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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문영 Jul 10. 2020

나를 위한 시간

히피는 집시였다_언어

서른이 지난 어느 날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30년을 함께 해온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 처음엔 아마도 직업을 전향한 후 내 안과 밖으로의 변화가 그라데이션처럼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을 했던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의 적당한 긴장감과 떨림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앞에 나서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아주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고, 이것이 나이가 듦에 따라 변하는 것인가 직업에서 오는 변화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계기로 내 안에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인가 알 수 없었다. 예전의 내가 맞고 지금의 내가 틀린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문제'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고 들었다. 


자존감을 높여볼까? 


내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했던 첫 번째 방법으로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고마웠던 것에 대해 쓰기. 예를 들면, 오늘 신호등 앞에 서자마자 파란 불로 바뀌었는데 건너자마자 바로 오는 버스를 탔다. 잊고 있던 노래를 길 가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오늘 날씨와 잘 맞아서 하루 종일 들었다. 동료가 치즈 쿠키를 가져와서 회의를 하며 나누어 먹었는데 맛있었다. 기분 전환하고 싶은 날에 마셔야지 하고 아껴뒀던 듁스 드립백을 뜯었다. 예상대로 맛있었다. 등등.. 오늘 하루만 들여다보아도 고마운 일들 투성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좋은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1.고마운 것을 쓰는 동안 기분이 좋아진다. 2.사소한 고마운 일을 발견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자존감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면 내가 생각하는 자존감은 = 성취감이다. 꼭 큰 성취를 이루지 않아도 사소한 성취감을 쌓아가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 꽤 괜찮은데?' '오늘 하루 생각해보니 좋은 일이 있었네?' 하는 많은 밤들이 쌓여서 천천히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킥을 날리고 싶은 밤도 있고, 이불킥을 날릴 힘도 없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대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쉽게 잠들지 못할 밤이다. 그런 밤에는 (생각을 한다고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닐 경우) 최대한 그 생각들과 멀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의도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웬만하면 평온함을 느끼게끔 하는 생각들. 속초에서 보았던 파도, 파란 하늘에 하나 떠있는 구름, 그것을 가만히 잔디에 누워 지켜보는 상상, 그때 불어오는 바람, 반포대교의 시원한 물줄기, 그 다리 아래를 걷는 상상..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것도 명상의 종류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처럼 명상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실제로 들리지 않는 파도 소리니 새소리니 같은 것을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다. (가끔을 오히려 그것이 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겐 이런 상상에 도움을 주는 음악이 있는데, 히피는 집시였다의 언어라는 음악이다. 정확하게 어떤 소리들을 사용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듣기에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 소리, 폭죽 소리들이 들려 복잡한 생각에서 멀어지는 것에 도움을 준다. 또 가사가 전혀 없는 이 음악의 제목이 언어인 것의 아이러니로 새소리 바람소리 폭죽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그 건네지는 언어는 따뜻하게 느껴져 위로가 된다.  


이런 방법들로 나를 단련한 후 사람들과 있을 때 이제는 안정적인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있는 편이다. 일상 속에서 작은 성취를 쌓으며 내가 쉽게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평소의 나를 많이 들여다보고 내가 어떤 기분인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떨 때 불편하는지를 알려고 한다. 그래서 또 만약 무너지더라도 그래도 괜찮다고 누구나 그럴 때가 있는 거야 하고 흘려보내며 스스로 상처받지 않게 나를 잘 돌봐 주는 내가 되길 바란다.


[히피는 집시였다_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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