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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립 Mar 09. 2020

[술터디 일곱째날] 하비 월뱅어: 바구니씨는 어디에

[술터디 일곱째날] 하비 월뱅어: 바구니씨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제가 칵테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맛이 섞여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는 과정에서 마시게 될 사람만을 오롯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개별 존재를 존중하되 포용까지 하는 칵테일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술터디 일곱째 날 시작합니다.     



# 하비 월뱅어     

하비 월뱅어
하비 월뱅어 만들기

콜린스 글라스에 큐브드 아이스를 채우고 보드카 1 ½oz를 넣습니다. 오렌지 주스를 글라스의 80% 가량 채우고, 바 스푼으로 잘 저어준 후 갈리아노 ½oz를 띄워서 제공합니다. 보드카가 들어가는 만큼 도수는 꽤 높은 편이지만 오렌지주스가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취하는 줄 모르고 홀짝홀짝 마시게 됩니다. 그러면 소맥을 먹듯 보드카에 오렌지주스만 섞어 마시지 갈리아노를 왜 띄우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갈리아노는 30가지 종류의 약초가 들어가 독특한 향을 더해줍니다. 단순히 오렌지주스만 섞는 것보다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죠.     


하비 월뱅어(Harvey wallbanger)는 캘리포니아의 서퍼(surfer, 서핑 선수)인 하비(Harvey)씨가 경기에서 지고 안 좋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신 칵테일입니다. 하비가 칵테일을 마시고 취해서 벽에 부딪히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벽에 부딪히는 하비’라고 불렀던 것이 칵테일의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는 바구니가 될 수 없다     


박원희씨의 책 <공부9단, 오기10단>

‘공부 9단, 오기 10단’, ‘한국의 꼴찌소녀 케임브리지 입성기’, ‘하버드를 감동시킨 박주현의 공부반란’.


200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분들에겐 친근할 책들입니다. 각각 박원희씨, 손에스더씨, 박주현씨가 어떻게 공부를 해서 해외 명문대에 입학하게 됐는지 이야기하는 자기개발서입니다. ‘노력하면 다 된다’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더해 해외 대학 입학이 지금처럼 많이 이뤄지지 않았던 때라 소재 자체가 이목을 끌기 좋아서 인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 책들의 엄청난 추종자였습니다. 특히 ‘공부 9단, 오기 10단’은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엄청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박원희씨의 이름을 빨리 읽으면 ‘바구니’로 들려서 별명이 ‘바구니’였다는 문구까지 기억이 날 정도니까요.      


박원희씨는 제 인생의 우상이었습니다. 박원희씨처럼만 되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아서 그 분이 책에 쓴 공부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따라했고, 해외 명문대에 합격하지 못하는 것은 망가진 인생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명문대 합격이 인생의 목표다 보니 대학 이후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의 삶은 조금 망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는데, 가상 속 아름다운 미래만을 꿈꾸면서 발을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고등학생들이 그랬겠죠.     


제가 박원희씨와 똑같아질 수 없다는 건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알게 됐습니다. 일단, 해외 명문대 입학을 위한 학원․과외비를 대줄 정도로 저희 집은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적이 항상 잘 나올 정도로 머리가 좋고 똑똑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롤모델을 만들어 따라하는 것을 접었습니다. 그 사람 인생은 그 사람 인생이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한다고 무언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길게, 나만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토끼와 거북이

하지만 그렇다고 이후로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던 건 아닙니다. 대학교에서는 몇 년씩 나이차이가 나는 후배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어려운 사회과학책도 쉽게 설명해주며 졸업 후엔 제가 가장 가고 싶던 회사에 입사한 선배가 참 닮고 싶었습니다. 학과 내에 여성주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던 과 학생회장 후보를 보며 “저 사람이라면 믿고 맡기면 되겠다. 참 닮고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닮고 싶던 선배는 입사 동기를 성추행했고, 회장 후보는 당선 후 스토킹 피해자에게 “너만 입 다물고 있었으면 모든 일이 편했다”라는 말과 함께 가해자를 옹호해 회장 직을 내려놔야 했습니다.     


제가 닮고 싶었던 사람들이 실망을 주기도 하고, 제가 바라는 대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많이 헤맸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쉽게 되는 거 같은데 나는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사람에 대한 신뢰도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서퍼 하비씨가 경기에서 지고 술에 취해 머리를 벽에 부딪고 다녔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고민 끝에 얻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거나,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나로 오롯이 살아내자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직접 하기도 힘든데 다른 누구에게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일까요.      


그리고 원하는 멋있는 모습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지금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룬 후’라는 게 항상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모두가 해외 명문대에 갈 수 없고, 모두가 원하는 회사에 갈 수 없듯 원하는 목표는 계속 바뀌고, 삶은 길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꾸준히 바뀌고, 원하는 내 모습이 돼야 내 목표가 바뀌고, 이전 목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삶을 좀 더 길게 보고,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 노력해야겠습니다. 문득 제가 그렇게 닮고 싶었던 박원희씨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곧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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