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스트하우스는 마치 '사람이 묵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고양이 손님을 받는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느낌이었다. 개집에서 고양이가 졸고 있고, 해먹 위에 고양이가 누워 있는 이 생경한 풍경은 정말 인상 깊었다. 주황색 의자 아래에는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가 대기하고, 담벼락과 데크 위에는 고양이들이 널브러져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고양이들은 게스트하우스 마당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료를먹고 쉬어 가는 듯 했다.
게스트하우스 숙박 손님
오조리 우주대스타가 된 고양이 히끄가 가족을 만나기 전에 머물던 곳이기도 했는데, 매일 밥 먹으러 오던 히끄가 갑자기 사라져 안 보일 때는 SNS에 '히끄가 돌아오면 걸어줄 GPS를 주문했다. 희끄가 안 좋아하는 구충제도 안 먹일 테니 돌아오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이처럼 고양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보살핌 받는 고양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SNS를 통해 고양이들의 소식을 볼 때마다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향적인 성격 탓에 한동안 익숙한 숙소의 문만 두드렸다.
게스트하우스 손님 고양이들
이곳에는 줄무줄무, 꺼므꺼므, 민소희끄, 모발모발, 뉴규뉴규' 등 개성 있는 이름으로 불리는 고양이들이 놀러 오는 곳이다. 히끄란 이름도 길 생활로 인해 하얀 털옷이 희끄무레한 털옷으로 변한 모습에서 ‘히끄히끄’란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동네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던 나로서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고양이 사랑이 매우 깊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고양이가 굶주리지 않도록 도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름을 지어주는 건 ‘그 고양이의 평생 보호자’가 되는 거라고 생각돼서 쉽게 지어주지 못했다. 대신 고양이와의 소통을 위해 호칭으로 불렀는데, 수컷 고양이는 '할배, 삼춘, 아저씨'로, 암컷 고양이는 '이쁜이, 아가씨, 공주님'으로, 공통적인 호칭은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고양이에게 지어준 네 글자의 이름은 애정이 가득해 보였다.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나보다 훨씬 깊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깨톡, 깨톡'
알림과 함께 설렘이 폭발하는 영상 하나가 휴대폰 화면을 밝혔다. 영상 속에는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고양이, 히끄가 등장했다. 히끄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는 유진 씨의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궁금증을 쏟아냈다.
"유진 씨, 이게 무슨 일이죠? 어떻게 유진 씨가 히끄와 함께 있는 거죠?"
"부러우시죠? 저는 지금 그분과 함께 있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유진 씨는 일 년에 한두 번 국내에 다녀가는데, 제주도 오조리 마을의 이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른다고 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는 아침 7시 45분에 사장님의 반려견인 호이, 호삼이와 오조리 마을을 산책하는 시간이 있는데, 강아지들과 산책하면서 사장님과 대화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고. 유진 씨가 오조리 마을에 머무는 것은 알았지만, 그녀가 히끄와 함께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히끄를 입양한 가족은 오조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그곳 안채에서는 히끄와 함께 생활하고 바깥채는 독채 민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독채 민박에 묵는다 해도 히끄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는데, 유진 씨가 보내온 영상 속 공간은 히끄가 살고 있는 안채였다.
"유진 씨, 어떻게 히끄네 집에 있는 거죠?"
"하하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따라 히끄네 놀러 왔지요."
세상에...! 부럽다옹.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건 아니죠?
히끄 영상을 보기 위해 매일 그의 SNS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하고 있던 나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을 따라 놀러 간 유진 씨가 마냥 부러웠다. 내향형 인간인 나는 또다시 다짐한다. 멀지 않은 날, 이 게스트하우스에 꼭 가보겠노라고. 유진 씨가 좋아하고 히끄의 고향인 이 숙소의 매력에 빠져보겠다고 말이다.
‘제주 고양이 로드’라는 책을 쓰기로 결정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오조리 마을이었다. 이 책에는 동네고양이가 자유롭게 살아가며 사람들과 공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데, 그런 이유로 오조리 게스트하우스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었다.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지만, 고양이를 만나러 가는 여정인만큼 이번엔 용기를 내어 예약을 했다.
드디어 오조리 마을에 왔지만, 태풍 '타파'가 제주도를 강타하고 있었다. 제주에 올 때마다 '비를 몰고 온다'는 농담은 이제 내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비가 아닌 태풍을 몰고 온 것이다. 4일 전 도착해 3일간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내내 강풍과 함께 비가 내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고양이들과 즐겁게 보낼 일상을 기대했는데, 태풍으로 인해 그들을 만날 수 없을까 봐 마음이 울적해졌다.
내일이면 태풍이 지나갈 거라는 예보에 희망을 걸며 오조리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해질 무렵이었지만, 이미 숙소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더니 강풍이 몰아쳐 우산을 들 수 조차 없었다. SNS에서 늘 보던 숙소 마당에는 그곳에 있어야 할 고양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도착을 알렸다. 바람에 날리는 비를 맞으며 기다리다 익숙한 모습의 사장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