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제.
온갖 영역이 교차된 고난이도 문제인, 그 얼굴들은 마주하는 순간 답을 요구한다. 즉각적인 반응과 나름의 풀이를 요구하는 얼굴들. 그녀에게 얼굴로 현상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문제였다. 그걸 풀이해낼 재간이 없었던 그녀는 숨고 또 숨어지냈다.
혼자의 영역.
누구나 그러하듯 그녀 또한 그 영역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자발적으로 낯선 얼굴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다 누군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바짝 긴장해, 어색함을 피할 수 없음에도. 풀이를 요구하는 얼굴들과 풀이를 거부하는 얼굴들이 아주 가끔 책방을 오간다.
2018. 11/11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 민주주의 (정희진, 서민 외)
2018. 12/5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2019. 1/8
젠더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소설)
2019. 1/15
여성성의 신화 (베티 프리단)
2019. 2/1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강준만)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2019. 2/7
한나 아렌트의 말 (한나 아렌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시)
그 손님을 처음 본 것은 책방을 연 지 삼일 째 되던 날이었다.
중년의 부부가 책방에 들어왔고, 그녀는 그들을 무심히 여겼던 것 같다. 시장의 어른들처럼 어떤 설명, 설교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히 책을 둘러보고 페미니즘 책들이 꽂힌 곳에 머물렀다. 페미니즘 도서 두 권을 처음 사면서, 소개로 왔다고 말했고 그제야 그녀는 경계를 풀고 조금 웃었다. 전교조 안에서 소모임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있다고 간단히 말하고 그들은 떠났다.
페미니즘. 그녀 또한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아주 낯선 영역.
지인의 걸음이 뜸해지고, 시간이 늘어지는 한적한 오후 어느 날.
그녀가 혼자일 거라는 걸 알기라도 하듯, 그 여자 손님은 가끔 나타났고 꾸준히 페미니즘 책들을 사갔다. 멀리 있는 딸에게 선물한다고,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고, 근처에 약속이 있어서 들렀다고, 그리고, 그리고. 올 때마다 이 곳에서 책을 사야 하는 이유를 그녀에게 에둘러 말했다.
명절 잘 보내라고 이월의 첫날 말했던 손님은, 명절 잘 보냈냐고 오늘 다시 묻는다. 요즘 필사를 시작했는데 필사 할 시집을 사러 왔다고 근사한 이유를 또 말한다. 이제 그녀에게는 '이유'보다 그 걸음, 얼굴이 더 중요해졌다. 그녀가 그토록 어려워했던 하나의 얼굴이기를 이제는 바랬다.
어느 날 불쑥 출몰한 얼굴일 뿐이라 여겼던 그 손님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다.
책을 통해 그 얼굴은 저절로 풀이가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