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았다곰 Nov 04. 2022

초컬릿처럼 꺼내 먹어야 할 '대화의 품격'

'대화의 품격'을 읽고

Long Live the Queen!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전 세계에 전도한 영국의 국민들이 조국을 사랑한다며 부르는 국가(國歌)에서 등장하는 한 소절이다. 신분 상승을 꿈꾸며 밤샘 공부를 미덕으로 삼는 우리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영국은 여전히 왕과 귀족 등 신분제도를 유지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그중에서 흔히 엘리트 계급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산, 직업 외에도 언어, 몸가짐, 취향 등에서 타계층과 구별되고 싶어 하는데, 계급 분화가 많이 희석되었다는 지금도, ‘Posh English’라 부르는 그들만의 악센트만 듣고도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라니 ‘언어’는 그들의 품격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쯤 되는 모양이다.          


그렇다. 언어야말로 나를 드러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면서 일반적인 수단이다. 그래서일까. 사용하기에 번거롭고 장황한 Posh English를 고집스레 지키는 그들은 감내해야 할 수고로움보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품격’이 훨씬 중요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대화의 품격』의 중심 생각과 Posh English는 통하는 바가 있다. 특히, ‘품격’을 높이기 위한 대화의 방법 정도야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번거롭거나 어렵다고 또는 그래도 되니까 무람없이 내뱉는 말을 어떻게 정제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꼬집고 있다.         

  

저자가 주목한 ‘품격’ 있는 대화를 여는 열쇠는 대화의 ‘상대’에 있다. 내가 아닌 너 또는 당신. 지금 내 앞에서 나의 말을 듣고 반응할 상대의 기분과 상황을 고려한 대화야말로 대화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유일해(唯一解)’라는 것이다.  대화에서 상대의 중요성을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우리는 정말 대화에서 상대를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을까? 상대를 말의 하수구마냥 나의 생각과 고집, 편견 등을 내뱉는 용도 정도로 여기지는 않는가.         

 

이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의 입장이 되어 보라고. 항의를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상대의 기분을 그르치지 말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상대의 불평불만을 없애기 위해 체면까지 세워주며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라고 한다.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데, 순박한 시골 청년처럼 마냥 남을 배려하기만 한다면 상대는 날 이용하고 바보 천치 취급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지 않겠나. 조금 좀스럽게 생각하자면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데, 굳이 그래야 하나 싶다. 


그러나 역시 저자는 한결같다. 서로 간의 공통의 분모가 있어야 하고, 상대와 내가 같은 편임을 부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위해? 그렇다. 품격을 위해. 나와 상대의 품격 있는 대화를 위해.

  

그렇다면 품격 있는 대화란 무엇일까? 유수(流水)처럼 매끄러운 말솜씨로 압도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해내는 과정이라 이해하기 쉬우나,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말을 유창하게 하는 법을 설명하기는커녕 오히려 말을 적게 하면서 효율적인 말이 될 수 있냐를 설명한다고 못 박아두었다.         

  

다시 질문해야겠다. 품격 있는 대화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라고. 그렇다. 1장부터 6장 그리고 부록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화 중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곳곳에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어떻게 말의 연비를 높이겠다는 것인가. 성미 급한 걸로 ‘탈(脫)지구급’ 민족에게 ‘나도 말하고 싶은 유혹을 견뎌라.’라니. 그리고 신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신명 나게 맞장구를 치란 말인가. 그걸 다 지키다가는 연비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다 못해 유전이라도 발견할 기세다.          

이런 나의 우문에 작가는 품격 있는 대화가 나를 위한 대화라고 답한다. 대화가 풀리지 않아 화를 내고 원망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보다는 후일 다시 만날 때를 대비해 상쾌한 기분으로 헤어지는 것이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미소로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누굴 위해? 그렇다. 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남의 질투와 멸시를 불러일으키기 쉬우니 자랑과 교만을 삼가야 한다. 바로 날 위해. 결국 ‘나’로 수렴한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법일 수도 있다. 나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드러내는 일이 흉이 아닌 지 오래고, 진상 손님을 사이다처럼 속 시원하게 물리치는 파훼법이 돌고 돌며 관련 무용담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어쩌면 그런 시대니까 품격 있는 대화가 꼭 필요하다. 명품이 아닌 말 한마디로 나를 대변하고, 상대를 배려함으로 결국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성취한다면 이보다 요즘 시대에 마침맞은 대화법이 어디 있겠나. 심지어 연비까지 좋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불어 온택트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대화의 품격은 더욱 중요해졌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사람 간 소통량이 절정을 치달으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외롭고 고립된 시대에 상대방의 진정성을 가늠하면서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품격은 꼭 필요하다.       

   

그러려면 모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품격 있는 대화가 그립고 고플 때, 이 책의 해법들을 초콜릿처럼 꺼내 먹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그대는 내게 빛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