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원숭이에게는 과연 좋을까요?
야, 저 시체 치워.
2000년대 초반의 서울의 한 고등학교. 이른 나이에 하얗게 머리가 센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책상에 엎드려있는 학생을 가리키며 언짢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마지 못해 자고 있는 학생을 건드려 깨웠다. 자다 깬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다. 깊은 잠에서 갑자기 빠져나왔을 때 보이는 특유의 어리둥절함이 보였으나 선생님에게는 좋게 보일리 없었다.
그 친구는 매번 수업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잠을 깨야했는데, 선생님들의 멘트도 참 다양했다. ‘시체 치워’, ‘자려면 숙박비 내’ 등등. 그 아이는 선생님이 때리면 맞고, 아이들이 깨우면 일어났다. 딱히 반항심도 없어보였다. 그저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그가 하는 일은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일이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그 아이는 키도 많이 커서 자고 있어도 유난히 튀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 나라의 공적인 교육은 그가 왜 그렇게 자는지, 아니 자야만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90년대 말에 시작된 스타크래프트의 초기 유저이자, 뉴밀레니엄 당시 시작된 우리나라 게임판의 선두주자가 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찌 보면 나 역시 그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함께 그 게임을 시작했었다. PC방이 80년대생의 보편적 문화가 되어가기 시작하던 그 때, ‘스타’를 못하면 그야말로 사회 생활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임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팀전을 하게 되면 머릿 수를 맞추기 위해 들어가곤 했지만 내가 들어간 팀에게는 늘 민폐만 될 뿐. 그래서인지 반에서 맨날 잠만 자는 녀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잘 느끼지 못했었다. 다만 친구가 언젠가부터 대회에 나가서 상금을 받기 시작했고, PC방 사장님이 스폰서가 되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금을 받은 다음 날이면 친하게 지내던 몇몇 아이들에게 버거를 샀다. 녀석이 사주는 햄버거는 별 기대가 없었던만큼이나 꽤 맛있었다.
2001년의 어느 날, 집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iTV의 게임 프로그램에서 녀석이 헤드셋을 쓰고 나온 모습을 보았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은 분명 똑같은데 교실에서 보던 향방 없는 눈빛이 아니었다. 게임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무언가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등교를 하면 녀석은 다시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웅크렸다. 시체를 치우라는 선생님의 멘트도 그 자극적인 속성을 점점 잃어가고 점점 익숙해져갔다.
2003년 대학에 진학해서 내가 나온 고등학교와는 전혀 상관 없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쩌다보니 게임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나는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상대방으로부터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교실에서 맨날 잠만 자던 아이의 이름. 그것도 가장 좋아하는 ‘프로게이머’의 이름이라며. 개인전은 몰라도 팀전에서는 이미 탑 플레이어라며.
나는 오묘한 기쁨과 충격을 느끼며 학교 도서관에 앉아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의 프로필이 검색되었다. 나는 너무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게임 시장은 그 사이 엄청나게 커져서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팀들이 생겨나있었고, 친구는 그 팀의 에이스로 보였다. PC방 사장님의 스폰을 받던 친구는 이제 대기업의 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가 되어 있었다.
이십년이 지났고, 나는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 되어 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서 이제 아내와 나의 품을 떠나 공교육을 향해 가고 있다. 학교라는 곳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교실에서 ‘시체 취급’을 당하던 친구 생각이 났다.
80년대생인 나와 아내가 다니던 당시의 학교는 비슷한 공기가 흘렀다. 그저 ‘좋은 대학’을 가면 삶이 순식간에 확 바뀔 것 같은 환상. 그 환상에 동의하지 않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머리로는 그 환상을 믿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그 환경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 같다. 적어도 교실에서 잠만 자는 아이와는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 속에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뿌리 깊은 교만함이 자라가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실 그 착각은, 교만함을 넘어 무지(無知)에 가까웠다. 나는 이러한 면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공교육과 사회의 인정을 받았던 아이들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재능 중에 공부하는 재능을 가졌을 뿐인데 그것으로 과한 인정을 받았던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자기 인식에 왜곡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분명 배웠는데 못 배운 것이다. 이렇듯 우월감과 열등감은 사실 그 뿌리가 같다.
그 교실 안에 있던 수많은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공교육이라는 틀을 벗어나 어쩌면 자유롭게 자신의 뜻과 재능을 펼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게이머가 되었던 친구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서 내가 소식을 들었을 뿐,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신의 꿈과 재능을 펼치고 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누군가는 공교육이 심어준 틀 속에서 얻은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여전히 가진채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런지.
결국 공교육이 심어준 우월감도, 열등감도 살아가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자녀들은 과연 교육의 틀 안에서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시절,
교실 안에 엎드러져 있는 아이들은 사실 시체가 아니라 훨훨 날아갈 준비를 하던 애벌레가 아니었을까.
그 교실에 있던 아이들 모두에게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든 사람은 천재이다.
하지만 물고기를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평가한다면
그 물고기는 자신을 바보로 여기며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