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
한동안은 아들을 안아도 현실감이 생기지 않았다. 한 달동안이나 내 품에 없던 아이를 다시 안으니 신비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한테 이렇게나 큰 아들이 있다니
우리는 분명 ‘아기’를 낳아 키웠는데 어느 순간 우리의 옆에는 우리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친구’가 옆에 있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함께 살 때는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재회한 아들은 영락 없는 우리의 ‘친구’였다. 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녀석은 가족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녀석은 그래서 자주 까페에 가자고 한다. 그것은 녀석이 주스를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우리와 퀴즈 맞추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 날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를 좋아하는 진정한 우리의 ‘친구’다.
우리는 장례 일정을 마치고, 한동안 가족들과 포항에 머물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이모를 배웅해주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이모와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매우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이모와 다시 떨어져야한다는 건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난 기쁨과는 별개의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이모와 헤어질때 많이 힘들어하고 울었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걱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이징의 험난한 세파마저 이겨낸 이 씩씩한 남녀는 공항에서도 신파극을 벌이기는커녕 꽤나 유쾌하게 헤어졌다. 짧은 인사와 함께 말이다.
이모, 안녕!
하지만 우리는 아이의 깊은 마음 속에 있는 아쉬움과 슬픔을 보았다. 이모를 떠나 보낸 아이를 말없이 안은 채, 우리는 다시 전주로 향했다.
아들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은 이미 일상이 아니었다. 더 커진 생각, 넓어진 마음, 그리고 죽음 앞에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된 네 살의 아이는 예전과는 다른 고민과 질문들을 내뿜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 고민과 질문들을 함께 품는다. 일방적인 해답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길을 스포일러하고픈 마음도 없다. 아이가 필요로 할 때마다 함께 있어주고, 함께 고민하며, 부모의 앞선 경험이 아이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제시해줄 뿐이다.
그는 끊임 없이 내면을 성찰하고 있고, 길을 찾고 있다. 아마도 그 여정은 평생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네 살' 아들은 해가 지나 '다섯 살'이 되었다.
아이의 '다섯 살'은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이 아이의 인생은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의 삶은 언제나 '신의 섭리' 위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험난한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기듯이,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나일강물 위에 '모세'를 띄워놓았듯이,
우리는 오늘도 이 아이를 태우고 천천히 순항하고 있는 ‘배’일 뿐이다.
<끝>
* '종영'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약간의 '에필로그'를 더 연재할 예정입니다.
엔딩 이후의 부록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