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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Jun 04. 2021

킁킁킁 어디서 목욕탕 냄새 안 나?

코로나 시대에 추억해 보는 일본 교토 목욕탕 추억


8월 한여름, 가장 뜨거운 그 계절에 나와 박은 일본 교토로 여행을 떠났다. 도시 전체가 아주 드넓은 습식사우나 같았다. 후덥지근한 습기에 걸음걸음마다 치맛자락이 쩍쩍 다리에 달라붙어 걷기조차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놀러 온 일본이었기에 아침 댓바람부터 늦은 저녁까지 정말 꽉꽉 채워 관광을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순간에도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고, 우연히 얻어걸린 교토 민속 축제인 기온 마츠리를 일본 만화 속 주인공처럼 즐겼다. 그날 적어도 3만보는 걷지 않았을까 싶다. 물을 한가득 머금은 모래주머니를 양손과 양발에 차고 걷는 상태가 되어서야 숙소로 향하는데, 박과 나는 동시에 눈을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목욕탕 냄새 안 나?


나와 박은 목욕탕 덕후다. 우리가 이렇게 절친해진 이유 중 하나는 목욕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둘은 목욕탕을 좋아한다. 만난 김에 목욕탕을 가는 건지, 목욕탕을 가기 위해 만나는 건지, 등산한 김에 목욕탕을 가는 건지, 목욕탕을 가기 위해 등산을 한 건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런 우리 둘의 코는 못 속이지. 


킁킁킁. 수증기에 스며든 비누냄새를 맡으며 걷다 보니 어두운 골목 틈에 아른거리는 불빛을 하나 발견했다. 오! 꼭 짱구가 다녔을 법한 작은 동네 목욕탕이다. 마감까지 겨우 1시간 남짓. 우린 고민도 없이 목욕탕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2人です。"(2명이요!")


호다닥 훌러덩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서니 연세가 꽤 되어 보이시는 할머니 다섯 분 정도가 목욕을 즐기고 계셨다. 늦은 밤 작은 동네 목욕탕을 찾은 젊은 여자가 신기하신 건지 모두가 잠시 우리를 슬쩍 쳐다보셨다. 그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이 분들은 모두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셨겠구나 싶었다. 아 맞다. 잊고 있었는데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였지. 올라갔던 입꼬리가 슬며시 제자리를 찾고 나는 박에게 조용히 말했다. "야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나 봐. 좀 그렇다. 조용히 얼른 씻고 가자."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바가지에 물을 담아 몸을 빠르게 씻어냈다.(신기하게도 그 목욕탕에는 샤워기가 없었다. 무조건 바가지에 물을 받아 써야 했다. 오. 물절약 국가의 위엄) 그래도 명색에 목욕탕에 왔는데 사우나는 한 번 들어갔다 나와야지. 아주머니 한 분이 이미 들어가 계신 사우나에 들어가 잠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국인?"이라며 묻는 게 아닌가. 아니아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홀딱 벗은 내 나체만 보고도 내가 한국인인 줄 알다니. 너무 신기했다. 


"한국인이세요?! 저희 말 한 마디도 안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동포끼리 꼭 말을 해야 아나. 딱 보니 한국인인데 뭐"


이게 바로 외국에서 느끼는 동포애인가. 괜히 쫄아있었는데 사우나에서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나니 갑자기 든든해지고 편해졌다. 이때다 싶어서 "저 탕은 사람이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여기는 왜 샤워기가 없어요?" "일본도 때밀이 파나요?"라며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다. 아주머니 덕분에 맘 편히 1인용 탕도 이용해보고, 머리 말리는 기계도 사용해보고 아주 재미지게 일본 목욕탕을 탐미했다. 감사했습니다. 


몽글몽글 수증기가 잔뜩 낀, 뜨뜻한 따순물이 참방참방 출렁이는 목욕탕을 사랑한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길 기다렸다가 얼음장 같은 냉수로 첨벙 뛰어드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 그립다. 세신사 어머니의 매서우면서도 섬세한 때수건 손길도 간절하다. 코로나만 끝나봐라. 아주 내가 온몸이 쭈글쭈글 불어터진 우동면발이 될 때까지 목욕탕에서 나오질 않을테다.  


드디어 코로나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모두가 건강히 또 무사히 백신을 맞고 다시 마스크를 벗으며 일상을 즐기는 날이 오길 소원하며 그리운 옛 추억을 꺼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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