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소년, 다시 '죽음'과 마주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생활 습관을 바꾸어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내와 영원이, 소원이가 없이 홀로 지내는 그 시간을 매우 귀하게 생각했다. 나는 아내와 소원이, 그리고 외할머님께서 계시는 창원의 호스피스 병동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또 영원이와 처제가 있는 미세먼지가 자욱한 베이징을 생각하면서 기도했다. 그렇게 홀로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 자체가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생각하기 힘든, 달라진 생활이었다.
또한 가족들이 없는 시간을 통해서 나는 오랜만에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글을 ‘썼다’기보다 글이 ‘써 졌다’. 가족들과의 생활을 살아내면서는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도 마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한동안 마음을 글이라는 형태로 담아내는 작업을 하지 못했었는데. 홀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글이 써 졌다.
아들의 귀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다. 아내는 외할머니와의 시간을 더 보내기를 바라고 있었고, 이 시점에서 영원이가 돌아온다면 나는 영원이와 전주에서 둘이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손길 없이 아들과 함께 지낼 생각에 설렘도 있었지만 그보다 실질적인 준비가 되어야 했다. 아내가 잠시 입원했을 때, 아들과 둘이 지낸 적이 있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아빠였기에 그 때도 아이에 대한 세심한 케어가 되지 못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의 마음 속에서는 외할머니와 함께 하느라 몸과 마음이 고단할 아내에 대한 애틋함, 아들에 대한 진한 그리움, 솔로 생활을 청산하는 것에 대한 솔직한 아쉬움, 아들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 독박육아의 초조함 등이 서로를 붙잡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아들의 귀국일은 12월 11일로 정해졌다. 그 날짜는 영원이가 가진 비자의 만료일이기도 했다. 보낼 때는 한 달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아들은 베이징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뿐 아니라 이모와의 생활을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지난 번 여행에서도 돌아온 후유증이 심각했는데, 이번에는 한 달이나 지내다 오는만큼 그 후유증도 클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중국은 ‘비자’라는 것이 있어서 허락된 기간이 만료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비자의 ‘기간 만료’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최적의 명분이 되어주었다.
아들의 귀국 전야, 이런저런 생각들이 하염 없이 뒤엉킬 때 쯤, 전화벨이 울렸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영원이가 돌아오기 전날 밤, 외할머니께서는 그렇게 부름을 받으셨다.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내는 생각보다 침착한 모습이었다. 부모님을 잃은 장모님과 외삼촌들, 이모님, 그리고 장인 어른의 슬픔은 감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그렇게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서로 사랑하며 버텨왔었고,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때였다.
창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슬픔에 젖기보다는 손주 사위로서 손이 필요한 적재적소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손님들 한 명, 한 명을 손주 사위인 내가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발걸음을 재촉해서 와 주신 모든 분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소천'은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아내와 식구들은 외할머니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했다. 그것은 외할머니께서 인생의 말미에 신의 섭리를 깨닫고, 해방과 자유를 경험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베이징과 전주, 창원에서의 기억들은 '사랑'의 실천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일어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것이 죽음을 표현하는 우리의 여러 단어들 가운데 내가 '소천'이라는 단어를 찾아 쓴 이유이다. 이별은 슬프지만 다시 만날 소망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보고 싶던 아들과 처제를 마주한 건, 슬픔과 분주함이 장례식장을 가득 메우던 그 날 저녁 7시 쯤이었다. 창원으로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티켓팅을 했기에 그들은 인천 공항을 통해서 귀국했다. 그리고는 처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창원까지 온 것이었다. 두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400km의 거리를 차로 달려온 터라 피곤할 법도 할터인데 영원이는 아빠, 엄마보다 자신의 동생을 서둘러 찾았다.
그가 보고 싶어서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사랑. 바로 그의 여동생이었다. 그는 엄마의 등에 업힌 동생의 볼에 연신 입을 맞춘 후에야 엄마와 아빠에게 안겼다. 그의 여동생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계속 찡얼거리고 있었는데 그의 오빠를 보자마자 방긋 웃어주었다. 진심은 역시나 통하는가보다.
우리의 만남은 우리가 예상했던 재회의 모습이 아니었고, 그 기쁨을 드러낼 수도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불쑥 자라온 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로였다.
그리고 영원이는 증조 할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증조 외할머니의 죽음을 직면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문제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신과 독대하는 자리로 나아갔다. 우리는 처절하게 홀로 신과 독대한 아들의 뒷모습을 기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화가 '마지막 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