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걸음으로 묵묵히 정진하는 그대에게
인기리에 방영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특정 직업군과 연관이 있다면 그 직업군은 잠시나마 선망의 대상이 된다. 너무 옛날로 돌아가려니 쑥스럽긴 한데, '파일럿'이란 드라마가 방영됐을 때, 한국항공대학교의 입시 경쟁률이 올라갔었고, '파스타'라는 드라마는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를 이름도 생소한 '파티셰'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바뀐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중 하나는 주인공이 오랜 시간에 걸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꿈을 이루는 장면을 '··· 몇 년 후'로 압축해서 한 장면에 담는 것인데, 보통 기운차고 빠른 배경음악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발전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럴싸하게 보여주곤 한다. 실수도 하고, 잘못해서 혼나기도 하며 때로는 땀방울을 닦으며 미래를 그리는 모습은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언뜻 생각해 봐도, 상대 주인공과의 밀고 당기는 연애사나 희한하게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인 악당 역할의 라이벌과의 싸움보다는 주인공의 노력과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책상을 탕 내려치며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든, 사막 한가운데서 "아니지 말입니다."라며 사랑 고백이든 할 테니.
그래, 사람들의 진짜 관심은 주인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과목을 공부해야 하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남녀 주인공은 왜 서로의 마음을 몰라주는지 안타까워하고, 죽어 마땅한 저 라이벌에게 귀신은 뭐하러 갔길래 내버려 두는지 궁금하는 데 있으니.
그래서 관심과 흥미가 금세 사라지나 보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오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보기에 참 멋있는데 막상 줄을 켜니 손가락 끝이 너무 아프고, 손에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며 진지하게 수술실로 입장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내 성적으론 어림없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꿈을 향한 그들의 노력처럼 내 초보시절도 주제곡 한 번 완창 하는 사이 끝나면 좋겠는데, 현실은 참고서 첫 장에서 헤매는 중이다.
그렇다. '몇 년 후'는 없다. 영상 속 주인공은 계절옷을 몇 번 갈아입으면 고수의 반열에 올라서지만, 우리는 우선 주방칼에 손도 몇 번 썰리고, 바둑돌 쥐는 법을 배우면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물론 방정식을 얼마나 잘 푸느냐가 아닌 몇 년이나 빨리 배웠냐에 기백만 원의 돈을 사교육 시장에 쏟아붓는 우리 민족에게 30점 시험지가 성에 찰 리 없다. 당장 100점 만점에 추가 점수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바닥 점수가 웬 말인가.
하지만, 30점은 40점이 먼저다. 그리고 40점은 50점을 향해 달려야 한다. 30점에서 백 점을 맞으려니 힘들고 좌절할 수밖에. 꿈과 목표는 높아야 한다지만, 그에 맞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주변에 비약적인 발전의 주인공이 있을 수 있다. 몇 단계를 뛰어넘는 성과에 질투가 날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그 역시도 비약을 위한 기초 체력을 만드는데 많은 정력과 시간을 쏟아부었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니 나는 왜 이리 더디고 서투르냐며 자책하지 마시길.
우리 삶에는 빨리 감기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