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리코더
최초의 리코더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마 그 누구도 리코더가 최초로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 다만, 여러 발굴 과정을 통해 뼈로 만든 피리가 발견되었다. 뼈피리는 기원전 4만 년 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나무와 갈대로 만든 피리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뼈피리나 대나무와 갈대 피리가 리코더의 선조이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부는 악기-피리-플루트의 시초는 이 악기들로부터 시작되었을 테니. 오늘날까지 남아서 그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뼈피리가 있다. 이 피리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라고 한다. 이것은 독일 가이센클뢰스터를레 유적에서 발굴되었는데, 백조의 요골로 만들어졌으며 대략 BC3600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뼈피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악기에 대한 것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악기와 그림 등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기에 우리는 지극히 적은 부분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선사 시대로부터 시간을 한참 돌려서 유럽 중세 시대로 넘어와 보자. 이 시대에도 리코더에 대한 많은 자료는 찾기 어렵다. 다만 몇몇 남아있는 악기와 그림, 문헌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현재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발견된 악기들이 있다. 그중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것도 있고 부서지거나 조각만 발견된 것도 있다. 발견된 악기를 복원하여 불어본 경우도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14세기 자두나무로 만들어진 리코더로 독일 괴팅엔(Göttingen)에서 발견되었다. 이 악기는 길이가 256mm 정도로 작고 원통형 관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며 끝은 둥글다. 취구 부분이 파손되어있으며 뒤에 구멍이 1개 앞에는 8개(제일 끝의 구멍이 2개가 나란히 나있는 더블 홀)이다. 이 리코더는 괴팅엔 리코더라 부른다. 이 리코더를 복원하여 연주한 실험이 있었는데 배음이 풍부하고 뻗어나가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다음으로는 네덜란드 도르트레히트 근처에서 발견된 일명 도르트레히트 리코더(Dordrecht recorder)가 있다. 이 리코더가 발견된 정확한 장소는 Hui te Merwede성이다.(이 성이 도르트레히트 근처에 있어서 더 큰 지명인 도르트레히트 리코더라고 부르는 듯하다.) 성이 있던 시기를 미루어 14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라 추정한다. 길이는 270mm로 앞서 괴팅엔 리코더보다는 조금 더 크다. 좁은 원통형 관이고 7번 구멍이 더블 홀이다. 괴팅엔 리코더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지만 라비움 부분이 손상되어 안타깝게도 연주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경우는 몸체가 온전히 발견되지 않고 조각만 발견된 경우이다. 14세기로 추정되는 에슬링엔 리코더 조각(Esslingen fragment)이 해당한다. 이 리코더는 독일 에슬링엔에서 발견되었으나 몸통 중간까지만 있고 나머지 부분은 소실되었다. 이밖에도 에스토니아 타루투에서 발견된 14세기 후반의 타루투 리코더(Tartu recorder)와 폴란드 엘바그에서 발견된 엘블락 리코더(Elblag recorder)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폴란드 실레시아 지역 니사(Nysa)에서 발견된 중세 리코더가 있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중세 시대에 발견된 리코더는 모양이 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취구의 형태가 현대의 리코더처럼 부리 모양이 아니며 다양하게 나타난다. 길이는 대부분 소프라노 리코더 정도이다. 그런데 에슬링엔 조각은 보존된 윗부분을 미루어 앞의 리코더들 보다 훨씬 길고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 발견된 리코더는 비단 취구의 형태만 현대의 리코더와 다를 뿐 아니라 구멍 개수에서도 차이가 난다. 타루투 리코더를 제외하면 모두 마지막 7번 구멍이 두 개가 나란히 뚫려있는 더블 홀이다. 현대 리코더에서는 이런 형태가 낯설지만 사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리코더는 7번 구멍이 이렇게 더블 홀이었다. 현재 리코더를 잡는 기본방법은 왼손을 위로, 오른손을 아래로 잡는데, 중세와 르네상스 리코더는 7번 구멍이 더블 홀이어서 왼손이 아래로 향하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르둥(S.Virdung 1400년대 독일의 작곡가이자 이론가)에 의하면 두 개의 구멍 중 안 쓰는 구멍은 왁스로 막아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리코더를 잡는 위치가 왼손 위, 오른손 아래로 정해져 있는데 비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가 어찌 보면 더 자유로웠다고 생각이 든다.) 복원한 괴팅엔 리코더의 음정은 대략 450Hz로 오늘날 표준음고인 440Hz 보다 높았고, 원전 연주에 주로 쓰이는 음고인 415Hz 보다도 높았다.
중세 그림에서도 위와 비슷한 리코더들이 종종 발견된다.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라 추정되는 중세 그림은(1315년) ' The Mocking of Christ'으로 마케도니아 쿠마노보(kumanovo)근처 성 조지 수도원 성당(church of St George)에 있다. 이 그림에서는 한 광대가 북을 치는 광대 옆에서 리코더로 생각되는 악기를 불고 있다. 다른 그림으로는 1390년쯤으로 추정되는 페드로 세라(Pedro(Pere) Serra)가 그린 'Virgin and Child'가 있다. 이 그림은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앉아있고 그 주위로 천사들이 각자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이중 성모 왼편 제일 위쪽에 리코더를 부는 천사가 보인다.
15세기에는 일련의 리코더 연주자가 연주하는 모습이나 리코더를 연주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림에 자주 묘사되었다. 그러나 특정 리코더 음악은 전해지지 않는다. 중세로부터 전해지는 음악 자체가 많지 않은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이다. 몇몇 기악곡이 현재에도 보존되어 있으나 특정 악기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현대에는 리코더 연주자들이 Le manuscrit du Roi(왕의 필사본, 13세기 중반 만들어진 대표적인 중세 음악곡집이다.) 나 Codex Faenza(파엔차 문서. 15세기 중세 음악 필사본으로 성악곡과 건반곡을 담고 있다. 리코더 연주자 페드로 메멜도르프(Pedro Memelsdorff)가 해설한 복제본이 있다.)등의 중세 음악곡집을 참고해 연주하기도 한다. 또한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나 요한네스 치코니아(Johannes Ciconia)등의 작곡가의 성악곡을 리코더 앙상블로 연주하기도 한다.
참고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상권, 이앤비플러스
http://www.buyrecorders.com/Recorder%20Iconography/Marienlebens_Angels_1465_Detail.jpg
https://www.recorderhomepage.net/history/the-medieval-period/
Hans -Martin Linde, The Recorder Player's Handbook, Schott
https://en.wikipedia.org/wiki/Recorder_(musical_instr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