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우리의 마음은 늘 초조하다. 빠르게 성공해서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남들은 이미 저 멀리 앞서 가는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 든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자꾸 불안하다면 영화 '행복의 속도'를 통해 마음의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영화 <행복의 속도>
영화 <행복의 속도>는 일본의 '오제국립공원'에서 도보로 산장까지 짐을 배달하는 '봇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제국립공원'은 일본 최대의 고산 습윤지로 2005년 람사르 협약에 등재되었다. 2356m 높이의 히우치가다케 화산 폭발로 지금의 자연경관이 만들어졌으며 군마, 후쿠시마, 니가타, 도치기 4개 현에 걸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영화 속에서는 꽃이 만발하는 봄과 여름부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까지 '오제'의 다채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행복의 속도>는 '봇타'로 살아가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3년간 기록했다. 자연보호를 위해 '오제'로 들어가려는 모든 것은 좁은 나무길을 거쳐야 한다. 산장에 필요한 각종 식재료와 생필품도 예외는 없어서 '봇타'가 두 발로 좁은 나무길을 걸어 짐을 배달한다. 촬영 중 길에 만난 방문객은 '이가라시'에게 '보통 어느 정도의 무게를 드냐'라고 묻고 그는 대부분의 '봇타'가 80~100Kg정도 든다.'라고 답한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각자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영화 <행복의 속도>를 예고편으로 먼저 만나보세요▼
'이가라시'의 일상에선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연륜과 여유가 느껴진다. 그는 20년 넘게 늘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1초도 같은 순간은 없었다고 말한다.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는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오제' 곳곳을 신중하게 담은 사진은 그가 '오제'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있다. 심지어 산장이 문을 닫아 일거리가 없는 추운 겨울에도 누군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눈길을 치운다.
그의 곁엔 '봇타'라는 직업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가족이 있다. 그의 아내는 부족한 생활비를 모으기 위해 틈틈이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어린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소소한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이가라시'는 아이와 함께 '오제'의 나무길을 걷고 산장에서 잠을 청한다.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오제에게서 뭘 뺏지 않고 오제도 사람한테서 뭘 뺏지 않거든.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빠가 하는 일을 알게 되고 '오제'와 가까워진다. 그의 가족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에 집중한다.
반면 '이시타카'는 야망과 혈기 넘치는 7년 차 '봇타'이다. 휴일에도 '오제' 밖의 TV송신소에 대형 배터리를 운반하는 일을 하다가 부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는 '봇타'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청년봇타대'라는 단체를 만들고 대표로 활동한다. 겨울엔 직장인처럼 양복을 차려입고 대도시로 나가서 '봇타'를 홍보하고 다양한 협업을 제안한다.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눈 길을 걷던 그는 섬에 들어가 다량의 짐을 옮겨야 하는 큰 프로젝트가 성사되길 바라며 들뜬 표정을 짓는다. 그는 '오제'의 '봇타'가 아닌 전국에서 일하는 '봇타'를 꿈꾼다.
그의 바람과 달리 가족들은 '봇타'라는 직업을 걱정한다. 특히 그의 할머니는 겨울엔 산장이 문을 닫아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하다가 다치면 당장 돈 벌 사람이 없다며 속상해한다. 가족들의 말을 들으며 의례적으로 대답하는 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실제로 부상을 당했을 땐, 그의 아내와 함께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보험을 받았겠지' 같은 아쉬운 대화를 나누게 된다.
Q. 당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영화 <행복의 속도>는 짐의 무게를 두 다리로 견디는 '봇타'를 향한 존경의 결과물이다. 그리고'천천히 가도 괜찮아'라고 관객에게 건네는 응원이기도 하다. 거기에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인생의 속도보다 먼저 고민해야 하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있나요?'
예고편의 메인 카피인 이 질문은 '박혁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감독은 2019년 DMZ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의 'Director's Statement'통해 두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답한다. 또한 자신의 현실은 '이시타카'와 비슷하지만 '이가라시'같은 인물이 되고 싶었다고 답한다. 어떤 길과 방향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이가라시'가 될 수도, '이시타카'가 될 수도 있다.
직접 그린 영화 스틸컷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알고 가야 할 방향을 아는 사람에게 속도는 중요치 않다. 이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또 다른 예시가 영화 속에서 등장한다. 어느 날부터 '오제'에 등장한 헬기는 냉동식품처럼 빠른 배송이 필요한 짐을 운송하기 시작했다. 헬기는 금방이라도 그들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을 듯 보였으나 결국 헬기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 철수한다. 일이 더 많아지겠다는 아내의 말에 '이가라시'는 더 나은 헬기 회사가 들어올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빠르다는 이유로 언제나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느리기 때문에 가지 못할 곳도 없다. 지금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든다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점검하는 건 어떨까? 당신이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첫 발자국을 내딛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