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 Dec 17. 2021

워크보트를 내리며

  워크보트는 연대와 협력을 주제로 글을 쓰고 합평하는 모임이다. 코로나로 사람 만날 기회가 전무하던 시기에 워크보트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사겼다. 화면으로, 때로는 직접 얼굴을 마주보며 나누는 대화들이 즐거웠다. 일을 하며 내 안에 꽉 찬 생각들이 워크보트에서 나누는 대화들로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각자의 일 경험들이 나의 생각에 새로운 갈래를 열어주는 것도 좋았다. 일 이야기를 일터 밖 사람들과 나누면서 맥락을 전달하느라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았다. 이해와 공감이 바탕이 된 우리의 대화가 재미없던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워크보트가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시작하던 시점에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과 보트 빌더가 가지고 있던 그림들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영글지 않은 이야기가 브런치,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는 데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이런 내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게 누군가의 기대와 필요를 저버리게 하는 건 아닌가 고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하며 서로가 정한 내용이었고, 또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에  나의 부담감 보다 워크보트의 결정을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 

매달 글을 써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업무로 이래저래 글 쓸 일이 많지만, 그래도 합평을 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아닌 남이 나의 글을 시간을 들여 찬찬히 읽어주고, 고쳐준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과정임을 알고 있다.  

우리가 한 합평이 손가락으로 세어질 정도니 그리 많은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경험한 합평은 늘 따뜻했고 다정했다. 냉정하지 않고 배려심이 있었다. 합평 이후, 내 글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눈에 띄는 결과를 보고자 했다면, 합평이 좀 더 냉혹하고 단호했어야 했나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의 마음 상태가 그것을 견뎌냈을지는 모르겠다. 나란 사람은 다그치는 말보다 칭찬에 더 동력을 얻는다. 그 점을 생각했을 때, 나는 우리의 따뜻한 합평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자리의 합평이 이럴 거라는 법은 없다. 만약 다른 합평의 자리에 간다면, 그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단단한 마음으로 임해야할지도.  


  합평을 위한 글쓰기도 힘들었지만, 워크보트의 글쓰기가 유독 힘들었던 이유는 주제 때문이었다. ‘연대와 협력’ 주제 자체에 대한 단단한 생각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어로 정리하려다 보니 잘 써지지 않았다. 내 안에 가득찬 것이 분명해야 글을 쓸 수 있는데, 그것이 온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글을 쓰는 건 힘든 일이었다. 써놓고 단 한번도 들춰본 적 없는 나의 논문처럼 워크보트의 글들도 공개 이후 그렇게 내팽개쳐졌다. 합평을 거치고, 그 이후에도 몇 번을 수정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볼 때마다 새로 쓰고 싶어 편집 버튼을 누르게 되더라. 차라리 그럴 바에는 안 보는 게 속이 편하다는 생각에 이제는 다시 읽기를 그만뒀다. 

글쓰기가 버거웠음에도 워크보트를 2차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슬랙에서 나누는 대화와 서로에게 건네는 이모지 덕분이었다. 힘들고 버거웠던 하루를 몇 줄에 담아 터트리는 한 숨을 누군가 읽어주고, 거기에 응원의 마음을 덧붙여 준다는 게 큰 위안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워크보트에 참여한 건 순전히 마음의 위로를 위한 것이었나, 내 스스로가 이기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다. 


  워크보트가 정박할 시점에는 연대와 협력에 대해 조금은 갈피를 잡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연대와 협력은 여전히 깜깜 오리무중이다. 

어제는 지역에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여러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계획을 들으며 ‘저거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네트워크 그 안에서 무수히 터져나올 연대와 협력의 상황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워크보트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워크보트의 가장 큰 성과라면 연대나 협력 이런 단어들을 남발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누구도 동일한 정의를 갖고 있지 않은 그 단어를, 두루뭉술하고 여전히 오리무중인 그 단어를, 듣기 좋고 말하기 쉽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갖다 붙이지 않게 됐다. 선명한 경험으로 체득한 연대와 협력이 있다면, 보다 구체적인 언어를 가져다 쓸 생각이다. 물론 아직 그 언어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연대와 협력으로 퉁치지 않고, 좀 더 정교한 의미를 담은 그 언어가 뭐가 될지는 기대된다.


  워크보트는 순항했다. 이렇다할 큰 파도를 만나지도 않았고, 순풍에 돛단 배처럼 유유히 흘러 지금에 도달했다. 즐거웠던 여정을 글로 정리하다보니 단호하게 내리자던 마음이 조금 흔들린다. 하지만 쌓인 여독을 풀기위해서라도 지금 내리는 게 맞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부담감을 벗고, 훌훌 가벼우면 좋겠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제 단단하게 두 발로 땅을 딛고,
 육지에서 만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저기요, 연대랑 연결은 다르거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