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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안부.

 그 날도 다른 날처럼 그랬다.

 시장의 미세한 풍경이 변주되기는 했지만 책방 안과 밖의 풍경은 변하지 않는, 그런 날들의 하나였다. 책방은 통유리로 시장 거리를 향해 열려 있었지만 줄이라도 쳐 놓은 듯, 사람들은 줄 너머 세계를 모른 체 지나쳐갔다. 잠시 스며드는 빛이 가게 밖으로 새어나가는 시간, 그녀는 커피를 내려 책상에 앉았다. 새로 마련한 양지사의 커다랗고 새까만 플래너를 쳐다보다 지난 두 달간 사용했던 수첩이 생각나 꺼내왔다. 날짜와 요일, 팔린 책 목록이 적혀 있는, 처음엔 반듯했던 글자들이 점점 성의를 잃어가는, 그렇지만 그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수첩이었다. 그 빽빽한 날짜들 속에서 그 날을 기억했다.

 

 2018년 12월 6일 목요일.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지그문트 바우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희랍어 시간 - 한강

 민음사 일력


 그 날도 다른 날처럼 10시에 문을 열었다.

 조금 익숙해진 책방 냄새를 맡으며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었던 그 아침. 그녀가 다소 바쁜 걸음과 상기된 얼굴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막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어서 한 잔 더 내려 그녀에게 주었다. 인스타로 오늘 방문하겠다고 한 사람이라고 청명하게 말했다. 정말 올까, 와도 오후에나 오겠지 했는데...... 그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바로 왔단다. 아침을 열어젖히며. 10시 조금 넘은 시각에 찾아온 손님은 지금까지도 그녀가 유일하다. 그리고 SNS를 보고 책방에 찾아온 첫 손님이기도 하다. 외모에 대해서는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가고 책을 유심히 살피는 손님을 향해, 그녀는 불쑥 말해버리고 말았다.

 "모델 같아요."

그녀는 어떠한 동요도 없이 웃어보였고, 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어왔다.

 큰 키에 긴 머리카락, 서늘하면서도 다정함이 깃든 얼굴과 고집과 유연함이 함께 느껴지는 말투. 여러모로 책방주인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같아 보였다. 그녀의 솔직한 생각은 이거였다. 예쁜 여자도 책을 읽을까. 물론 외모와 상관없이 책은 누구나 읽고 또 누구나 읽지 않는 거지만 말이다. 그간 책을 읽어왔지만 버리지 못한 그녀의 나쁜 생각이 그날 아침,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책에 머무는 잔잔한 시선과 손길 속에, 그런 생각은 아침 빛보다 빨리 사라져버렸다.

 그녀에게 그 날 아침과 같은 날들과, 그런 손님은 소중했다.

 수첩으로 보면 그 날 책방에 온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고, 그런 날들이 쭉 이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하나의 작은 공간이 누군가의 걸음을 끌어당겼다는 것. 제목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책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사 간다는 것. 그건 빛이 들고 나가고, 문을 열고 닫는 규칙의 세계에서 불규칙의 사건이다. 사건이 아닌 일상이 되기를 바라지만 매일이 같은 무늬를 지니는 그 곳에서, 그녀에게는 여전히 사건인 일이다.

 추천했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과 <희랍어 시간>을 그녀는 다 읽었을까.

 그녀가 그녀에게 같은 날들 속에 앉아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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