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집 3권, 158p
미정은 음료를 만들고 있는데, 보람은 미정의 디자인에 최 팀장이 덧칠한 걸 보며
보람 : 언니. 정말 이렇게 고칠 거에요?
미정 : 고치라면 고쳐야지… 뭐 어뜩해.
보람 : 저 인간이 지시한 것보다 언니가 한 게 백배 나아요. 저 인간은 그냥. 팬시해. 인간 자체가 팬시해. 언니는. (뭐라고 해야 되나) 훨씬. 기품이 있어요. 언니 디자인한 건… 항상… 가만히… 보고있게 만들어요. (성질나는) 그래서 내가 맨날 언니 꺼 보면서 질투하는데… 진짜 이렇게 고칠 거예요?
타인이 쓴 글을 읽을 때 가장 신기한 건, 글에 그 사람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주장문이나 에세이류의 글이든, 정보전달이 목적인 글이든. 출판이 된 책 같은 경우, 작가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채 글을 읽게 된다. 가끔, 유튜브든 방송이든 작가를 영상을 통해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며 느껴졌던 화자의 모습과 유사해서. 그리고 주변 지인들이 쓴 블로그글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읽고 있으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 문체에서든, 글의 구성이든, 글의 정렬이든.
비단 글뿐만이 아니다. 삽화든, 그림이든, 노래든, 제품이든. 어떤 창작물이 든 간에 그 안에 창작자가 살고 있는 듯하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창작물은, 창작자 내면의 창임을 느낀다.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걸 추구하는지가 그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자연스레 묻어 나오기 마련이다.
드라마 속, 미정의 상사인 최팀장이라는 인물을 보면, 참 잘 가꾸어져 있다. 스타일을 보면 적당히 멋스럽고,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트렌디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면 내면의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인품은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스포가 될 수도 있지만) 드라마 후반에 그의 불륜 스캔들이 터졌을 때 그의 대응 방식은 참, 어리석다,라고 느껴지기까지 하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다.
미정은, 그 반대다. 극 중 미정의 외향은 '촌스럽다', '수더분하다'라고 표현된다. 화려한 화장도, 옷도, 장신구도 없이 수수한 모습이다. 화장기 거의 없는 모습에 셔츠에 슬랙스, 그리고 면접 보러 갈 때나 신을 법한 베이직한 구두. 단정하지만 '잘 가꾸었다'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정의 내면은 단단하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자기 주관과 취향, 사고방식이 있다. 쉬이 흔들리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은 고요하고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래서 최팀장의 디자인은 팬시한 거고, 미정의 디자인은 기품 있는 것 아닐까. 미정이 만들어간 디자인은 최팀장에게 처참하게 깨지지만, 결국 임원 회의에서 채택받은 건 미정의 디자인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좋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금 고민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나의 글 속에서 누군가 편히 쉬고 갈 수 있는 다정한 글을 쓰고 싶었다.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용기를,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따스함을. 냉혹하고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며 얼어있는 마음에 작은 온기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것'과 '좋은 글을 쓰는 것'. 글을 잘 쓰는 것은 글쓰기 스킬의 영역이었고, 좋은 글을 쓰는 건 글 내용의 영역이었다. 브런치스토리에 매일같이 글을 올리며, 고민하게 되는 포인트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였다.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글이 매끄럽게 전개되고, 어떻게 하면 잘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모두 글쓰기 '스킬'에 대한 영역이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에세이스트나 소설가들이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것들을 영상으로도, 책으로도 많이 찾아봐 왔다.
'스킬'에 대한 고민은 줄곧 해왔지만, '내용'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 해봤을까. 나의 글이 다정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정해야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어땠을까. 다정함은, 세상을 헤쳐가기엔 힘이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정함을 지켜야 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바라보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이 나의 글이 된다. 나라는 사람이 곧, 나의 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