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장애, 나이 듦, 죽음과 함께 살아가기
바야흐로 백세시대이다.
서른 살 남짓하던 수명을 백 년으로 늘려놨으니, 의학에 불가능한 것은 없어 보인다. 백 년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지금 당신이 오십 세라면, 오늘부터 다시 태어났다고 쳐도 무방한 길이의 시간이다. 이 정도면 인간도 영원을 손에 넣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 기술 발전의 혜택이 인간이 가진 유한성의 운명을 극복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인간 승리'일 것이다. 인간은 촉박함 없이 그저 인생을 축제처럼 천천히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즐길 수가 없다. 수명이 늘어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프고, 죽음은 여전히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거나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시한부 선고를 받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 이야기들이 말도 안 되는 허구가 아니며, 건강검진 결과를 비장하게 받아 드는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시의 사고 역시 피해 갈 수 없다. 단지 늙어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눈이 침침해지고 무릎이 삐걱거리고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상태에 이른다. 언제 어떤 이유로 어떻게 늙고 병들고 죽어갈지에 대한 상상은 인간 모두의 공포다. 백세의 세월을 살 수 있다고 한들, 그 몇만의 시간 동안 우리는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두려움과 어떻게 맞서야 할까? 혹자는 뭣하러 그런 걸 생각하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죽음이니 병이니 생각하기 전에 오늘 하루를 그저 살라고 말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주로 현명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정말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일까? 질병을 겪고 있는 환자와 장애인, 노인,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무시하면 될 일인가? 그러다 내가 병들고, 늙고, 죽음과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죽는다. 이 분명한 명제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체념' 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더 현명하게 아플 수 있으며, 더 지혜롭게 죽음을 다룰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오늘을 살라'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 '잘' 아프고 '잘' 죽어보자는 말이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이 '잘'이라는 수식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책, 영화, 뉴스와 함께 다루어지는 생각의 지점들이 모두의 '잘 살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유한한 모두가 온전히 삶에 충실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