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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끝에 마주한 오스트리아, 비포선라이즈는 어디에?

60만 원에 끊은 유럽여행, 시작은 순조로웠으나 끝은 어질어질했다?

by 아보카도

출국 나흘 전에 결정된 여행이었다. 일단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원래는 16년 지기 친구와 신나게 놀 수 있는 여행지를 찾다가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나 혼자 여행을 갈 수 있는 여행지를 고르다가 터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고민했다. 얼마 전에 터키에 갔다 온 친구는 내가 터키를 엄청 좋아할 것이라고 했고 오스트리아를 첫 휴가로 갔다 온 친구는 오스트리아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둘 다 엄청 가고 싶었지만 오스트리아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경유지 때문이었다. 경유지가 바로 광저우였다! 광저우에 주재원으로 가 있던 친구가 12월 초에 이사를 완료했다며 놀러 오라고 했었고 그때 비행기표를 알아보았던 기억이 스쳤다. 출국할 때 광저우에 저녁에 도착하면 저녁을 같이 먹고 수다를 떨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비행기릍 타고 오스트리아로 가면 너무나 좋을 것만 같았다. 친구는 역시나 콜을 외쳤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12월 18일 출국, 12월 25일 입국 비행기로. 유럽을 싸게 가도 80~90만 원대로 가는데 세상에 유럽을 60만 원대로 가다니! 하며 즐거운 마음에 오스트리아 여행에 들떴다. 결과적으로 갈 때는 연착, 결항 하나 없이 순조로웠으나 입국할 때는 비엔나에서 한 번 연착이 되었다는 문자를 당일 아침에 받고 중국의 우루무치에서 폭설로 연착되는 멘붕 사태를 겪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남방항공 너 다시는 이용하지 않으리. 역시 싼 게 비지떡이야.


사실 여행 당일까지도 나는 숙소와 유심칩, 잘츠부르크 카드, 무지크 페어라인에서의 공연,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판도르프 아웃렛 왕복 버스표 이외에는 예약해 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흘 비엔나에서 자고 하루 정도 잘츠부르크에서 자고 그 이후에 첼암제나 할슈타트를 당일치기로 갔다 올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고 마지막 날은 비엔나에서 여유롭게 즐겨야지 정도까지 생각했다. 고민하던 비엔나 패스는 끊지 않기로 했다. 그 날 컨디션 상태에 따라 움직이고 싶었고 그렇게 힘들게 모든 곳을 다 돌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떠 있었기에 비엔나 패스에 있는 모든 장소를 꼭 돌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비엔나 패스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비엔나 패스를 할지 말지를 고민한다면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갑자기 로컬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을 수도 있고 갑자기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 수도 있는데 24시간 혹은 48시간 비엔나 패스에 얽매여서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 아닌가.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트릴로지 시리즈를 정말 사랑하는 나는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는 대신 비포 선라이즈를 정주행 했다. 에단 호크는 왜 이렇게 섹시하며 치명적으로 잘생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환상적인 일이 비엔나에서 내게도 일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소재로 어떤 대화를 나누어도 흥미롭고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환상적인가. 솔직히 말하면 대화도 대화겠지만 에단 호크의 비주얼이 한몫 크게 했겠지? 그래서 기대를 하고 인천에서 광저우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중국 가려면 비자를 끊고 가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그런가 하며 찾아봤더니 24시간, 48시간 비자를 광저우 공항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비자를 발급받으려는데 내 여권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한참 걸려서야 비자를 발급받았다. 유물로 간직하고 싶어서 아직까지 여권에 부착시켜놓았던 멕시코 비자 때문인지 심사가 꽤 오래 걸렸고 심사 이후에야 친구와 만날 수 있었다. 꺄훌!



우리나라 계절에 최적화된 옷을 입고 갔던 나는 광저우의 늦여름~초가을스러운 날씨에 다소 덥다는 생각을 했다. 광동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광저우 맛집 타오 타오 쥐에 가서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들을 엄청 시켜서 둘이서 다 못 먹고 남기고 나왔다. 오리고기도 맛있었고 배추를 기름에 졸이듯이 볶아낸 배추 샐러드가 인상적이었다. 바삭바삭했던 닭과 딤섬이 아직도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재스민 차가 너무나도 맛있어서 물배 채운다고 음식을 남겼던 것 같다. 그리고는 내려와서는 밀크티로 유명한 Hey Tea에 가서 망고가 씹히는 맛있는 밀크티를 먹으면서 켄톤 타워가 보이는 공원을 거닐었다. 날씨가 완전 내 스타일이어서 기분이 업되었다. 친구네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밤을 지새우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5시에 디디를 통해서 예약해 둔 차를 못 탈 뻔했다. 5시 30분까지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다음 부랴부랴 씻고 공항에 도착했다. 광저우 공항은 인천 공항 못지않게 쾌적했으며 광저우-우루무치, 우루무치-비엔나는 별 탈 없이 제시간에 비행이 진행되었다. 갈 때는 내내 자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19일 4시에 비엔나에 도착한 나는 유심칩을 갈아 끼우고 무지크 페어라인에 예약해 둔 공연을 보기 전에 숙소에 들러야만 했다. 숙소로 가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나는 S7 국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는 지하철이나 트램의 문이 자동적으로 열리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눌러서 들어가거나 해야 한다. 분명히 블로그를 통해서 인지하고 있었는데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해서 눈앞에서 기차를 놓치고 그다음 기차를 30분 이상 기다린 후에야 기차를 타고 숙소에 6시 40분쯤 도착해서는 짐만 풀고 무지크 페어라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환상적인 공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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