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테르 가문과 리코더
제법 낯선 이름의 프랑스의 오트테르 가문은(Hotteterre family) 바로크 시대 관악기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가문이다. 특히 목관악기의 제작과 개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트테르 가문은 프랑스 궁정의 음악가로 고용되었는데, 당시 궁정의 음악가들은 왕실 채플의 음악, 실내의 음악, 그랑 에퀴리(Gran Ecurie)의 음악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그랑 에퀴리의 음악에는 목관악기, 금관악기, 팀파니 연주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그랑 에퀴리는 당대 최고의 목관, 금관 악기 연주자들이었다. 그리고 오트테르 가문은 필리도르 가문과 더불어 명망 있는 목관악기 연주, 제작 가문이었다.
루이 14세의 그랑 에퀴리 음악가들은 왕실의 결혼이나 장례, 사냥, 군대 사열, 외국 대신의 방문 등 야외 행사에서 연주를 하였다. 그랑 에퀴리 중에서도 '그레이트 그랑 에퀴리'가 있었는데, 오트테르 가문은 이 그레이트 그랑 에퀴리에 속함으로써 목관악기에서 가장 중요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루이 14세는 중앙집권 체체를 확고히 함으로써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태양왕임을 자처한 왕은 예술 또한 왕의 권위와 권력의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루이 14세 자신도 뛰어난 무용수로서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의 가장 큰 후원자 이기도 했다. 특히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던 륄리(장 밥티스트 륄리 Jean-Baptiste Lully,1632-1687)의 지휘 아래 목관 악기들은 더욱 세련된 소리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래서 궁정의 목관악기 연주자 , 제작자들은 악기의 개선과 개량에 역량을 쏟아부었다.
아마도 오트테르 가문도 이런 배경에서 악기의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장 오트테르(Jean Hotteterre, 1610경 ~ 1692경)는 자크 마르탱 오트테르(Jacques Martin Hotteterre, 1674 ~ 1763)의 할아버지로 역시 악기 연주와 제작으로 유명했다. 그는 특히 오보에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의 아들인 마르탱 오트테르(Martin Hotteterre, 1640경~1712)와 뮤제트 제작에도 중요한 진보를 가져왔다.
장의 아들인 마르탱 오트테르는 결혼해서 6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크 마르탱 오트테르이다. 자크 마르탱은 1674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자크 마르탱은 흔히 'Le Romai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는 그가 초기에 커리어를 로마에서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다. 자크 마르탱은 가로 플루트 연주자로 유명했으며, 1708년에는 왕의 실내 음악가(flute de la chambre du Roy)가 되었다. 그리고 1717년에는 그랑 에퀴리의 음악가가 되었으며, 1743년에는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또한 목관악기도 제작했는데, 현재 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악기가 남아있다. 그는 연주와 제작뿐만 아니라 작곡가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가 작곡한 곡들은 현재도 많은 수가 남아있고, 그의 가로 플루트를 위한 곡들은 조옮김하여 리코더로 많이 연주된다. 자크 마르탱은 악기에 대한 교본(논문)도 썼는데, 그중 제일 처음으로 나온 논문은 1707년 출판된 Principes de la flûte traversière, ou flûte d'Allemangne, de la flûte à bec ou flûte douce et du hautbois, divisez par traictez (가로 플루트와 리코더, 오보에를 위한 교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8세기 초 주요 장식음과 꾸밈음에 대한 방대한 양의 논의와 이것들의 적절한 사용법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연주자와 음악학자에게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의 리코더 부문 역시 이 시기 리코더 연주 실재에 대한 주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오트테르 가문에서 만든 악기는 현재 18개가 남아있다. 그중 13개가 리코더인데, 5개의 알토 리코더와 5개의 테너 리코더, 그리고 3대의 베이스 리코더가 남아있다. 그리고 나머지 가로 플루트가 3개, 오보에는 2개 남아있다.
오트테르 가문의 공방은 여러 개가 있었고 공방 별로 악기에 찍힌 마크가 조금씩 달랐다. 우선 장 오트테르와 그의 아들 마르탱, 그리고 손자 자크 마르탱(Le Romain)이 제작한 악기는 오트테르 성 밑에 닻 모양의 문양이 찍혀있다. 아달 포웰(Ardal Powell)에 의하면 현재까지 남아있는 3개의 가로 플루트 중 진품은 하나뿐이고 나머지 두 개는 19세기의 모조품이라고 한다. 진품으로 추정되는 악기는 현재 오스트리아 그라츠 박물관(Landesmuseum Johanneum)에 있는데, 자크 마르탱, 혹은 그의 아버지 마르탱 오트테르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 두 번째 진품 가로 플루트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악기에는 성 밑에 닻 모양 대신 LR이라는 글자가 모노그램으로 찍혀있다. 아달 포웰은 이 악기가 자크 마르탱의 별명인 'Le Romain'을 가리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포웰은 다시 이 주장이 조금은 황당할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자크 마르탱은 그의 아버지의 마크 모양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오트테르 가문이 만든 리코더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꽤 많은 수가 현재 전해진다. 그중 안타깝게도 자크 마르탱이 제작한 리코더는 남아있지 않지만 오트테르 가문의 다른 공방에서 만든 리코더가 현재 남아있다. 그중 한 곳은 니콜라스 오트테르(Nicolas Hotteterre Sr., 1637 ~ 1694)의 공방으로 니콜라스가 제작한 리코더에는 N/Hotteterre 이름 위에 6개의 별 문양이 찍혀있다. 또 다른 오트테르 공방은 루이스 오트테르(Louis Hotteterre Sr., ? ~ 1716)의 공방으로 마크는 L/Hotteterre 이름 위에 백합 문양이다.
현재는 오트테르 리코더를 모델로 한 리코더가 제작되었다. 뫼크(Moeck)에서 리코더 제작자 랄프 엘러트(Ralf Ehlert)가 디자인한 오트테르 테너 리코더가 440hz, 415hz로 제작 , 판매되고 있다. 또한 리코더 제작자 필립 볼톤(Philippe Bolton)이 파리의 오리지널 오트테르 리코더(G알토 392hz로 추정)를 기본으로 440hz의 오트테르 알토 리코더를 제작하였다.
참고
http://www.flutehistory.com/Players/Jacques_Hotteterre/index.php3
http://www.buyrecorders.com/hotteterre_family.htm
https://en.wikipedia.org/wiki/Jacques-Martin_Hotteterre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상권, 이앤비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