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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an 24. 2019

저희 부부도 싸움을 합니다만

feat. 다섯 살 아들의 고마운 중재(仲裁)

간밤의, 간만의 부부 싸움


둘째 소원이의 울음소리와 아내의 목소리에 어렴풋이 잠에서 깬 것은 새벽 두 시 쯤이었다.


여보, 보리차 좀 가져다줄래요? 소원이 물을 먹여야 될 같아서요.


나는 비몽사몽간에 일어나서는 거실로 나왔다. 주방에 있는 물병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컵에 물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일어나서는 거실로 나왔다. 주방에 있는 물병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컵에 물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8개월 된 딸에게 물을 마시우고는 본인도 목이 마르니 한 잔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어차피 소원이 다시 먹일 거 아니면 그걸 마셔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던진 나의 그 한 마디가 전쟁의 서막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아내는 그 물을 마시더니 이것은 자신이 먹으려고 물병에 담아두었던 '허브티'이며, '허브티'가 8개월 된 아이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변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잠에서 깬 것까지는 좋다고 생각했다.(이것도 내 뇌에서 보내온 생각일 뿐, 내 몸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허브티'를 '8개월 아이'에게 먹인 책임을 나에게 묻는 것은 너무한 일이 아닌가. '허브티'나 '보리차'나 색깔은 같다. 주방에 무심코 놓여져 있는 물병에 들어있는 것이 '허브티'인지 '보리차'인지 내가 알 수는 없지 않은가? 맑은 정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리차'라고 생각해서 컵에 따라 온 것이었다. 아무 정보도 의도도 없었던 비몽사몽간의 행동에 대해서 갑작스런 비난을 받으니 고이 접어둔 나의 분노가 솟구쳤다. 게다가 '허브티'가 '8개월 아이'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정보 역시 나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오랫만에 큰 소리를 내고는 방을 나와 거실에 누워버렸다. 그 소리에 첫째 아이가 깨서 울다가 아빠가 보고 싶다며 거실에 나와 내 옆에 누웠다. 순간 모두에게 미안했지만 '아빠도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렇게 그 전쟁 같은 밤이 지나갔다.



엎질러진 물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어쩌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게다가 나는 늦잠을 자 버렸다. 나는 부랴부랴 씻고, 내 몸 하나 겨우 건사해서 출근을 했다.

원래 다섯 살 아들을 깨워서 같이 준비를 하고 나가는 것이 일상적인 아침이지만 녀석은 간밤에 폭풍같은 일을 겪고는 곤히 자고 있었다.

아내에게 짧게나마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늦잠을 자서 시간도 없는데다가 간밤의 일에 대해 사과한들 그 진정성을 나 같아도 의심할 것 같아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어쩌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사과는 타이밍


출근해서 분주하게 할 일을 하면서도

나는 어제의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고,

아내와 아들이 받은 상처를 어떻게 싸매줄 것인지에 대해 문득문득 생각했다.


사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화해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너무 빨리 사과를 해버리면 되려 다시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사과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마음의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태에서 사과를 하면 백전백패.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상대방에게 다시 비수를 꽂기 십상이다.


사과에는 '골든타임'이 있다. 그것은 내 감정도 충분히 정리가 되었을 즈음이며, 상대방도 같은 템포로 감정이 가라앉았을 그 때이다. 미안함을 가장한 사과가 아니라 진짜 미안해야 마음이 통할 수 있다. 여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진정성' 만큼은 정확하게 감별해낸다. 아무래도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남자에게 없는 센서 몇 개를 여자에게 넣어주시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남자에게 없는 센서 몇 개를 여자에게 넣어주시지 않았을까.


진심을 담은 카톡


업무에 분주했지만 나는 미안한 마음을 카톡으로라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이번 사태의 핵심은 간단했다. 첫째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아내의 투정조차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내게 없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들이 받을 상처'보다 '내가 받은 상처'를 내가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사안이야 어쨌든간에 나는 순간적으로 '가장'이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간밤에 '영원이의 흐느낌'이 사실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이 아무 잘못 없는 영혼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내 감정 하나, 내 자존심 하나 살려보겠다고, 이 어린 아이의 마음을 내가 죽이고 있었구나.

   

나는 잠깐 시간을 내어 카톡에 온 마음을 담았다. 여전히 나는 진심과 글의 힘을 믿으니까.


간밤에 화낸 거 미안해요.
어제의 화는
졸리고 피곤한 것 때문도 있었겠지만
그건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여보의 힘든 투정을 받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없었던 게 첫째였던 것 같고,
아이들이 받을 상처보다 내가 받은 상처가
더 중요했던 게 둘째였던 것 같아요.
사실 화가 너무 났어요.
여보의 핀잔을 듣는 것이
그렇게 괴로운 적은 정말 오랫만이었네요.
나한테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여보가 말하는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그에 반해 여보의 반응이 너무 커서
놀라기도 하고,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어요.
그럼에도 내가 참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어제는 그게 안되었네요.
영원이랑은 오늘 집에 가서 잘 이야기해볼게요.


아내에게서 카톡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없었다.

다만, 아내는 명절 때의 일정과 다음 달 일정에 대해서 상의를 구해왔다.

일단 사과는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소통을 거부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의 사건이었는데 뭐가 됐든 소통을 한다는 건 아예 마음이 닫혀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러한 카톡은 실제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단초가 되곤 한다.


절반의 화해


퇴근을 하니 영원이가 "아빠!"하며 뛰어나왔다.

늘 그렇듯 해맑은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간밤의 무서운 아빠를 기억한다면 이리 밝게 반겨주지는 못할텐데. 그래도 녀석은 아빠의 본심을 알아주는 듯 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간밤의 전쟁 소식은 저 멀리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퍼져 있었다. 원아 수첩을 확인하니 영원이가 직접 선생님에게 써 달라고 부탁했다며 '엄마 아빠 사랑해요'와 '엄마 아빠가 어제 싸워서 속상했어요'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영원이를 앉혀놓고 마음을 다해 사과를 했다.


아빠: 어제 아빠랑 엄마가 큰 소리로 싸워서 영원이 속상했지?
영원: 네
아빠: 아빠랑 엄마는 원래 엄청나게 사랑해. 어제도 사실은 아빠가 아빠 생각만 해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난 거야. 영원이가 아빠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영원: 네. 엄마랑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거 알아요.



아내는 어제의 일은 자신보다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강한 긍정의 표시를 한 후, 한동안 아내를 안아주었다. 아내는 안기지도 거부하지도 않은 채로 한동안 그렇게 나에게 '걸쳐'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넘기지 않고, 나름 나쁘지 않은 화해를 해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를 '온전한 화해'의 길로 인도한 아들


어설픈 화해를 하고 나서 나는 영원이와 함께 엄마가 부탁한 육각렌치를 사러 가기로 했다.

잡화점에 들러 육각렌치가 어디있는지를 찾는동안 영원이는 한참을 꽃 장식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생화가 있는 곳은 아니었고, 물이 닿으면 비누 역할을 하는 꽃들을 진열해놓은 곳이었다.

그런데 내가 육각렌치를 한참 찾고 있는 사이, 녀석이 보라색과 붉은 색 꽃을 들고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닌가.


영원: 아빠, 이 꽃을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선물하면 어때요?
아빠: 대박사건!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영원아!


나는 영원이의 선물에 살짝 묻어가기로 했다. 사실 영원이가 엄마를 생각하며 골라온 꽃이었지만 우리는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이 꽃은 '아빠와 영원이가 엄마를 위해서 함께 드리는 꽃'으로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결국 오늘도 영원이가 다 했다.

물은 엎지른 것은 아빠인데 걸레질은 영원이가 하는 셈이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영원이는 꽃을 엄마에게 드렸고, 꽃을 받은 아내는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영원이는 꽃을 엄마에게 드렸고, 꽃을 받은 아내는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영원: 엄마,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아빠랑 내가 산 거에요.


엄마: 어머, 영원아... 너무 감동이다...!



아들 덕분에 우리의 화해는 어설픈 화해에서 온전한 화해로 나아갔다.

다섯 살 아들 덕에 간밤에 큰 소리로 화를 냈던 아빠는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는 남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언제쯤 '나'를 극복할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 어제처럼 '보리차' 대신 '허브티'를 가져온 나를 비난하는 아내를 다시 맞닥뜨린다면, 나는 그런 아내를 품을 수 있을까?


녀석이 사 온 꽃에서부터 은은한 행복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다. 분명 그 꽃은 살아있는 꽃도 값 나가는 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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