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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9. 2024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일곱 번째 해방

나의 해방일지 대본집 1권 232p,


Episode 4. #53

미정 (E)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던 바다.

현재. 자신과 같은 생각인 듯한 표정으로 벼락을 보는 구 씨. 그런 구 씨를 보는 미정


미정 (E) 갇힌 것 같은데, 어딜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애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INS. 도심에서 현아를 기다리는 동안 웃으며 가는 커플들을 덤덤히 보는 미정.]

미정 (E) 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


다시 현재. 요란한 벼락 소리에도 차분한 구 씨의 얼굴.

미정 (E)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최근에 언니한테 책 선물과 함께 편지를 받았다. 본인이 읽어봤는데 책 내용이 너한테 도움 될 것 같다며,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고 했다. 책이 나의 몇 안 되는 안식처임을 너무 잘 아는 언니는 가끔 책 선물을 해주곤 한다. ‘좋았던 책인가 보다. 어떤 내용이기에 선물까지 해줄까.’ 책에 대한 소소한 기대가 일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지고 터벅터벅 퇴근한 내 방의 둥근 흰색 테이블 위에는 푸른 숲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고운 책과 옅은 하늘색 편지 봉투가 놓여있었다. 기대했던 책도 책이었지만, 옷도 갈아입지 않고 편지 봉투부터 열었다. 언니에게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받아본 편지이기도 했고, 최근의 나는 나를 위하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마음이 간절히도 그리웠기에.

 영화나 소설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타인의 일에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영화관에 가면 장르가 무엇이든 무조건 눈물 한 방울은 흘리고 마는. 그만큼 감수성도 풍부하고 감정이입도 잘하는 나이지만, 언젠가부터 내 일에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술을 먹었을 때는 논외로 하겠다.) 터져버릴 듯 답답한 마음에 속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싶기도, 울음에 이 모든 짐들을 담아 흘려보내고 싶어도, 내 일에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가끔 너무 억울하거나 너무 화가 날 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이외에는 속 시원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일에는 눈물부터 나올 만큼 울보였지만, 어쩐지 내 일에는 눈물이 메말라버린 사람 같았다. 잃은 건 눈물만이 아니었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은 것만 같았다. 눈물을 흘릴 때마저도 항상 소리 없이 울곤 했다. 두 입술을 앙당 물고, 두 눈을 꼭 감고. 눈물만 흘려보냈다. 좀체 소리 내어 엉엉 우는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울음이 말랐고, 나오는 울음마저 마른 울음이었다.  

 하지만, 언니의 편지를 읽는데 읽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항상 부르는 내 별명으로 시작하는 한 단어에 이유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 아랫입술을 짓이기듯 깨물며 편지를 계속 읽어갔다. 혹여나 편지에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질세라 두 팔을 멀리 뻗은 채, 눈물 때문에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한 자 한 자 읽어나갔다. 그렇게 편지의 세 번째 줄이 넘어가자 나도 모르게 편지를 잡고 집이 떠나가라 엉엉 울어버렸다. 지금 내 슬픔이, 내 감정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세 살배기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층간소음이 걱정될 만큼 서럽게, 오래도록 울어버렸다. 한 장 남짓한 편지지에 적힌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언니의 글씨. 동글동글 굴러와 내 마음 깊숙이 박혀버린 부분이 있었다. 동글동글, 누르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 채 파스스 부서져 버린 것 같은 그 동글동글한 글씨가 두 겹 세 겹 덧대놓아 요새처럼 느껴졌던 감정의 댐을 한 번에 무너뜨려버린 부분이었다.

“너무너무 힘들면 무조건 버티지만 말고 나처럼 잠깐 도망쳤다가 돌아와도 좋을 것 같아. 조금은 비겁하고 겁쟁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중략). 너는 나랑 달리 생각이 깊고 책임감이 넘치는 친구라 도망가기보단 버티는 걸 선택한다는 거 알아. 그래도 정 힘들다 하면 잠시 내려놔도 나 포함 가족 전부 널 응원할 거야.”

 나보다 여섯 살이 많은 언니와는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지만, 이 문장을 봤을 때 역시 나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아온 선배구나, 싶었다. 모두가 언니를 걱정할 때, 왠지 모르게 언니를 믿을 수 있었던 이유였구나 싶었다. 언니는,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의 언니는, 꽤나 혹독한 삶의 시련들 앞에서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신경정신과에는 진짜 정신과에 와서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은 안 오고, 그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오는 아이러니한 곳이라는 슬픈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농담과 같은 맥락을 의도하며 적은 대사인 듯하다. 타인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주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는, 타인에게 작은 상처를 준 것에도 아파하고, 타인에게 받은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다 망가져버린 이들이 오히려 더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정직하게 살아왔기에 남들은 이렇게, 저렇게 빠져나가는 상황을 그대로 마주하며 하나둘 상처가 나고, 결국 망가져 버린 거라고. 그런데 언니의 편지를 받고 나서 대본집에서 이 대사를 발견하니,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내 상태가 온전치 않다 느끼면 관계들에서 세 발자국 물러나 있는다. 결국 무너져 버리면 그 모습을 아무도 못 보게 꽁꽁 숨어버린다. 핸드폰은 덮고, 방에서 나가지 않은 채 나만의 동굴에 나를 가둬버린다. 내 동굴에서 한껏 웅크린 채 속이 타들어갈 듯 힘들어하다 보면, 결국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이 한 줌의 잿더미가 되고 만다. 그렇게 잿더미가 되고 나서야 세상 밖으로 나가곤 했다. 걱정한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으면, 그제야 잿더미를 한 줌 보여주며 이게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다고, 그런데 이젠 모두 다 태워버리고 이 잿더미뿐이라며 웃어 보였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어렵고, 내 문제는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지독한 책임감이었고, 누군가에게 이런 나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게 무섭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괜찮을 때에 사람을 만났고, 힘들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요즘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잘 지내고 있어? “ 내가 내뱉을 수 있는, 내가 알고 있는 답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모르고, 누군가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서툰 나는 언제나 거짓말쟁이이고, 겁쟁이였다. 문제는, 신발 속 들어간 모래처럼 그 시기에는 언제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까끌까끌한 서운함이 남는 것이었다. 내 입으로 차마 힘들다고 내뱉지도 못하면서, 스스로가 말하지 않으며 알아주기만을 바랐다. 상대방은 독심가도 아닌데. 물론 이 서운함이 말도 안 되는 서운함인 걸 알기에 그 서운함을 태워내는 것 또한 내 몫이었다.




 힘들다고 우는 언니는, 화가 난다고 짜증을 내는 언니는,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는 언니는 실은 가장 정직한 사람이었다. 감정을 속이지 않는 사람. 지금 가지고 있는 감정을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속이지 않는 사람.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가끔, 가끔은 서운할 때가 있었다. 덤덤한 나와 불만을 잔뜩 토로하고 있는 언니가 있으면 부모님은 언니 손에 무언가를 더 쥐어주곤 했다. 그리곤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도 넌 괜찮잖아. 네가 조금만 더 잘 챙겨줘. 처음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누군가를 챙겨줄 여유가 조금은 남아있는 줄 알았다. 내 세상 속 가득한 나를 좀 더 꾹꾹 눌러 담으면 조금은 더 여유공간이 생기겠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꾹꾹 눌러 담다 터지곤 했다. 왜, 왜 나한테만 그래. 나도 힘들어. 짐이 되기 싫어 내 한몫만 짊어지기에도 난 버거워. 난 버거운데 왜 괜찮아 보인다고 해? 이렇게 터져버린 날에는 서운함이 내 모든 사고회로를 지배해 버렸다. 그래서 나는 ’ 억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저 대본집을 보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용기를 내지 않은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을 뿐,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내 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 용기를 내어 상대방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거니까. 상대방은 당연히, 손을 내미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더 솔직한 사람에게, 더 정직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보상이었을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때로는 참고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때가 있다. 때로는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맞잡아진 두 손을 잡아 일어나고,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나 또한 기꺼이 그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내 감정에, 내 상태에 솔직한 게 때로는 정답일 수도 있다는 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일곱 번째 해방, 괜찮다는 거짓말로부터의 해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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