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Mar 04. 2021

영화 '미나리', 민낯의 가족이 풍기는 따스함

외국어 영화? 미국 영화? 저는 '가족 영화'로 봤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가지는 힘


이 영화의 캐스팅을 받은 윤여정 배우는 대본을 읽어내려가다가 문득 섭외 스탭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고 한다.


“이거 얘(정이삭 감독) 이야기니?”

“네”

“그럼 할게”     


한국영화계를 오랫동안 지켜온 베테랑 배우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몸을 실을만큼 실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한 듯 하다. 영화 ‘미나리’는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지닌 채, 미국에 발을 내딛었던 한 가정의 이야기이자, 한국인들의 이야기이며, 또한 미국인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자신의 아버지들을 연기한다는 것


정이삭 감독은 자신의 이민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냈다. 배우이자 제작에 참여한 스티븐 연 역시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 온 이민 2세대이다. 스티븐 연이 제이콥을 연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아버지 세대를 자신에게 투영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민 1세대 아버지의 연기를 한다는 것은 배우 입장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파도에 몸을 맡기듯 불투명한 미래에 맞서 견뎌냈을 부모 세대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적으로도 네이티브 스피커인 배우가 아버지 세대의 콩글리쉬(Konglish)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 은 배우에게 만만치 않은 이중고(二重苦)였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낸 스티븐 연의 연기는 경이롭다. 이민자 2세대 스티븐 연은 ‘미나리’에서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How To Categorize?: 골든글로브 논쟁의 본질


‘미나리’는 특수적 맥락의 영화로 해석될 수 있다. 이민자들에게는 이민자로서의 삶의 고달픔이 가슴에 와닿을 것이고, 미국에 원래부터 몸 담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이웃들의 역사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에게는 ‘미나리’라는 상징으로 대변되는 민족적 강인함과 그로 인한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머리를 써야 돼’라고 일곱 살 아들에게 교육하는 제이콥의 모습은 어디에서든 저력을 발휘하는 한국인의 초상과도 같다.     

이러한 영화 ‘미나리’의 다면적 성격 때문에 이 영화는 세간에 잘 알려진 미국의 한 영화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국인(브래드 피트)이 제작하고, 미국인 감독(아이작 정)이 디렉팅하고, 미국인 배우(스티븐 연)가 열연한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타자화하는 것이 미국 사회의 후진성과 배타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미국 영화계의 자조적인 비난도 있었다. 보다 더 세계적인 영화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이 논쟁은 그만큼 영화가 다양한 관점으로 읽힐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나리'는 '가족'의 이야기다


하지만 관객의 살아온 맥락이 어찌됐든, 미국인이 보든 한국인이 보든 이 영화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가족 영화’이다. 이민을 경험하지 않은 한국인 관객들에게도 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분류에 대한 논란을 뒤로 하고 필자는 이 영화가 국적을 초월하여 꿰뚫고 있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쓸모 있는' 사람 되기


스티븐 연과 한예리가 분한 80년대 초반의 삼십대 부부는 그 어떤 달달한 애정표현도 없다. 물론 그들도 한때는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멀리 미국 땅까지 왔으며,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주자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두 아이와 함께 미국 땅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미션이 하루하루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몸부림친다.


‘쓸모 있는’ 병아리와 그렇지 않은 병아리를 구분하는 작업장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생존 무대이다.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는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쓸모 있는 병아리를 구분해내며 가정을 부양하지만 각자가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르다.  


사랑하지만 방법이 다른 사람들


제이콥이 꿈꾸는 것은 비옥한 미국 땅에 한국의 농작물들을 재배하여 동포들에게 납품하는 부농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의 자본 투자로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 그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미국의 땅과 호흡하며 농사의 근원인 물을 끌어오고자 사투를 벌인다. 하지만 모니카가 꿈꾸는 가정은 소박하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정이다. 농장을 일구어내기 위해 모든 열정과 시간을 투여하는 남편이 그녀에게는 야속하기만 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 특히나 심장이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둘째 때문에 병원이 가까운 도시가 간절하다. 도시에 가면 한국인들도 많이 있고, 아이들도 또래가 있을 것이다.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삶의 질은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이들도 아빠가 뭐라도 해내는 모습을 한 번 쯤은 보아야 하지 않겠어?
우리는 서로를 구원해줄 수 없지만 돈은 할 수 있다?
    



민낯의 가족, 그 따스함에 관하여


그들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포장할 수 없는 ‘부부’와 ‘가족’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시간적, 재정적 자원이 풍요로운 상태, 특정한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만 나올 수 있는 사랑이 아닌, 스스로의 안위조차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가족’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를 제이콥의 가족들은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비단 ‘이민자’들에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살아낸 ‘이민자’로서의 삶은 결국 얼마나,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의 시험대였을 것이며, 그 속에서 자라난 이민 2세대들은 부모 세대가 치열하게 서로를 사랑해냈던 것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당사자에 의해 기억된 가족의 이야기가 영화로 그려져 잔잔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 할머니와 비할 수 없는 '순자'의 매력


가정을 뜨겁게 사랑하지만 오히려 사랑하는만큼이나 평행선을 그리는 부부와 가정의 위기는, 결국 더 큰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야 역설적인 희망을 마주하게 된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들에게 모니카의 친정 엄마이자 두 아이의 할머니인 순자(윤여정 분)의 등장은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재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미국에서만 자란 손자들과 순자(윤여정 분)의 정서적 교류는 미국의 할머니들만 보고 자랐을 이민 2세대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욕을 하며 화투장을 내리치는 모습도, 괴로운 맛의 탕약을 먹이는 모습도 아이들이 생각하는 할머니의 ‘역할’과는 너무나 달랐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줄 수 없는 가장 ‘한국적’인 희망의 씨앗을 ‘순자’는 품고 있다. 치열한 부부와 덩달아 고달픈 아이들의 삶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지는 순자의 역할은 윤여정 배우의 빛나는 연기와 함께 힘을 발휘한다.     


여담: '기생충'도 가족영화였다


여담으로 봉준호 감독과 윤여정 배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의 말로는 ‘기생충’도 가족 영화였다고 한다. 본인이 기획했던 영화의 분류는 ‘가족물’이었던 셈. ‘기생충’과 ‘미나리’는 생존 경쟁에 내몰린 가족이라는 기본 설정은 같다. 하지만 사회학과를 나온 봉감독은 ‘계급론’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유혈이 낭자하는 엔딩으로 마무리했다. 정이삭 감독은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슴 따뜻한 희망으로 마무리한다.

      

“봉감독도 세상을 좀 따뜻한 시선으로 봐”     


윤여정 배우가 봉준호 감독에게 날리는 따스한 일침.     

이민자들도, 한국인들도, 미국인들도, 세계인들도 모두 각자의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미나리’. 가족영화이자 외국어 영화이자, 할리우드 영화인 영화의 역설적 속성만큼 관객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번 한국 개봉도 기대가 된다. 3월 3일 개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