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Epilogue)
안녕하세요, 작가님. ‘네 살 아들의 나 홀로 중국’이라는 어쩌면 독특한 타이틀을 걸고, 글을 연재해주셨는데요. 먼저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네 살 아들의 나 홀로 중국’이라는 제목을 언뜻 보신 분들은 ‘중국 여행 다녀온 이야기’구나 하고 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 둘 씩 글을 읽어나가시다보면 ‘여행 이야기’보다는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네 살짜리 아들을 중국에 홀로 떠나보내면서 엄마, 아빠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 철학, 교육 환경, 언어, 문화, 죽음 등의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쩌면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담아주셨는데요. 글을 마쳐보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개인 공간에는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보자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몇 화 안 되어서 포털 메인에도 몇 번 올라가다보니 이것이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한 번 글이 노출되면 하루에도 수 만명의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더라구요.
그럼에도 더더욱 처음 마음 먹었던 글의 솔직함을 지켜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꾸준히 쓰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재운 새벽에 홀로 앉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그 시간이 피곤하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글을 쓰는 꿈을 늘 독려해준 아내와 글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영원이, 절세미녀 딸, 영원이의 가장 좋은 선생님이자 친구인 처제, 가족들, 그리고 매 화마다 깊은 관심과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님들이 계셔서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네 살짜리 아이를 엄마, 아빠 없이 해외로 보낸다는 게..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어떤 생각이셨을까요?
저희의 이야기는 사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살짜리 영원이가 홀로 중국에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동기부여는 아이의 이모에요. 이모가 워낙 예쁜데다 영원이의 눈빛만 보아도 어떤 마음인지 알 정도로 아이의 눈높이와 잘 맞추어주거든요. 그러니 아이 입장에서도 부모와 그렇게 쿨하게 이별할 수 있는거죠.
두 번째 동기는 아이의 독립심입니다. 아들이 기질적으로 독립심이 강하다보니 네 살 쯤 되었을 때부터는 엄마, 아빠가 없는 곳으로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군요.
그리고 두 번째 여행은 글에서도 나오지만 아이 엄마가 죽음을 눈 앞에 두신 외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연장선 상에서 아이가 이모와 함께 출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처음 쓰고자 하는 마음은 언제 드신 거에요?
영원이가 중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저희 아내와 저도 고민이 많이 되었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용기를 한 번 내보자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홀로 떠나보낼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깨닫고, 누릴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글로 담아내고자 하는 욕심이 아이를 두 번째 중국에 보낼 때 쯤에 생겼었습니다.
조금 쌩뚱맞은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왜 글을 쓰십니까?
저는 글이 가진 힘을 믿어요. 글을 통해 진심이 전달되고, 누군가의 생각이 나의 삶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또 내 삶이 누군가의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제 필명을 ‘이음’이라고 지었어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정말이지 신비의 세계에요. 글을 쓰는 것은 사실 읽는 사람의 숫자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지만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제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삶에 대하여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성공한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이번 연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수만명이 글을 읽어주신 날도 있고, 수백명에 그친 날도 있었지만 늘 애정어린 시선으로 영원이의 성장과 함께 해주신 분들이 있었거든요. 또한 영원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과 죽음의 문제, 우리 사회와 가족의 문제, 교육의 문제에도 함께 고민해주셨구요.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재된 글들이 많은데, 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열 네 번째 이야기를 꼽고 싶어요. 영원이가 두 번째 출국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어간에 저희 부부가 결혼 생활을 통해서 어떻게 서로 사랑해왔는지를 서술해놓은 부분이 있거든요. 그 원리를 알게 되기까지 제가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아내가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고 하는데 그 명제가 제 실제 삶으로 연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한 솔직한 이야기들이 잘 소통되어서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쓸 때, 어떤 방식으로 구상하고 쓰시나요?
저는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다만 글이 마음 속에서, 그리고 생각 속에서 구상되는데까지가 오래 걸리지요. 그러다가 여러 생각과 마음의 조각들이 개기일식이나 월식 때처럼 하나의 축으로 줄을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치 크로키처럼 주제 의식을 가지고 뱉어냅니다.
그러고 나서 탈고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내 거친 말들로 누군가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순수한 의도였지만 혹 내 자랑처럼 느껴지지는 않을지 이러한 것들을 섬세하게 다듬는 작업들이 필요하지요. 이 작업은 현재 ‘편집장’을 맡고 계신 저희 아내가 맡아주고 있습니다. 멋진 아들과 예쁜 딸을 낳아준 것도 모자라서 남편의 꿈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멋진 여성이죠.
작가님께서 좋아하시는 작가 분이 있다면요?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성인이 되어서부터 오히려 독서량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재미있게 읽었던 문학작품들은 다 학생 때 접했던 분들입니다.
학창 시절에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입니다. 하루키의 소설들이 그리 밝은 느낌은 아니죠. 방황하고 부유하는 청춘들의 이야기였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 작가로서는 양귀자님의 소설 좋아했구요. 초등학교 때 이문열님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통해 첫째 자녀분을 굉장히 '독립적'으로 키우시는 것으로 보았는데요. 혹시 따님도 이와 같은 교육 방식으로 대하실 건가요?
사실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냈다기보다 아이 스스로 한발짝씩 독립한 것이고, 부모와 이모가 그것을 권장한 것 뿐입니다. 아이 양육이라는 것은 부모의 철학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기질과 성향을 세심하게 배려해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둘째 아이는 그에 맞는 교육 방향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일단은 이 아이가 어떤 성향의 아이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겠죠.
앞으로도 작품 활동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앞으로도 무엇이든 꾸준하게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쓰고자 합니다. 육아 에세이로 글 발행을 시작했지만 글이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면 분야는 어떤 분야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연재 기간동안 제 미천한 글들을 재미있게 보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직 부족한 부모이지만 좌충우돌하면서 남다른 독립심을 지닌 우리 다섯 살 아들, 절세미녀 두 살 딸을 열심히 키워보렵니다.
앞으로도 제 글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