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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19. 2024

연기하는 거예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나의 해방일지> 속 찾은 여섯 번째 해방

나의 해방일지 1권, Episode 1.


미정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그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 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예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 척. 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그래서 편안한 상태라고 상상하고 싶어요. 난 벌써 당신과 행복한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당신 없이 있던 시간에 지치고 힘들었던 것보단, 당신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는 게, 더 기특하지 않나요?



 나의 해방일지를 본 지 2년이 넘어가는데도, 이 장면이 눈에 선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커피숍에 앉아 최팀장이 빨간 펜으로 무자비하게 그어놓은 팸플릿 작업물을 보는 미정의 표정.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조차 담고 있지 않아 보였다. 내리 깐 두 눈이 공허했다.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그리고 오늘의 하루에 대한 어떤 기대나 실망, 미련도 없는 듯하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미정이었지만,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지쳤다고. 내가 잡고 있는 이 업무는 물론이고, 꾸역꾸역 버텨내는 내 삶에 지쳤다고. 내 마음을 투영해서 미정이를 봐서 그런 걸까, 텅 빈 채로 앉아 있는 미정이에게서 내가 보였다. 길을 지나가다 비친 유리창 속 모습, 화장을 지우려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거울 속 모습, 달리는 버스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 독백을 하며 미정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까 그 텅 비어버린 사람이랑은 다른 사람이라는 듯.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떠오르는 동틀 녘 태양처럼, 미정의 얼굴에 진득한 미소가 스몄다. 일자로 단단히 다물어졌던 두 입술이 마침내 완벽히 호선을 그렸을 때, 미정은 온전히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공허하게 작업물을 보던 사람과는 완벽히 다른 사람이었다.

 텅 비었던 그녀를 채워준 것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사랑할 당신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 내 곁에 없지만 마치 앞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당신. 미정을 사랑해 주고, 그녀를 지지해 주는 그런 당신의 사랑으로 미정의 텅 비었던 시간들은 편안함과 행복으로 채워졌다. 당신이 없는 이 순간마저도, 버거운 이 순간마저도 당신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는 것. 비록 지금은 내 옆에 없지만 당신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는 것. 그런 나를 기특해할 당신을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는 것.

이 장면을 처음 볼 때는 결국 차오른 미정의 미소에 같이 따스해졌고, 신기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텅 빈 삶이, 마음이 저렇게 채워질 수 있는 건가. 대본집으로 이 문장을 글자로 읽을 때조차도 신기했다. 어떤 사랑을 주고받기에, 텅 비어버린 사람을 저렇게 따스하게 채워주는 걸까. 드라마로 볼 때도, 대본집으로 볼 때도 이 장면이 머릿속 깊숙이 자리하게 된 것은 공감이 가서가 아니었다. 공감이 안 가는 그 장면이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다. 주변 연인들을 떠올려봤다. 음… 아닌 거 같은데. 연인을 뛰어넘는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부부들을 떠올려봤다. 흠… 이건 더 아니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저렇게 차오를 수 있다는 게, 심지어 그 대상이 알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저렇게 따뜻하게 차오를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것일까. 그럼, 그동안 내가 곁에 누군가가 있음에도 비어있는 듯한 감정을 느꼈던 건 얕은 사랑이어서 그랬던 걸까. 곰곰이 돌이켜보니 감히 얕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었다. 서로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가 되고, 감히 내 행복보다는 상대방의 행복을 바랄 만큼 깊은 감정들이었다. 내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보며 어떻게 차오를 수 있었을까.

 미정은 외로운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공허한 사람처럼 보였다. 비슷한 듯 다른 두 단어. 표준국어대사전에 ‘외롭다’를 검색하면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하다.’가 나온다. ‘공허하다’를 검색하면 ‘아무것도 없이 텅 비다. 실속이 없이 헛되다.’라는 뜻이 나온다. 만약 미정이 의지할 곳을 바랐던 것이었다면, 상상 속 당신 덕에 저토록 차오르진 않았을 테다. 텅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고 싶었기에, 나를 사랑할 당신을 생각했고, 그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 싶었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곁에 두고도 가끔 외롭다는 느낌을 받았구나. 그래서 지독히도 혼자 있고 싶었지만, 외롭다는 느낌을 받았구나. 그 외롭다는 느낌은 ‘외로움’이 아니라 ‘공허함’이었구나. 이렇게 두 단어의 차이를 알고 나자 좀 더 명확해졌다. 애정 어린 관계 속에서도 헛헛한 갈증을 느꼈던 이유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내게 닥쳐온 어떤 문제든 답은 내게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내 몫이었기에. 누군가에게 기대는 게 익숙지 않은 나였지만, 그럼에도 이 쓸쓸함이 싫어 누군가에게 기대도 보았다. 허한 마음을 끌어안고 누군가에게 기대도 그 텅 빈 마음은 좀처럼 차오르지 않았다. 혼자 있어서, 기댈 누군가가 필요해서 느꼈던 감정이 아니었으니까.

 마음의 연비가 굉장히 낮은 나는, 마음의 연료탱크가 종종 바닥이 나곤 했다. 그걸 외로움으로 착각하던 나는, 내가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면서도 외로워하는 꼴이라니. 그래서, 그저 이 감정은 평생도록 내가 가지고 가야 하는 감정인 줄만 알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저 연비가 낮을 뿐이었다.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뿐이었다. 그저, 그 탱크가 텅 비어버렸을 뿐이었다.  미정의 ‘당신’과 같은 대상.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대상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방법을 모를 뿐이었다.      

 나를 채워주는 것. 그 ‘당신’은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었다. 나를 애틋하게 바라봐주며 나의 삶을 응원하는 내 안의 내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절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든든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미정처럼 가상의 인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고요히 책을 읽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지금처럼 내 생각을 적어 내리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향이 될 수도 있다. 비어버린 마음을 찾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어도 그 날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의 공허함은 누군가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채워가는 것이었다. 어떤 부분이 고갈되어 버렸는지 스스로를 직면하고, 회피하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채울 수 있는 행동을 찾아가는 것.잘못된 관계, 과한 소비, 의미없는 숏츠 등 허전힌 마음을 채우려고 도망친 곳에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찾은 여섯 번째 해방은, 관계 속에서도 외로웠던 나에게서의 탈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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