거리는 궁금증과 무언가 해보고 싶은 간질거림이 있어도 이것저것 재느라 시도조차 못해 본 시민 한 사람에게는, 이 프로젝트의 작은 도전이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업을 개발하면서 만난 시민사회 현장 관계자들은 연대가 가진 힘과 동시에 부담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길 들려줬다. 그들은 분명 큰 일을 해내는 데 있어 연대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수준의 연대에 이르려면 그리고 지속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독박 희생과 자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때문에 강한 수준의 연대 보다는 느슨하고 자발적인 연결이 앞으로 사회 변화를 만들어 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꼽아 주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가장 중심이 된 키워드는 ‘느슨한 연결’이었다. 시민들이 연대와 같이 묵직하고 어려운 단계로 풀썩 뛰어들기 보다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주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고,  느슨하게 연결됨으로써 하고자 하는 목표로 천천히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그 과정이 축적되면서 시민으로서 실천하는 일이 결코 어렵지 않으며, 일상적일 수 있다는 걸 공유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가 시민사회 새로운 주체와 의제 등장을 마련하는 데 딱 맞는 정답은 아닐 수 있다. 혹은 기존의 한계들을 답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족한 시도로나마 동료 시민이 관심있는 사회 주제를 깊이있게 탐색해 보고, 서로 느슨하게 연결하면서 변화의 물꼬를 틔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프로젝트를 활짝 열어본다. (※ 이 프로젝트는 내년 4월에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그때는 프로젝트 후기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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