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며 일까지 해내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단했다. 잠을 못 자는 밤이 이어지고, 직장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을 하지만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애잔한 마음을 다독이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버티고 살아내는 동안, 내 마음 어딘가에서 오래된 감정 하나가 자꾸 튀어나왔다. '나의 부모님은 왜 나에게 이런 애틋함을 보이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출산 후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첫째, ‘부모가 되어보니 내 부모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런 정성으로 키우셨겠구나.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 둘째, ‘내가 부모가 되니 나의 부모님을 더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우리 부모님 같은 부모가 되지 말아야겠다.’ 나는 두 가지 유형 중간 어디쯤에 속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두 번째 유형에 가깝다.
첫 번째 유형은 부모님의 헌신을 경험한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헌신을 받아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정확히는 IMF 이후부터 그랬다. 아빠가 IMF 시절 명예퇴직을 선택하여 부모님이 자영업을 시작하시게 된 이후부터 말이다. 그 무렵 나는 사춘기를 겪는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고등학생 때 배탈이 났는지 새벽에 구토를 심하게 한 적이 있다. 토하는 소리에 엄마가 깬 듯했지만 내게 날아온 말은 “아 시끄러워! 더러워 죽겠네.”였다. 나는 엄마의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혼자 뒷정리를 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어떠한 걱정의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그때 엄마의 말, 말투,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그 일이 서운하기보다 그저 '내가 민폐를 끼쳤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이 나고 서운했던 일화로 떠오르는 걸 보니 내 마음 한구석에 깊이 남은 상처였음이 분명하다. 대표적인 한 가지 일화만을 예시로 들었지만 엄마는 내가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던 시기에 그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엔 내가 받아본 적이 없는 지지를 돌려받길 원했다. "누구네 딸은 뭘 사줬다더라." "누구네 딸은 결혼할 때 돈 얼마를 친정에게 주고 갔다더라." "엄마가 아프다는데 너희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하니?" 심지어 친척들 앞에서 나를 내세워 본인의 면을 세워주길 바랐다. "명절에 큰집에 얼마 드려라." "사촌동생들 용돈 좀 줘라." 나중에는 내가 거절하자 엄마의 돈으로 내가 준거라며 챙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왜 나는 부모에게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음에도 지금은 모든 기대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모님에 대한 이런 마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특히 아이가 돌 무렵까지는 나도 불안정한 감정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기에 서운함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럴수록 괴로웠다. 부모를 미워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어느 날은 어렵게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는 나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지금도 가끔 불쑥 먼저 이야기를 꺼내실 때가 있다. "엄마가 왜 그랬을까. 네가 구토하던 그날이 한 번씩 생각나면 미안한 마음에 후회가 남는다. 그땐 내가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그 사과 한마디로 모든 서운한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엄마가 내 마음의 상처를 알고 있고, 지난날을 후회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원망의 꼬리를 끊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부모님이 '서운한 존재'에서 '측은한 존재'로 변해갔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질문이 남았다. "정말 따뜻한 기억은 하나도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