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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망 Mar 18. 2024

엄마는 배고픔을 잊고 산다.

엄마의 고군분투: 고양이에게 배운다.

(이전글)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가방 좀 털겠소.


어제, 방파제에서 만난 고양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 전날 풍족하게 먹이지 못한 미안함에 다음 날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더랬다. 밤새 내린 비로 젖어 있는 땅은 고양이들이 산책하기 꺼려할 날씨였지만, ‘약속했으니 몇 마리는 나와 줄 거야.’라는 바람을 안고 방파제로 향했다.

일주일 여정의 마지막 날이 되니, 트렁크에 가득 담아 온 고양이 간식은 동이 났다. 래오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 잠든 래오 몰래 사료와 간식을 챙겨 나왔다. 래오네 집에서 방파제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비가 그치고 난 이른 아침, 방파제는 적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변은 사람의 발길조차 끊긴 듯 고요했고, 고양이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며 마을 골목길의 땅이 서서히 마르기 시작하자, 곧 고양이들의 활동이 시작될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나는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고양이들을 찾아 마을 안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걷고 있는 도중, 저 멀리 쓰레기통 위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젖소 치즈 고양이가 쓰레기통 주변을 기웃거리며 킁킁대고 있었다. 연이어 내린 비로 인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긴 포구에서 고양이들이 먹을 것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때다 싶어, 사료 봉지를 흔들었다. 소리에 놀란 고양이는 재빠르게 달려가 어딘가에 숨어버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이는 고개를 빼꼼 내밀며, ‘그거 먹는 거냐옹? 믿어도 되는 사람이냐옹?’하며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료 봉지를 조심스레 열어 한 움큼의 사료를 손바닥 위에 펼쳐 보였다. “여기, 사료가 있다냥! 먹어 보라옹.” 이렇게 말하며 서둘러 그릇에 담고 닭고기를 고명으로 올려 그 앞에 놓았다.

고양이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작은 입으로 사료를 욱여넣는 모습을 보면서 '배가 많이 고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고양이는 마을 방향으로 잰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분쯤 지났을까!' 다시 나타난 고양이는 또 한 번 입안에 가득 채운 채로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숨어서 먹는 줄 알았다. 입안 가득 먹이를 물고 네 차례나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고양이의 배로 향했다. 젖이 불어 있었다. 비로소 나는 이 고양이가 수유를 하는 어미라는 걸 눈치챘다. 첫 출산으로 보이는 어린 얼굴에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서둘러 가방 속에서 습식 캔을 꺼내 어미 고양이에게 내어 줬다. 한 입 먹는가 싶더니, 이내 새끼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입에 물고 갔다. 어미가 맛있는 습식을 입에 물고도 새끼들의 배고픔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꼈다. 어미는 한 번을 더 다녀온 후에야 ’와그작와그작‘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수유를 하려면 충분한 영양 섭취를 해야 해서, 가방 안에 있던 주식 캔, 사료, 닭가슴살까지 모두 내어 주었다. 어미가 배탈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어쩌면 어미에게 이 식사가 오늘의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기에, 어미가 돌아설 때까지 계속해서 먹이를 내어 주었다.


어미는 마른 몸에 눈까지 충혈되어 있었다. 거센 비바람과 태풍을 견디며 허피스에 감염된 듯 보였다. 어제도 젖이 불어 있는 어미 고양이 셋을 만났는데, 그 수가 넷으로 늘어 이틀 동안 어미 고양이 넷을 만나게 되었다. 경계심을 가지면서도 새끼들을 살려내기 위해 용기를 내는 어미들이다.

강아지와 산책 나온 주민분이 말을 건넨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거예요?”

“네. 태풍에 잘 못 먹은 거 같아서 먹이고 있어요.”

“새끼들 봤어요?”

“네. 4~5개월쯤 됐던데요.”

“그 아이들 말고 정말 어린 새끼들요. 손바닥만 한 새끼들이 있는데, 태풍에 살았나 모르겠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방파제 끝에 가면 새끼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낚시꾼 옆에는 성묘들만 보였다. 태어난 지 몇 주 안 됐을 새끼들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수유 중인 어미 고양이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허피스 : 바이러스 감염성 감기증상을 말한다. 호흡기에 주로 발병하지만, 눈에도 바이러스가 감염될 경우 결막염을 유발하며 심할 경우 각막궤양을 부르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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