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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망 Dec 03. 2024

이거 하려고 비행기 탔수꽈?

남자의 언어는 내 심장을 쪼그라트렸다.

부우우웅~ 포구로 달려오던 트럭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아가씨, 뭐 햄서?”

남자 어른의 낮은 목소리는 내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에 다소 수상해 보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순간 얼어붙어 고개를 드는 데 긴 시간이 걸린 듯했다.

방파제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두 개의 포획틀을 다른 장소에 설치해 두고, 마지막 포획틀에 고등어 통조림을 넣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방파제 고양이들을 중성화 수술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여기 고양이들이 너무 많아졌어. 서로 싸우고 울어서 시끄러워요.“ 

아저씨의 이야기는 고양이가 많아져서 신경 쓰인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렇죠! 이번에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면 고양이가 더 늘어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어요."


아침 7시, 보통 이 시간에 낚시하러 오는 사람은 2~3명 정도만 마주친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긴장해서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아저씨는 나의 존재를 모르지만, 나는 아저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는 포구 앞의 횟집 사장님이자 이곳 마을의 이장님이라는 사실과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었다.


“어디에서 왔수과?“

“서울에서 왔어요.”

“이거 하려고 비행기 타고 왔수과?”

“네. 여기 포구에 있는 고양이 급식소는 해녀 삼춘들이 허락해 주셔서 설치했거든요.

어르신들이 배려해 주신 거라, 저도 휴가를 내서 봉사하러 왔어요.“

중성화 수술을 하면 고양이들이 영역 싸움을 덜 해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줄어들 거예요.

떨렸지만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거참 별일이네. 고생해마씸.“


투박한 말투였지만, 서울에서 이 일을 하려고 왔다는 여자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고양이들 위해 뭔가를 하는구나’라고 이해해 주는 듯했다.


아저씨의 트럭이 지나간 후, 다시 고양이들이 이동하는 길목에 쭈그리고 앉아 세 번째 포획틀을 설치했다. 일어서서 뒤돌아 서는데, 방파제 앞으로 걸어오는 해녀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인자한 미소로 인사를 받아주신.할머니도 내가 뭐하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뭐 햄서?”

“고양이들 새끼 그만 낳게 하려고 수술해 주려고요.”

“착허당. 어디서 왔심?“

“서울에서 왔어요. 전에 해녀 삼춘들이 허락해 주셔서 여기에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어요.”

“아 그 처자냥?”

“아뇨. 급식소 허락을 받을 때는 함덕 사는 친구가 있었어요. 고양이들 밥 먹을 수 있는 자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대신 고양이들이 덜 싸우고 쓰레기봉투도 안 뜯을 거예요.”

“그래. 착허당. 고양이도 먹어야 살지. 아침밥은 먹었냥?”

“네. 많이 먹고 왔어요.“


아저씨와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대화를 마치고 한시름 놓았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다. 세 개의 포획틀을 살필 수 있는 중간 지점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사이 해녀 할머니는 방파제 앞에서 해초를 널고 계셨다. 그 옆에는 방파제 급식소의 실세인 카오스 삼색 고양이 ‘바다’가 리어카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말동무를 하고 있었는지, 할머니가 미소로 화답하며 익숙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그 모습이 뒤로 보이는 반짝이는 윤슬보다 아름다워서 벅찬 감정이 차올랐다. 내가 바라는 공생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고양이 바다와 해녀 할머니의 다정한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으로 기록했다.

작년에 중성화 수술을 받은 바다는 이후 애교가 부쩍 늘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발라당 하며 폭풍 애교를 보여주는데, 어느 날은 마따따비를 던져주니 침을 흥건히 묻히며 좋아했다. 오늘도 넉넉히 들고 나와 바다에게 마따따비 하나를 선물했다.


어디에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아저씨처럼 질문을 하는 건 좋은 신호다.  대화를 나눌 마음이 있는 분에게는 최소한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도록 고양이와의 공생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말 못 하는 고양이들을 대변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바다야, 친구들도 중성화 수술받으러 갈 수 있게 언니 좀 도와줄 수 있냐옹?“

“나도 고등어캔 따주면 생각해 보겠다냥!”


사람이 드문 포구에서 수상해 보이는 여자 혼자 있는 게 눈치 보였지만, 바다와 함께 있으니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자’로 위장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야, 오늘 잘 부탁해.”

공생 : 서로 도우며 함께 삶 (DAUM 사전)
*TNR(trap-neuter-return) : 도심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중성화 사업을 뜻한다. Trap(포획), Neuter(중성화 수술), Return(제자리 방사)의 앞 글자를 딴 말로 국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의 목적은 길고양이 개체수 증가를 막고, 안정적으로 사료와 물을 제공해 사람과 길고양이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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