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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았다곰 Sep 01. 2022

'선배님' 문화

비발디급 선배들을 추억하며

(위 영상의 가수들이 누군지 잘 모르고, 캡처 앞뒤의 내용도 모른다. 자막 중 이름을 검색해 보니 나오긴 하는데, 괜히 아는 척하기도 쑥스럽고 사실 궁금 치도 않다. 지금 내 생각을 대변하기에 저 짤(?)보다 좋은 게 없어서 캡처했을 뿐)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선배 가수들을 '선배님'이라며 깍듯하게 대접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최근에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악 퀴즈 중 세 명의 가수 출신 연예인들이 답을 맞히며 꼬박꼬박 '선배님' 하는 모습을 봤는데, 살짝 민망하기까지 했다. 불과 10여 년 아니 짧게는 3,4년 차이가 나는 선배들에게도 마치 조사처럼 '선배님'을 붙이더라.


뭐 우리 같은 문외한, 이종업계의 사람들이야 뭐 그리 대단한 차이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전부터 예체능계 위계질서의 고지식함은 유명하지 않았던가. 비발디라는 수백 년 전 음악계 원로(?)에게까지 '선배님'을 붙이는 수준이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비단 연예계뿐일까. 각종 스포츠 대회에 가면 선수들과 코치, 감독들은 민망하다 싶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선배에 대한 예우를 표하는데 여념이 없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검사들은 '검사 동일체 원칙'이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 되고, 오피니언 리더의 으뜸인 언론의 기자들은 경륜깨나 있는 선배들에게 '대(大)기자'라는 직함을 붙여주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졸업식에서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이 정도니까 말 다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내가 안타까운 건, 교사들이다. 나 역시 교직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풍월로 들은 정도지만, 과거에 비해 선배교사들에 대한 후배 교사들의 태도는 마뜩지 않을 때가 많다. (확실하게 해 둘 건, 난 나이가 선배급일뿐, 후배 입장이다)


워낙에 이론과 기술의 엄청난 속도 변화에 사람들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까지 있을 정도니, 선배들의 수업 기술, 학급 경영 방식 그리고 교직관이 후배 교사들의 성에 찰리 없긴 하다. 전지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괘도로 시청각 수업을 했던 세대를 수억 개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자란 세대가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선배님'을 입에 달고 사는, 비발디도 선배님인 예체능계야 속도로 따지자면 문화계에서 최고급이고, 법조계도, 언론계 역시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면 교육계의 선후배 문화는 여전히 불만이다.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신규발령 때, 선배 선생님들께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으니. 컴퓨터야 그들에 비해 내가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수였지만, 나머지는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 신세였다.(실제 우리 신규, 아침 굶는다고 아침마다 식빵을 구워오시기도 하셨다)


지지리도 말 안 듣는 2학년 꼬맹이들을 고함 없이 어르고 달래는 방법, 학년 초 척박하기까지 한 교실을 종이 몇 장, 가위 하나로 그럴싸하게 꾸미기, 응달은 차고 양달은 따뜻하다를 주제로 2시간 꼬박 수업하기 위한 노하우. 그리고 진상 학부모를 상대하는 최고의 비법까지. 


당시 퇴직을 몇 년 앞둔 선배교사셨는데 지금은 퇴직하신 그분들에게 우리는 이런 별명을 붙여주었다.

'용금Magic', '복희Power'


그들뿐인가. 학부모 대상 수학 수업 공개 때 40분 중 20분 동안 오카리나를 불고, 15분은 젠가로 시간을 보냈던 형님은 학부모들이 교육청 게시판에 훌륭한 교사로 칭송해 마지않았고, 나보다 어리긴 했지만 경력으로는 10년 이상 선배로 모셨던 연구부장님의 학급은 온갖 문제아를 모아 놓고도 매년 가장 차분한 반으로 유명했다.


결국 그들의 비법을 알지 못한 채 헤어졌지만... 그리고 난 점점 선배가 되어간다.


아쉽다. 많이 아쉽다. 각종 업계의 최고 전문가들이 '명장'으로 대접받고, 그들의 노하우가 명예 이상 돈벌이까지 되는 세상에,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직업인 교육계에서 선배들의 경력이 그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전수되지 않는 건 무척, 무척 아쉬운 일이다.


'교생실습' 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교단에 서고 나니 뭐가 정말 값진 지, 중요한 지 알게 된 지금, '교생실습'의 최적기 아닌가. 그래, 원하는 선배 교실로 찾아가 '교생'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몇 달 아니 몇 주라도 그들 교실에서 배경처럼 숨어 그들의 비법을 훔쳐내고 싶다. 더는 배울 게 없다 하산하라고 할 때까지. 


그러면 언젠가 나도 '선배님'이 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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