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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엄마의 감정에는 계절이 있다.

복직 전에는 '고립감', 복직 후에는 '죄책감'

by 엄마의 서랍

2022년 10월 22일

정확한 날짜까지 기억날 정도로 그날의 기억은 뚜렷하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산후 도우미님 없이 맞이하는 첫 주말이었다.


"여보, 얼른 나와봐! 나와서 이것 좀 봐!"

출근을 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던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남편의 호들갑에 현관문 밖으로 따라 나갔다.


"예쁘지?"

아파트 복도 난간 앞에서 바라본 세상은 온통 알록달록하게 변해있었다. 출산하러 들어갈 때는 아직 더위가 걷히지 않은 초가을이었는데 어느새 우리 집 문 앞까지 가을이 깊게 물들어 있었다.


수유를 하던 거실 소파에서 열 걸음만 걸어 나와 현관문만 열면 볼 수 있었던 가을 햇살과 빠알간 단풍잎. 그 광경을 보자마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남편도 내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를 아는 듯 아무말 하지 않고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신생아 시절에 느끼는 '엄마의 고립감'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 그 '고립감'의 존재를 인지했다.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집중해서 아기를 돌보고, 꾸벅꾸벅 졸며 수유를 하던 시절. 그 '고립감'은 특히 밤수유를 할 때 가장 진하게 느껴진다. 깜깜하고 조용한 집. 커튼 밖으로 희미하게 밝아오는 파란색 새벽과 버스가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소리. 사람들이 출근을 준비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그 '고립감'을 삼켰다. 나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고립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시작한 시기는 아기를 유아차에 태워 야외로 외출을 할 수 있을 때부터였다. 꼭 하루에 한 번은 유아차와 함께 걸었다. 그즈음 우리 집 주변으로 신축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 동네는 경사가 꽤 있는 편이라서 그야말로 경사진 공사판이었다. 나는 한여름에도 울퉁불퉁한 그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지독하게 매일 오르내렸다. 20분 정도 걸어 나가면 회사들이 모여 있는 업무지구가 나오는데, 그곳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 길이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서로 담소를 나누는 직장인들. 그 무리에 껴서 걷는 것 자체로 나도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 이 된 기분을 느꼈다.




2023년 12월 18일

이 날은 1년 3개월 만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온 날이다. 우리 아기는 14개월이었다.


아이를 키워본 동료들은 "어때요? 아기 키우기 힘들죠?"라고 묻곤 했다. 그런 류의 질문에 나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고립감이 제일 힘들었어요."


지금은 어떠냐고? 물론 나를 지독히도 힘들게 했던 '고립감'은 없어졌다. 대신에 그 자리에 '죄책감'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둘 중에 무엇이 더 힘드냐 묻는다면 무엇하나 고르기 어렵다. 고립감은 그 시기가 짧은 대신 아주아주 진하게 나를 잠식하여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는가.’를 느끼게 해 주었다면, 죄책감은 아이가 커감에 따라 점점 엹어지겠지만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할 감정일 것이다.


복직하는 날 나에게 힘들지 않냐 물었던 동료가 덧붙인 말이 있다. “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놓고 출근하던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 시절이 내 눈물 버튼이잖아.” 그리고는 내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온전히 그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오래지 않아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감정의 파도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인, 특히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립감'에서 꺼내주고 '죄책감'을 덜어주는 역할. 보통은 부부가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된다.


오늘도 나와 남편은 "충분히 잘했다."며 서로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서로의 죄책감을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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