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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하 Oct 16. 2021

행복해질 수 있는 당신에게

영화 <데이팅 앰버> (Dating Amber, 2020)

안녕하세요. 사하입니다. 여덟 번째 편지예요.

여덟 번째라니, 어쩌다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편지를 쓴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었는데도 책상 앞에 앉으면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반성문을 앞에 둔 어린이처럼 고민이 깊어져요. 그럴 때마다 제게는 강박처럼 머릿속을 맴도는 다짐이 있는데요. 정직해지자. 그리고 따뜻해지자. 이 두 가지입니다.

하지만 다짐할수록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정직과 따뜻함. 두 단어가 양립할 수 없는 말처럼 느껴지거든요. 정직해진다는 것은 이 세계랄지 자기 자신이랄지, 아무튼 글의 발원지(發源地)랄 만한 곳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구차하고 추저분하고 모순적인 면면들을 샅샅이 살펴본다는 의미인데 그런 집념이 내게 있는지, 있다 해도 그것으로써 따뜻해지기란 가능한지, 따뜻해지자면 가령 ‘괜찮아 우린 행복해질 거야’ 같은 너그러운 희망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정녕 정직(正直)인지. 알 수가 없어서 쓸 수가 없습니다. ‘괜찮지 않아. 우린 행복해질 수 없어.’ 때론 이런 종류의 말이 더욱 정직에 가까워 보여 쌀쌀해지기도 하죠.

괜찮지 않아. 넌 행복해질 수 없어. 이런 대사가 나오는 영화를 봤습니다. 아일랜드의 조그만 마을에 사는 두 청소년 이야기인데요. 보수적인 이 시골 동네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진도. 수업 시간에 나가는 진도 말고요, 이성과의 스킨십 진도뿐입니다. '누가 누구랑 어디까지 갔는지' 따위가 공문처럼 입 사이를 돌아다니는 학교생활은 주인공인 ‘에디’와 ‘앰버’에게 위험 그 자체예요. 두 사람은 게이와 레즈비언이거든요.

매일매일 ‘호모’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기이한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둘은 공조를 시작합니다. 앰버는 쿠키상자에 야금야금 모은 돈으로 마을을 떠날 때까지, 에디는 아버지의 분부대로 사관학교에 합격할 때까지 서로의 연인이 되기로 하죠. 스스로를 속여야만 조롱과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고약한 세상에서 ‘가짜’가 되어야만 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큼은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줍니다.

영화 <데이팅 앰버> 중, 춤을 추는 앰버(왼쪽)와 에디(오른쪽)

사랑을 연기하다 사랑에 빠지는 식의 뻔한 해피엔딩이 이 영화에선 불가능하기에, 가짜 연애가 길어질수록 앰버는 깨닫습니다. 스스로 기만하면서 영원히 살 순 없음을, 살고 싶지 않음을 말이죠. 결국 앰버의 커밍아웃 coming out 으로 가짜 연애는 끝을 맺지만 그에게는 어설프게나마 자신을 지지해주는 엄마 그리고 진짜 연인이 생깁니다.

하지만 에디의 사정은 달라요. 에디에게는 스스로를 해방시킬 지식과 용기가 부족하거든요. 앰버에게 험한 말을 내뱉고 사관학교 합격한 에디는 몸을 웅크린 채 중얼거립니다. 괜찮을 거야. 이런 방식으로라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앰버는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쿠키상자를 에디에게 건네며 그 저주 같은 주문에 반박합니다.

  

  넌 행복하지 않아. 앞으로도 그럴 수 없어. 이곳은 널 죽일 거야.

  No you’re not. and you’re not going to be. this place will kill you.


남들 눈에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참고 숨기면서, 그렇게 살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달콤한 기만으로 점철된 세계에서 앰버의 말은 유일하게 정직한 것이었죠. 그리고 그것은 앰버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며 살 바엔 악독한 조롱에 뛰어들고 말겠다는 강인한 사람,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 진짜 나를 조금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단단한 사람, 지독하게 정직해서 따뜻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말이라서 쿠키 상자를 받아든 에디도 끝내 자신의 삶에 정직해질 수 있었던 거겠죠.

앰버와 같은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2021년은 그 사람들이 떠나간 해입니다. 2월 8일에는 트랜스젠더 극작가 이은용 님이, 2월 24일에는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 김기홍 님이, 그리고 3월 3일에는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육군으로부터 강제 전역을 통보받고 복직 투쟁을 이어간 변희수 하사님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죠. 변 하사는 지난해 초 혐오와 비방으로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여성 A씨에게 “죽지 맙시다. 꼭 살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봅시다.”라고 말했었습니다. 김기홍 님은 변 하사와 A씨에게 “당신들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희망”이라고 했었고요. 자기 삶에 정직해서 따뜻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의 죽음. 앰버의 말처럼, 이 세계가 그들을 죽인 걸까요. 이 세계의 잘못은 왜 늘 그 몫이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 걸까요. 누구를 어떻게 비판해야 하나 생각하다 보면 마지막 화살은 무력한 저를 향하는데요. 저는 저라도 탓할 수 있지만 그들의 곁에서 함께 싸운, 지금도 싸우는 사람들은 반복되는 상실을 어디다 물어야 할까요. 그런 생각을 뱅글뱅글 돌면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직하고 따뜻한 말이란 건 어떻게 가능해지나요.


영화 <데이팅 앰버> 중 한 장면

넌 행복해질 수 없어. 이곳은 너를 죽일 거야. 에디에게 울먹이며 소리치던 앰버를 생각해요. 앰버는 그런 말 따위 하고 싶지 않았겠죠. 그건 경고가 아닌 부탁이었을 테니까. 죽지 마. 살아서 꼭 행복해져. 그런 당부였을 테니까요. 그 당부를 곱씹을수록 따뜻해지자는 다짐은 아무래도 염치가 없습니다. 어떤 유려한 표현을 상상하고 희망을 쓰려해도 도무지 따뜻해지지가 않아요. 다만 다짐한 끝에 제가 남길 수 있는 정직한 말은 이것뿐입니다. 죽지 마, 죽이지 마. 보고 싶은 사람이 자꾸 늘잖아요. 보지 못하면 슬프잖아요.

10월 7일 법원은 변 하사에 대한 육군의 전역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을 존중한다던 육군은 항소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죠.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사는 동안 영화는 영화의 시간을 살고 있다면, 지금쯤 에디와 앰버는 행복하리라고 믿습니다. 정직하고도 따뜻한 삶을 오래오래 이어나가고 있을 거라고요. 이곳에도 그 행복이 올 때까지 실패할 다짐을 계속해나가고 싶습니다. 정직해지자. 따뜻해지자. 언젠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이불을 잘 덮으시고 한기에 몸을 떠는 일 없이 잘 자기를 바라요. 정직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살고자 한 모두가요.


  2021.10.16. 사하 보냄.




다음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206201300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2862.html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015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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