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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망 May 13. 2024

고양이 식당 운영, n연차 사장님의 고백

저는 고양이 안 좋아해요. 개만 좋아해요.

(이전글) 고양이 게스트하우스에 사람이 예약했나?


태풍 '타파'가 몰아치는 밤, 숙소에 짐을 풀고 마당으로 나왔다. 혹시나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가 있을까 해서 마당을 둘러보았지만, 고양이들은  안전한 장소를 찾아 숨어있는 듯했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는 고양이들이 비를 피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보였다. 개집이 있었지만, 비어있었다.

강풍과 폭우로 넘쳐흐르는 밥그릇을 보니 고양이들이 배고플까 봐 걱정되었다.


고양이들 보이지 않자 슬슬 내 배도 고파오기 시작했다. 제주도 마을 식당들은 대부분 어두워지면 문을 닫는 곳이 많아 근처 식당들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숙소를 찾아오는 길에 본 작은 슈퍼에서 사발면과 간식을 사 오기로 했다.

강한 바람에 뒤집히는 우산을 부여잡고 뛰어가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개 짖는 소리만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무서워서 숙소로 되돌아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배가 많이 고팠다. 다행히 슈퍼 문이 열려 있어 사발면과 캔맥주, 감자칩을 구입할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대책 없는 비바람에 결국 우산을 접고 사발면이 담긴 검정 봉지를 머리 위에 올리고 뛰어갔다.

결국 비를 쫄딱 맞고 숙소 앞에 왔는데, 앞 머리가 예쁜 젖소 고양이 두 마리가 와 있었다. 오토바이 덮개 안에서 몸을 숨기고 낯선 이를 살피는 고양이들은 “먹을 것 좀 내오라옹”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비 맞은 사발면 봉지는 던져 놓고, 고양이들 먹일 닭가슴살 간식을 들고 나왔다. 빗물로 넘쳐있던 밥그릇을 비우고 닭고기 두 개를 찢어서 놔주고는 뒤로 물러났다. 이 둘도 서열이 있는지 왼쪽 가르마를 한 고양이가 먼저 먹고, 5:5 가르마를 한 고양이는 내 앞에 다가와 앉아 나를 빤히 본다.


“언니, 내 것도 있냐옹?”

친구에게 양보했지만, 저 언니한테 얻어먹으면 된다고 생각한 듯 애절한 눈빛을 보낸다.

“물론 있고 말고. 넌 두 개 줄 거라냥! 이 언니는 양보하는 고양이에게 후한 사람이라옹."


다행히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습식 하나를 더 내어 주고 내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숙소로 들어왔다.

“어서 가서 비 피하라옹. 아침에 만나요.”

비를 피해 찾아온 고양이 손님, “먹을 것을 내오라냥!”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 밖을 살펴보니, 밤새 내린 비가 그친 것 같았다. 고양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잠옷 차림으로 문 밖을 내다보니, 밤에 만난 젖소 고양이 두 마리가 오토바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밝을 때 만나니 더 귀엽고 개성 있는 외모였다. 바람에 오토바이 덮개가 펄럭이며 고양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는데, 왼쪽 가르마에 코 밑에 점이 있는 고양이의 얼굴이 보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베레모를 쓴 것 같기도 하고 '김무스' 아저씨가 떠오르기도 했다. SNS에서 이름을 찾아보니, 웃음을 안겨준 고양이 이름은 ‘민소히끄’였다. 5:5 가르마를 예쁘게 한 고양이의 이름은 ‘모발모발’이다. 사장님의 위트 넘치는 작명 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소히끄, 너! 어떤 복수를 하러 왔냐옹?" 하며 농담을 던져보기도 했다. "너 참 귀엽게 생겼다옹." 이름을 알고 만나니 더욱 친근해진 느낌이었다.


잠시 후 검은색 우비를 입고 나온 사장님은 목줄을 한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강아지들의 실외 배변이 급한 듯보였다.  

아침에도 사이좋게 등장한 고양이 손님, “맛있는 것을 내오라냥”

“안녕! 잘 잤어?”

고양이가 좋아하는 ‘솔’ 톤으로 인사를 건네자, 민소히끄가 “냐아옹” 대답했다. 어제 간식을 준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손님, 기다리면 사장님이 사료를 주실 거라옹.”


고양이 식당에 대기 중인 손님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고자 마따따비와 캣닢향 나는 쥐 장난감을 선물했다.

5:5 가르마를 한 고양이 이름은 ‘모발모발’, 코 밑에 점이 있는 고양이 이름은 ‘민소히끄’

선물한 사람 민망하게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던 고양이들은 이내 냄새를 맡았는지, ‘킁킁’ 대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굴리더니 본격적으로 발라당 누워서 양손으로 잡고 핥으며 행복한 표정이다. 젖소 고양이들의 놀이 구경에 빠져 있는데,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치즈 고양이가 개집 위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밥은 먹었어?” 하며 안부를 물었지만, 치즈 고양이는 겁먹은 듯 개집 뒤로 몸을 숨겼다.

때마침 돌아온 사장님은 숙박 손님의 조식 준비로 바빠 보였다. 더 기다려볼까 하다가 애피타이저라도 먹여보자 하고, 닭가슴살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 먹였다. 다시 나타난 치즈 고양이는 개집 가까운 곳에 그릇을 놓아주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 도망가 버렸다. 냄새를 맡으면 다시 올 거라 믿으며, 멀리 떨어져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개집 위에 다시 나타난 치즈고양이는  마치 영상에 슬로우를 걸어놓은 것처럼 뒷다리는 개집에 걸친체 아주 천천히 상체를 숙이며 먹기 시작했다. 배는 고픈데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불편해 보이는 자세지만 맛있게 먹으면 된 것이다.

치즈고양이의 식사가 끝나자, 조심스럽게 마따따비를 굴려 보내주니 역시나 바로 도망을 갔다. 아쉬워하며 젖소 고양이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다시 개집 방향에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치즈고양이가 누워서 마따따비 물고 향을 맡고 있었다. 잔디 마당으로 굴러 내려간 마따따비를 따라 내려온 치즈 고양이는 언제 경계했냐는 듯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도망가지 않고 장난감에 흠뻑 취해 있었다.

마따따비는 고양이에게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물론 ‘냥바냥’이긴 하지만, 내가 만난 대다수의 고양이는 마따따비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늘 가방 안에 상비약처럼 넣고 다닌다. 맹수 같은 고양이도 천진난만한 고양이로 변신시키는 요술봉 마따띠비는 내가 고양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인 셈이다.

경계가 심해서 몰래 밥만 먹고 가는 치즈 고양이도 반한 ‘마따따비 장난감’

조식 준비를 마치고 사료를 들고 나온 사장님은 고양이들이 마따따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깜짝 다.

어머! 이게 뭔데 고양이들이 이래요?

마따따비 장난감이에요. 개다래 나무인데, 고양이가 좋아하는 향이 난대요.

“쟤(치즈 고양이)는 경계심이 심해서 사람 없을 때 밥만 먹고 가는데, 이런 모습 처음 봐요.”

“고양이들이 일찍 와있어서 닭고기 간식을 주고 놀아주고 있었어요.”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었다는’ 묻지도 않은 고백을 하면서 사장님의 표정을 살폈다. 고양이를 돌보는 곳에서는 건강 관리 등의 이유로 간식 제한을 하는 곳이 있어서 물어보고 주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장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고양이들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사장님은 사료를 꺼내와 밥그릇에 가득 담아내었다. 아침에 바쁜 일정을 마치고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대접하는 모습은 평범한 일상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사장님을 다시 만났다. 고양이들 이야기가 궁금해서 식탁에 앉았는데,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건네주었다.


“고양이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길고양이한테 장난감으로 놀아주는 손님은 처음 봐요.”

“네. 좋아하죠. 여기 고양이들 보고 싶어서 왔는걸요”

그러자 사장님은 의외를 말을 했다.


“저는 고양이 안 좋아하거든요. 개만 좋아해서 고양이는 잘 몰라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고양이 좋아해서 밥 주시는 거 아니에요? 고양이 매일 보는데 어떻게 고양이를 안 좋아할 수 있죠? "

“고양이가 오니까 사료를 주는 건데, 저는 개 하고만 살아와서 그런지 고양이 좋은지는 모르겠더라고요."


매일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제공하고 이름까지 불러주었는데,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장님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할 무렵에 고양이가 찾아와서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고 했으니, 사료를 준 기간은 6년이었다. 마당에 놓인 개집도 고양이을 위한 것일 텐데, 정말 '고양이를 안 좋아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아하던 차에, 전날 밤 고양이 밥그릇이 빗물로 넘쳐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장님은 개를 키우다 보니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사장님 말대로 고양이를 몰라서, 비가 내리는 날에 사료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일 테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럴 수 있지. 게스트하우스는 손님이 우선이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를 안 좋아할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모르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대접해 왔다는 사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고양이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옹.

밖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에게 다정하거나 세심히 보살피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찾아온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가득 담아 주는 모습에서 작은 생명체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푸짐하게 담아준 고봉밥을 맛있게 먹듯이, 그 마음이 투박할지는 몰라도 고양이를 생각하는 사장님의 마음을 느낄 고양이들이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6년 전부터 꾸준히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제공해 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작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어쩌면 사료를 내어줄 때부터 가슴 한 구석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면 고양이들이 놀아 준다냥.


4년이 흐른 지금, 이곳 사장님은 놀랍게도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더 놀라운 것은 ‘개만 좋아한다’고 말했던 사장님은 이제는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개파'라고 말하던 사장님이 '고양이파'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변절자'라고 놀렸다. 하지만 사장님은 한치의 타격 감 없이 변절자 타이틀을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애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사장님은 아픈 고양이를 발견하면 구조해서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 주었고, 임시 보호를 맡아 돌보며 입양까지 주선했다. 그리고 2년 전 구조한 고양이를 평생 가족으로 입양했다. 반려견 사진으로 가득했던 그의 SNS 계정은 입양한 고양이 ‘나무’와 마당 고양이들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다. 사람과 고양이가 공존하기 위한 방법인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신청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 사장님이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는 고양이가 비를 피에 쉴 수 있는 집도 여러 채 마련되었다.

아픈 아기 고양이에게 습식사료를 먹이고 있는 사장님
게스트하우스 도련님이 된 ‘나무나무’와 마당에 놀러온 고양이 ’해미해미‘ ‘

그녀는 말한다.

“어떻게 고양이를 안 좋아할 수 있어요? 집에 고양이 없어요? 고양이 입양해요!”라고. 고양이 안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녀는 고양이 입양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슬로우트립’ 게스트하우스의 배려로 마당에서 사료를 먹고 쉬는 동네고양이들의 모습



*TNR(trap-neuter-return) : 도심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중성화 사업을 뜻한다. Trap(포획), Neuter(중성화 수술), Return(제자리 방사)의 앞 글자를 딴 말로 국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의 목적은 길고양이 개체수 증가를 막고, 안정적으로 사료와 물을 제공해 사람과 길고양이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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